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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결속 한미동맹 진가-위대함 재평가 해야
작성일 : 2017/08/08 13:49 / 조회 : 57 / 추천 : 9
 

이승만 전 대통령 결속 한미동맹 진가-위대함 재평가 해야

5000년 군주국가에서 국민이 나라주인되는 민주주의 국민국가 탄생

 

얄타회담의 (1945/2/12) 아이러니와 남북분단의 38도선 설정 등 부정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래도 대한민국의 탄생은 소련의 야욕을 물리친 이승만의 (1875/3/26-1965/7/19) 승리다. 김구 선생은 독립투사로 존경을 받아 마땅하나 김일성과 남북합작을 모색했고 대한민국의 수립을 정면으로 거부하였기 때문에 이승만과 동격의 국부로 인정할 수 없다. 우리의 국부는 분명히 이승만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탄생은 (1948/8/15) 우리 민족사의 연속이지만, 5000년간의 군주국가에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민국가가 탄생한 것은 새 페이지로 써야하는 역사의 위대한 전환점이며 구약성경의 모세와 같은 이승만의 업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리해야 마땅하다. 지금, 전 세계에서 건국 국경일을 지키지 않고 국부의 생일을 국경일로 지키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공약한 1943. 11. 27. 카이로 선언의 배경에는 이승만의 집요한 외교노력이 있었고 그 결실이었다. 상해임시정부의 노력보다 이승만 한사람의 40년간 외교노력과 투쟁이 우리의 독립 투쟁사에서 더 위대한 역할을 했다. 해방정국의 혼란은 소련과 김일성과 내통한 박헌영과 여운형이 주도 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애국진영이 대세를 장악하였고 위대한 백년대계의 초석을 놓았다. 미국에서 아브라함 링컨에 준하는 존경을 받는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다. 그분은 1947. 3. 12 트루먼 닥트린을 선포하여 그때까지 미국의 우유부단한 대외정책을 획기적인 반공노선으로 선회하고 국가위상과 세계질서를 바로 잡은 지도자였다. 우리 이승만 박사도 그와 상통하는 시대의 선각자였다.

 

이승만을 하나의 정치가 사상가로만 보면 아니 된다. 그분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지자였다. 그분은 우리 현대사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이며 그분의 건국이념과 철학이 오늘의 대한민국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패러다임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약관에 저술한 <독립정신>은 대한민국 건국의 성경이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 교수 그렉 부래진스키는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이승만을 빼놓고는 어떠한 사건도 설명이 안 된다고 언급 했으며, 세브란스 병원 설립자 에비슨 박사는 이승만은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위인이며 조지 워싱턴과 토마스 제퍼슨 그리고 아브라함 링컨을 합친 것 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 하였다. 매튜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은 이승만이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위대한 대한민국이 탄생 하였다고 지적 하였다.

 

대한민국 건국후의 치적을 살펴보자. 그분은 와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버금가는 헌법을 창제하는데 주도하였고, 우리나라 역사 이래 최초의 국민국가를 건설하고, 농지개혁, 교육제도 확립, 그리고 그분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한미동맹을 성립한 것이다. 건국당시 국민의 70%가 소작농이었으나 그들에게 토지를 상환조건으로 분배하고 소유권을 보장, 해방직후 국민의 78%가 문맹이었으나 그분의 통치기간 내에 적극적인 교육정책으로 10%로 줄었고 이는 국가산업화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영국 셰퍼드 대학교가 발표한 논문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역사 속에서 강대국 사이에 끼어 시달리던 100개 나라를 추적해 보니 모두 이웃 나라에 흡수 또는 통합되어 망했으나 생존한 나라가 두 나라가 있는데 하나는 핀랜드이며 국민의 강력한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켰고 또 하나는 대한민국인데 한미동맹 덕분에 생존하고 급성장 하였다고 평가하였다.

