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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⑬ 덜레스와 담판 성공
작성일 : 2017/12/04 12:46 / 조회 : 9 / 추천 : 1


`미군의 무기한 주둔` 조약 성공..."자손만대 번영의 토대" [새연재: 한미동맹]

방위조약 싸고 사흘 담판, 미군주둔을 반대하던 덜레스도 굴복
공산침략과 일본 재침을 막는 2중봉쇄 장치...한미동맹 성공


[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⑬ 덜레스와 담판 성공


‘서울공항’이라 불리던 여의도 비행장, 1953년 8월4일밤 10시 5분 시커먼 미군용4발기가
어둠을 뚫고 한강 한가운데 내려앉았다. 예정보다 12시간 늦게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서울에 내려섰다. 지난 6월 아이젠하워가 이승만에게 약속한 한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휴전조인 1주일만에 국무장관이 직접 이승만과 협상하러 날아온 것이었다.
지난번 18일동안이나 이승만과 매일 협상을 해야했던 로버트슨 차관보도 동행하였다.

육해공 3군 군악대가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예포(禮砲) 19발을 쏘아 국빈환영을 베풀었다.

백두진 총리등 각료들과 3군수뇌가 출영하였고 한복차림의 소녀들이 증정하는 꽃다발을 받은
덜레스는 짤막한 도착성명을 낭독하였다. 


“워싱턴에 산적한 긴급용무들을 제쳐놓고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하러 오게 된 이유는
전세계에 대하여 미국은 대한민국의 견해를 더욱 존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전쟁에서 협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평화에서도 협력하여 한국통일이라는 공동목표에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덜레스는 백선엽 육참총장의 안내로 의장대를 사열하였다.

워싱턴을 떠날 때 회견에서 그는 “한국전쟁이 종결된 지금 또다시 구우(舊友:old friend)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할 수 있음은 평생의 기쁨”이라고 말했다.
덜레스는 1950년 6월 한국전쟁 발발 1주일전에 서울을 방문했었고, 그후 전쟁중 재차 한국전선을 시찰한 바 있었다. 덜레스는 미국 기자들과 문답을 통해 이대통령과 한미방위조약을 협상, 조문에 관해 구체적인 토의를 하러 서울에 간다며 이승만의 휴전조약 수락을 얻어내기 위해 약속했던
양국방위조약 약속을 꼭 지킬 것이며 그러나 “미군의 한국 주둔이 의무화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재차 못박듯이 답변, 이승만에 선제카드를 날리고 온 것이다.

여의도 행사가 끝나자 덜레스는 가로등도 희미한 밤거리를 달려 필동에 있는 미군의
“영빈관‘(VIP숙사)에 여장을 풀고 첫 밤을 지냈다.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입경 기사.ⓒ조선DB
▲ 덜레스 미국무장관의 입경 기사.ⓒ조선DB



▶ 한미방위조약의 탄생 진통 시작...경무대는 또 협상전쟁

이튿날 아침 9시 57분 경무대에 도착한 덜레스를 환영한 이승만 대통령은 15세 손아래

프린스턴대학 후배이자 아이크 정권의 실세 덜레스를 맞아 본격적인 ‘한미동맹’ 출범준비에
돌입하였다.
덜레스가 전해준 아이젠하워 대통령 친서에는 “3년간 전쟁에서 보여준 이승만의 영웅적 투쟁을 찬양하고 한국 국민의 의사를 존중할 것이며 한미방위조약과 한국통일방안 및 경제원조 등
한국과 최대한의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며 “강력한 한미유대관계를 전세계에 과시하고 싶다”는 등 요란한 말잔치 선물이 가득하였다.

첫 날 2시간 가까이 진행된 1차 회담은 ‘화기애애’하였다고 신문들이 보도하였다.

이날부터 꼬박 사흘 밤낮으로 계속된 회담은 경무대에서 이승만-덜레스가 단독협상을 진행하는 한편, 중앙청에서 변영태 외무장관등 한국팀과 로버트슨등 미국팀이 별도 실무회담을 병행하였다.
첫 대화는 먼저 로버트슨과 브릭스 주한대사의 항의 발언으로 시작되었다.

며칠전 이승만대통령이 발표한 ‘휴전 비난 성명’이 로버트슨과의 약속을 깬 것이고,
정치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과 유엔이 한국의 통일전쟁에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공언한 이승만의 주장은 미국정부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기선을 잡았다.

특히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 격노하였다고 들이댔다. 

이에 대해 변 외무장관과 올리버 고문은 이승만의 입장과 원칙을 조목조목 설명하였다.

“미국과 유엔은 6.25 직후부터 공산침략을 격퇴하고 한국을 통일시키겠다는 거듭된 결의안들을 스스로 모두 파기하였음은 세계가 다 안다. 전쟁에 지쳤다고 세계와 함께 다짐한 공약을
이렇게 하루아침에 깨고도 화를 내는 것은 약소국을 묵살하는 적반하장이 아닌가. 