 

19604.19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85세 노령이었고 자유당 실세들이 그를 포로로 하고 이기붕의 부통령 당선을 위한 3.15 부정선거를 도모하였다. 그때 야당후보 조병옥 박사가 미국 육군병원 <월터 리드>에서 서거하였기 때문에 이승만 박사는 단일후보가 되어 무투표 당선이 이미 확정되었기 때문에 3.15 부정선거를 이승만 박사와 연결시켜서는 아니 된다. 엄밀히 말해서 4.19 혁명은 자유당의 부패가 표적이 되었어야 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이념과 업적을 부정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지금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는 세력들은 그분이 김일성-김구 방식의 남북합작 (결국은 공산주의 통일국가)의 최대 방해자였기 때문이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국부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우뚝 서는 날 대한민국의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는 날이다.

 

국내 많은 학자들이 건국초기에 이승만 정권의 부정적인 면면을 들추며 시행착오를 트집하여 그분을 독재자로 각색하고 부정부패한 지도자로 평가하면서 심지어는 대한민국이 탄생해서는 안 되는 나라라고 주장 하였다. 반면에 이승만이 해외에서 고군분투한 노력과 6.25 전쟁당시에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강대국 미국과 외교 투쟁한 업적은 송두리째 흙속에 묻어버린다. 분명히 건국초기엔 부정적인 사례와 잘못된 일들이 있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때 대한민국은 태어 난지 몇 년이 안 되는 아주 어린 아기였다. 이승만이 독립투사 이었으나 최초의 민주주의 이념 정치가로서 어떻게 처음부터 국가경영의 완전무결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서구 선진국들도 민주주의가 궤도에 정착할 때까지 수 없는 시행착오를 반복 하였다. 그러나 그분은 철저하게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애국심과 신념에 일생을 바쳤으며 본질과 상황을 선각자의 혜안으로 구별하였고, 건국초기에 창궐한 공산주의자들과 사회주의 선호 우민들의 도전을 막아내고 그런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켰다. 그분의 12년간 장기 집권을 따지는 인간들이 있으나, 단순히 생각하면 비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분이 그토록 권위와 카리스마를 행사하며 반공노선을 고수하고 권력을 유지 하지 못 했더라면, 그 당시 그가 아닌 어떠한 다른 지도자가 국가경영을 인수 하였더라도, 대한민국은 분명히 조기사망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로 전락 하였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분단비극을 남한 북한이라는 이분법으로 해석하면 절대로 아니 된다. 헌법 제3조에 의하면 한반도 전체에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존재할 뿐이며 북쪽의 김일성 범죄 집단은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 범죄 집단을 국가로 인정하고 상대하여 어리석기 짝이 없는 분단관리 전략을 유지해 왔다. 남북통일이라는 용어에는 법리적으로 모순이 있다. 우리가 누구와 통일을 한단 말인가. 김일성 일가 집단과 통일을 하잔 말인가? 우리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가 있을 뿐이며 우리의 영토와 민족을 보전하기 위하여 김일성 일가를 제거하는 일을 처음부터 시종일관하게 추진했어야 마땅하다.

 

건국 초기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설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총 궐기 해야 한다. 그 우선순위는,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바로세우고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을 제정할 것이며, 제주도 4.3폭동과 광주 5.18 국가변란의 역사를 바르게 다시 써야하며,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북에 가서 한 6.15선언이나 10.4합의는 김구-김일성 방식의 남북합작을 위한 망국적 망상의 반복이 아닐까? 2009. 3. 1에 기독교 성직자 831명이 시국선언을 했는데 6.15 선언과 10.4합의를 실천하라고 주장하였다.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승만 바로세우기 운동을 우리는 서둘러야한다. 민족통일이 임박한 이때에 그 일을 다그쳐야 하는 이유는 김일성 일가의 집단이 붕괴 된 후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그날을 새로운 국가의 탄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에, 소위 통일이 달성 된다고 해도 그것은 대한민국의 잘 못된 현실을 바로 정리한 것뿐이며 새로운 국가의 탄생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연속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의 국호는 대한민국이고, 우리의 건국 국부는 이승만 대통령이며, 국기는 태극기이고, 국가는 지금의 애국가로 고정해야한다.