통일 목적을 협상에 의해 달성하겠다는데 이것도 실패한다면 전 세계는 공산주의 앞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따라서 공산제국주의는 더욱 고무되어
미국이 그토록 염려하는 세계3차대전 가능성을 미국이 더 높여주는 결과가 된다.

이승만의 눈에도 보이는 엄연한 사실을 미국이 못 본다거나 외면한다는 속셈을
이승만은 물론 한국 국민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날 밤 경무대에선 이승만대통령이 베푸는 만찬이 벌어졌다.

다음날엔 변영태 장관의 조선호텔 만찬, 브릭스 대사의 미대사관저 만찬,
덜레스가 초대한 만찬 등 날마다 밤마다 만날 때마다 모든 대화는 ‘한국통일’과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 협상의 연장이었다.

덜레스(왼쪽)와 로버트슨을 다시 만나 환담하는 이승만.(자료사진)
▲ 덜레스(왼쪽)와 로버트슨을 다시 만나 환담하는 이승만.(자료사진)



★ 올리버는 브릭스 대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그의 저서 [이승만의 대미투쟁]에 남겼다.

“이승만의 시각을 정확히 인식하는 일이 양국관계와 양국조약을 위해서 선행돼야 한다.

이승만은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제는 군사적’이라고 본다.
자유세계가 공산주의를 격퇴할 것이냐 말 것이냐, 싸울 것이냐 싸우지 않을 것이냐,
이것이 지금 인류의 갈림길이다. 만약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아시아인들이 판단하게 된다면
그들은 공산주의에 굴복이외의 선택이 없다고 결론 지은지 오래이다.
그러므로 이승만이 단독으로 한국국민을 이끌고 ‘자살작 공격’으로 통일하겠다는 주장이야말로 그의 진실로 진심이란 사실을 덜레스와 아이젠하워가 똑 바로 인식해야만 사태가 해결된다. 

이승만의 ‘단독북진’ 소신의 밑바닥엔 이널 전략이 숨어있다. 남한 혼자서 끝까지 싸운다면
소련 스탈린과의 직접 협상이 불가피하게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 협상에서 이승만은
압록강-두만강을 회복하여 통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20대시절
고종을 품에 안은 러시아와 싸워서 국익강탈을 막음으로써 크게 이겨 본 경험을 갖고 있다.  

만약 한반도가 다시금 분단상태로 강대국들에 ‘매수’되어 버린 휴전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대만신세가 되어 독립정신을 상실한 채 공산주의에 굴종하는 노예 사대주의로
되돌아 갈 것이며 차라리 일본지배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이승만은 절망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미대사관에서 3년 근무했던 브릭스는 올리버의 말에 고개를 연신 주억거렸다. “맞는 말이오. 공산국가에 자유선거가 주어진다면 중국에서도 공산당은 쫓겨날 것이오.”

덜레스가 이승만에게 전달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 내용과 한미 실무회담을 보도한 조선일보 1면ⓒ조선DB
▲ 덜레스가 이승만에게 전달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 내용과 한미 실무회담을 보도한 조선일보 1면ⓒ조선DB



 피 말리는 탁상 혈투! 이승만-덜레스 `운명의 담판`

이승만-덜레스의 ‘담판’은 신문보도처럼 ‘화기애애’는커녕 피를 말리는 탁상 혈투였다.

이들 양거두 회담을 전해주는 기록 가운데 올리버의 기억만큼 상세하고 생생한 증언이 없다. 

주요대목을 간추려 옮겨본다.

★덜레스는 이승만 박사를 향해 능청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최근에 내가 각하의 친구인 네루 수상알 만난 것을 알고 계시지요?”

이 박사는 엷게 웃으며 전혀 아니라는 몸짓을 했다. “친구라니요!”

덜레스가 말했다. “네루가 말하더군요. 이 대통령을 자제시키는게 좋을것이라구요.

내가 말했지요.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음을 수상도 아실텐데요. 미국이 아시아 각국을
어떻게 다루기를 원합니까? 꼭뚜각시처럼 취급할 까요? 이러니까 재빨리 말을 돌립디다.“

덜레스는 이박사를 응시하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미국은 지금 한국등 여러나라와의 관계를 새로운 토대위에 정립하려 노력중이요.
아시다시피 이제까지 미국은 언제나 일부 강대국들과 만나 한국에 관해 무엇을 할것인가를
결정하고서 그것을 그저 한국에 통고만 해왔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않으려고 합니다. 

나 자신이 여기 서울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게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강대국 국무장관이 약소국의 대통령과 대화하고 우리정책을 약소국과 조율하기 위해
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움직였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기에서 내린 결정이 아니라 내가 한국에 왔다는 사실입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내용을 둘러싸고 담판을 벌인 이승만과 덜레스.(자료사진)
▲ 한미상호방위조약 내용을 둘러싸고 담판을 벌인 이승만과 덜레스.(자료사진)


이승만 박사가 입을 열었다. “50년만에 처음이오. 아니 역사상 처음이군요.”