 

필자는 지금부터 국부 이승만의 업적, 그의 숨은 노력과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안 했던 일화들을 더듬어 보겠다. 대한민국은 건국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유일한 나라다. 우리의 건국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너무나 위대하고 감동적인 사례가 발견되며 그 역사의 주도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다. 5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탄생되는 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하여 1948510일에 국민이 투표하여 198명의 제헌 국회의원들이 선출 되고 국회의장에 선출된 이승만은 개원 연설에서 <우리나라에 민주주의 국가가 탄생하게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으로 성취 되었다>고 하였고, 종로 갑 구에서 당선된 이윤영 의원 (감리교 목사)을 불러내어 개원 기도를 시켰는데 30분간의 긴 기도 내용은 국회 개원이 아니라 교회 부흥회를 방불케 하였다. 이 기도 내용은 미국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버금가는 훌륭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건국이념이 담겨 있다. 1948815일 건국기념식에서도 대통령 이승만은 헌법 책 위에 성경책을 올려놓고 그 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할 때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삼천만 동포 앞에서 헌법을 준수하는 충실한 대통령 직을 이행 하겠다>고 선서하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기독교정신을 밑에 깔고 건국된 나라다. 이처럼 훌륭한 우리의 건국역사를 무시하고 종북세력들은 지금 철저하고 조직적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그런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정부와 법조계와 언론계 연예계 사회 구석구석에 포진되어 있다.

 

이승만의 피눈물 나는 경력을 열거해보자. 그는 1894년에 선교사 <아펜셀러>가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한다. 그 곳에서 그는 민주주의 이념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졸업하자마자 우리나라 최초로 신문을 발행 하였고 (협성회 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 민주주의 이념을 설명하고 고무하는 글을 기사로 쓰기 시작하였다. 고종황제의 군왕정치를 거부하는 강연을 하기 시작하였다 1898년 그가 23살 때 우리나라 태극기를 만드신 박영효 선생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는 운동을 추진하다가 역적모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그가 옥중에서 동지들이 처형되는 것을 목격하며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 성경책을 읽기 시작한다. 1899130일에 기독교신자 로서 최초의 기도를 할 때, 감옥에서 풀려나기를 기원한 것이 아니라, 그의 영어 자서전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오 주여, 이 나라를 구원 하소서.> 이것이 사형수의 기도였다. 그 당시 조선에 기독교신자는 도합 40명 정도였다. 그 기도의 다음 말은 <주여, 이 땅 조선에 100만 명의 기독교인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지금 대한민국 기독교인구는 약 1200만이다. 그가 감형되어 57개월 후에 석방될 때까지 옥중 전도하여 예수를 믿은 수는 간수 죄수 모두 합하여 약 40명 정도라고 한다.

 

이승만은 여러 개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 조선에서 최초로 영어사전을 편찬한 사람; 최초로 신문을 발행한 사람; 최초로 남녀공학 학교를 세운 사림; 최초로 영어연설을 한 사람; 상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제헌국회 국회의장; 대한민국 국부 초대 대통령; 최초의 기독교 전도 왕. 그가 전도한 간수들의 협조로 그는 재소 중 600권의 책을 읽었으며, 300편의 논문을 쓰고, 그중 75편이 밖으로 나가 신문에 보도되고, 그의 글을 읽은 유력인사들, 한일합방 을사조약에 분개하여 자결한 민영환, 고종황제의 엄비, 총리대신 한규설이 이승만 구명운동을 시작 하였다. 그 결과 사형이 무기징역으로, 다시 10년형으로, 그리고 57개월의 옥고를 마치고 석방이 된다. 1899, 24살의 젊은 청년이 쓴 논문에서 강조한 경제정책은, 수출주도의 경제부흥, 제조업육성 공장건설, 고속도로 건설, 조선업과 해운업 강조 등이다. 이 글을 읽고 실천한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 다음으로 그는 신약 갈라디아서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반상제도 폐지, 남녀평등, 여자교육의 중요성 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가 쓴 모든 논문의 저변에는 기독교 입국논리가 깔려있다. 그가 1903년에 발표한 글에는, 그 당시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는 영국이었는데 이승만이 예언하가를 <우리나라가 예수를 믿는 나라가 되면 영국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때 영국의 경제는 조선의 334배였다. 세계 2차 전쟁 이후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최고의 기독교 부흥국가가 되었고 108년 후인 2011년에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영국을 추월하였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기독교복음으로 견인된 역사다. 1948년 건국당시, 대한민국의 경제는 아프리카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프리카 54개 국가의 경제를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경제가 더 강하다. 그런데 왜 오늘의 국내사정이 이렇게 혼란스러운가. 교회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이승만과 같은, 영적 지고자 <카리스마틱>한 애국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주요인물 두 사람을 말해 보겠다. 첫째, 1907714일 구한말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로 파견한 이준 열사가 (1859/1/21-1907/7/15) 이승만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승만을 가장 존경 하였다. 그분은 회의참석이 거부되자 활복자살한 열사이시다. 다음은 월남 이상재 선생 (1850/10/26-1927/3/29) 이시다. 그분은 <조선의 스승>으로 존경 받던 분이며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설립하였고 1888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 파송한 두 명의 외교관 중에 한 분이다. 철두철미한 유교선비이던 그가 25세 연하인 청년 이승만의 전도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 조선 최초로 YMCA (황성 기독청년회)를 설립하였다. 1927년 그가 서거하였을 때 서울인구가 30만이었는데 그의 장례식에는 20만이 모였다고 한다. 이상재 선생은 기미년 3.1운동 때 배후지원조종한 인물이며 독립선언문 민족대표 33인의 명단을, 본인은 빠지고, 그분이 지명 작성하였다. 그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취조를 받으면서 일경이 3.1운동 독립만세 주동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간단명료하게 <하나님>이라고 대답하였다.

 

1904년에 일로전쟁이 발발하였다. 그때 고종황제는 승전국이 쉽게 조선을 찬탈할 수 있는 역사의 흐름을 감지하고 강대국에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할 것을 구상하며 국내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인재를 찾다가 한성감옥에 수감되어있는 이승만이 발탁되고, 그를 석방하여 건강을 회복케 하고 미국에 파송하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대미활동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미국에 계속 눌러앉아 학업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는 명문대학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학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미국의 수재들도 보통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9년 내지 12년에 걸쳐 마치는데, 이승만은 총 5년 만에 그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에서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정치학 박사가 되었으며, 이 세 대학교의 기념관에는 <본교가 배출한 최고의 천재는, Korean, Dr. Syngman Rhee>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국회연설에서 인용할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는 귀국 후 이상재 선생을 만나 YMCA 활동에 협력하고 100만 명 기독교신도 운동을 전개 하였다. 1905년 가을에 일로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예상했던 대로 1910829일에 발효된 한일병합(경술년국치)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국내 유력애국인사들은 중국으로 망명하여 19193.1운동 후 1919411일에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때 이승만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 (1919/4/11-1919/9/10)와 초대 대통령 (1919/9/11-1925/3/21)을 역임하게 된다.

 

상해에서 그는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하였다. 무장도 갖추지 못한 독립군 3000명으로는 일본을 상대로 투쟁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미국과 같은 강대국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전개해야하며 강대국의 힘과 영향력을 빌려야 한다는 쪽으로 행동기선을 잡게 된다. 그래서 그가 그때 <코리아 환충지대론>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미국을 설득하려고 노력 하였다. 그의 이론은, 미국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길이 미국의 국제 전략에 주효하다고 역설하고, 일로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분명히 머지않아 아세아 패권을 장악한 후에 미국에 도전할 것이란 점을 암시하였다. 그때 미국은 이승만의 이론을 무시하고 비우섰다. 그러다가 아니나 다를까 1931년에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1937년에 일본이 중국남경 대학살을 저지르고, 1941127일에 하와이 지주만을 기습 공격한 다음에 미국정부는 이승만의 예언을 재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승만이 193912월에 워싱턴으로 이주하고 저술한 책 19416월에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일본의 본질과 정체를 폭로하면서 불원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한다는 확신을 언급하였는데, 정확하게 6개월 후인 그해 127일에 진주만 폭격사건이 발생하였다. 진주만 공격으로 마군 5000명이 전사하였고 태평양 전쟁에서는 미국 민간인 군인 도합 300,000명이 희생 되었다. 그 책에서 이승만은, <그러나 전쟁은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대한민국 독립의 문이 열리고 독립된 대한민국은 세계열강과 어깨를 겨누는 강국으로 성장 할 것>이라고 예언 하였다. 이 때 미국에서는 이승만 재인식의 바람이 불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벅여사는 이승만을 20세기 최고의 전략가라고 극찬 하였으며, 펜타곤은 이 책 수십만 권을 사서 군인들에게 필독서로 배포하고, 이 책이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베스트 셀러(Bestseller)로 팔렸다.

 

이 책이 출판 된 후에 그 여세를 몰아 이승만은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과 학자들과의 인맥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 사람들 중에 한사람이 육군소령 맥아더이며 그는 후일 6.25동란 때 한국을 지켜준,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 원수다. 맥아더의 아버지도 육군 장성이었는데, 구 한 말 고종 때 조선을 방문 하였고 고종은 그에게 국보급 향로를 선물 하였는데 그는 그것을 가보로 소중히 여기다가 죽을 때 아들에게 유물로 넘겨주었다. 아들 맥아더도 그것을 너무 좋아해서 태평양 전쟁 때에도 자기 숙소에 두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전투 중에 부관의 실수로 그 물건이 상실 되었다. 1948815릴 대한민국 건국기념식장에 대통령 이승만은 오랜 친구인 일본주둔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를 초청 하였다. 그런데 그때 맥아더 원수는 80개국의 기자단을 이끌고 방한하였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은 그에게, 분실된 향로와 동급의 국보 향로 세 개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 했다. <이것은 내가 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각하에게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받은 맥아더 원수는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축사에서 장군처럼 연설하지 않고 목사처럼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새로 탄생하는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영원하기를 기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최선을 다하여 보호하겠노라고 다짐 하였다. 그의 축사연설 내용은 1948816,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미국은 과거에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때 특별예산이나 추가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예비비를 사용하면서도 충분히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6.25사변 한국전쟁 때에는 특별예산을 책정 하였다. 그 돈으로 전후복구 사업과 10년간 구호물자를 풀어 한국경제를 지원하였다. 이는 분명히 이승만의 대미외교의 결실이다. 북한이 6.25남침을 하였을 때, 투르만 대통령에게 한국파병을 강력하게 건의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그 한사람이 맥아더 원수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 하였다. 또 한사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역임하게 되는 존 포스터 덜레스였다. 그는 <미국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침략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역설 하였다. 덜레스는 이승만과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기숙사 같은 방을 사용한 동창생이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논문을 같이 쓴 끈끈한 친구다. 이승만의 정치철학 기조는 친미외교이며 반공투쟁이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소비에트연방이 형성되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세계 어느 나라도 공산주의의 모순과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고수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자유를 일당독재로 몰수하고 일당독재는 일인수령숭배로 유지되는 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이라고 역설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때가 되면 반드시 망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건국한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기반을 흔들고 괴롭히고 있다.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역임하고 있을 때, 임시정부 은행 구좌에 소련공산당이 송금한 60만 루불이 입금 되었다. 이것이 상해임시정부가 타국의 경제지원을 받은 유일한 케이스이다. 그 때 임시정부 요인들의 절반 이상이 친소성향의 인사들이었다. 이승만은 절대로 그 돈을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리고 1923년에 <공산당의 당부당>이란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공산당의 정체를 비판한 세계최초의 반공논문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공산주의 이론의 핵심은 모든 소득과 자원의 평등분배다. 평등분배는 생산성경쟁과 창의를 저해하고 결국은 문명발전을 파괴하며 인간은 영혼과 생명이 없는 독재자의 소지품으로 변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 1989년에 소련의 최고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연설에서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이와 거의 동일한 공산주의 모순을 지적하였다. 이승만 보다 66년 뒤늦게 그가 공산주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련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2000만 명이 아사하고, 중국에서는 3800만 명이, 북한에서는 300만 이상이 굶어 죽었다. 소련이 그리스와 터키를 침략하고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알게 되고 1947312일에 <투르만 닥트린>을 선포할 때까지 미국도 이승만 만큼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이승만은 30년 전에 벌써 그 일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정부까지도 좌우합작의 함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건국 직전 남북합작정책이 국내이서 춤추고 있을 때, 미국군정청은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으며, 이승만이 절대반대의 입장을 고집할 때 군정장관 하지중장은 이승만을 고집세고 골치아픈 늙은이라고 미워하고 그를 한 달 간 가택연금 시킨 사례도 있었다.

 

1917년 소비에트연방이 출범하고 <코민테른 1919-1943> 기치아래 세계 여러 곳에서 총 40여개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 했는데, 그들이 모두 비슷한 좌우합작의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 소용돌이치는 사조에 휩쓸려 들어가지 안했다. 대개 6개월 이내에 우파지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색체와 노선을 달리하는 상이한 좌파들이 연립형태로 뭉쳤다가 1년 이내에 핵심세력 일당만 존재하는 일당독재체제로 정리가 된다. 북한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독교 장로인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과 소련 앞잡이 김일성과 민족형 사회주의자 현준영이 권력전면에 나타났으나 현준영은 바로 암살되고 조만식은 가택연금 되었다가 귀신도 모르게 살아지고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 (본명 김성주)이 최종 독주자가 된다. 미국이 반공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어제까지 연합군 동지였던 소련이 적이 되고 적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동맹국으로 변한다. 그때부터 미국은 대한민국을 반공국가로 성장하고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전시장>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 덕분으로 오늘날 우리는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으로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민족주의 기독교가 아니라 반공주의 기독교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승만이 기독교 가치관으로 출발한 그의 건국이념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롭게 깨달아야한다.

 

북한의 6.25남침 (1950/6/25) 후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때에 오래 끌면 자기들에게 불리할 것을 예상한 공산국 진영에서 제안한 휴전협상이 1951년에 시작이 되었지만, <휴전절대반대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의 고집으로 협상이 장장 2년간이나 질질 끌었다. 휴전이 체결되기 전부터 이승만이 미국 측에 제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 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아무 확실한 기대를 할 수 없을 때, 이승만은 미국의 기를 꺾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휴전체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반고포로석방>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승만은 헌병사령관 원용덕에게 포로수용소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미군과 UN군을 기습하여 반공포로들을 탈출시키라고 명령하였다. 1953618일 이 작전이 시행 되었고, 부산 마산 대구 영천 논산 광주 부평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26,900명의 반공포로가 탈출하는데 경비병들의 반격으로 61명이 사살되었고 116명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반공포로가 아닌 8,200명은 계속 수용소에 잔류하였다. 이 엄청난 사건으로 미국과 UN 참전국들이 충격을 받았고, 미국 측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진행 중인 와중에 이승만 제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이승만은 미국과 전 세계에 호소하였다. <공산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하는 우리가 공산주의가 싫다고 애걸하는 포로를 다시 사지의 공산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나는 우리민족을 사랑하는 대통령으로서 반공포로석방을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이 소식을 들은 미국정부는 당황하였고, 미국 국내에서는 기독교교계에서 이승만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학계에서는 이승만을 위대한 인간이라고 치하하였다. 이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마음을 바꾸고 휴전이후 미국이 대한민국을 등한히 할 것이라는 적들의 오판을 막기 위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조속히 마무리 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1953727일에 휴전이 성립된 후, 서둘러서 1953101일에 이 조약이 체결되었고 19541118일에 발효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특히 공산국가들이 인접해있는 극동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다. 이 위업을 이승만이 구축하였다. 이승만의 반공국시, 친미외교, 기독교복음을 건국이념의 기초로 삼은 그의 신념과 정치철학, 빵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그의 경제개념, 그분은 참으로 우리 현대사의 선지자였다. 한국동란 휴전직후 1954728,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때 이승만을 세계적인 정치가로 전략가로 존경하는 정치인들 학자들 교수들 외교관들 군인들 시민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도록 국회의사당에 모여들었다. 40분간 연설하면서 그는 무려 33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한 말이 <나는 우리나라를 지켜준 미국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아낌없이 죽음의 한국전선에 보내준 미국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특별히 감사 한다 - My special thanks to all American mothers.> 이때 모든 청중들이 울었다. 나는 이 글을 끝내며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이것이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승만이 결속한 한미동맹의 진가와 위대함을 재평가 해주기를 원한다. 이토록 위대한 건국대통령을 아직도 국부로 모실 생각이 없는 인간들에게 호소한다. 기도하면서 당신들의 존재이유를 계산해 주기 바란다.

 

출처.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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