나(올리버)는 덜레스에게 말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덜레스 장관께서는 아시아를 상대하는
방법에 진정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앞으로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덜레스가 동의했다. “그렇소. 우리 의도가 바로 그것이오. 많은 나라들이 이런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식의 회담을 두러워하고 반대하여 왔잖소.”

실제로 그날 아침에도 영국에선 이승만-덜레스 회담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승만과 덜레스는 잔디밭으로 나가 사람들과 합류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그 ‘좋은 기분’은 그러나 30분도 지속되지 못했다. 

반도호텔(현 롯데호텔 자리)로 돌아온 나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전화를 했다.

“대화는 실패로 돌아갔소. 독자적으로 해나가는 길 밖에 도리없소.
미국이 한반도에서 공산당을 몰아내는 공동투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고 ‘겉치례’에 불과하오.”

이승만은 올리버에게 한미조약 본문을 검토하는 회담에 참석하라고 재촉하였다.

★ 덜레스가 가져온 한미방위조약 초안에는 이승만대통령의 요구,
한국과 그 주변에 미군의 주둔을 규정한 미일평화조약 제1조와 같은 내용이 없었다.

이박사의 요구는 이 규정이 한국에 대한 공격은 곧 미국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고
“자동적으로 즉각적으로” 전잰에 개입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도 반드시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전쟁 개입 약속”이 명문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대표단은 ‘의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규정의 위반이므로
절대 불가하다‘며 반대하였다.

올리버는 변영태, 임병직(林炳稷) 김용식(金溶植)주일대사와 함께 이문제에 대하여
미국대표단과 2시간이나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우리는 미국의 약속을 강조하는 단어 2개를 추가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는 의회 인준 전이라도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이승만과 덜레스가 서명하도록 하자고 합의하여 경무대로 올라갔다.
우리대표단 대변인으로 뽑힌 올리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보고하였다.

냉랭하게 듣고만 있던 이대톨영이 질문을 던졌다.

“조약에 미국이 북한에서 공산당을 몰라내는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보장이 되어있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노기가 폭발하였다.

“그만두시오. 우리는 모두 실패하였소. 그런 조항도 없는 조약은 아무 쓸모가 없소.”

이대통령은 “회의를 다시 소집해서 그 조항을 반드시 넣으시오. 덜레스가 반대하더라도
그건 병개 문제니까 합의문에 반드시 그 조항을 포함시키지 못하면 안되는 줄 아시오.”

그날 저녁 파티에서 로버트슨이 말했다.

“미국은 이대통령에 대해 참을만큼 참았습니다. 꼭 ‘홀로 싸우기’를 원하다면 그건 그의 일이오. 세계의 친구 하나 없이 군사적 경제적 지원도 없이 정말로 외톨이가 될 것입니다.
제발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성으로 돌아가도록 설득해주시오.”


★ 다음날 오후 올리버는 이승만-덜레스 공동성명서를 작성하여 경무대로 가져갔다.

“올리버 박사, 우리가 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아무리 참을성을 가지고 반복, 또 반복해도
박사는 이해하지 못하시오. 다른 모든 것들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박사는 공동성명서 초안을 읽어보더니 두 눈을 반짝였다.

“이건 괜찮군. 그런데 덜레스가 동의할까?”

올리버는 덜레스가 반대할지 모르지만 서명하기만 하면 공개여부는 상관없다고 답하였다.

★ 8월7일 이승만-덜레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회담이 열렸다.

덜레스는 미국측 공동성명 초안을 가져왔고 올리버는 최종안 마련을 위해 배석하였다.

“그때까지 겪었던 어느 때보다 신경쇠약 진전상태까지 갔다. 합의서는 불가능해보였다.
 나는 사표를 쓰고 고향에 돌아갈 궁리를 했다.”고 올리버는 그날 일기에 적었다.

회담은 전쟁의 기본적 성격에 관하여 한-미간의 이견을 모두 드러낸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같았다. 상황의 밑바닥에는 슬픔과 아이러니가 깔려 있었다. 세계릐 모든 정치인물 가운데 이 두 사람은 공산주의 위협의 성격과 그 대처방법에 대해 가장 강력한 기본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도박사의 본능을 가진 용기있는 사나이들이다.

덜레스의 표현에 의하면 ‘실제로 선전포고 없이 소련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내기 위해 ’벼랑끝 작전(brinkmanship)에 기꺼이 뛰어들 남자들이었다.

 기질면에서 두 사람은 아주 비슷하였다. 자신들이 맡도록 운명지어진 역할에 대해
최고조의 긴장감에 빠져서도 끈기있게 자기 몫에 손해를 안보는 자세를 지켰다.

덜레스는 왼쪽 눈이 자주 경련을 일으켰고 얼굴은 피로에 지쳐있었는데
자신이 수용할 수 없는 정책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더욱 심화된 피로였다.

멀리 워싱턴에서는 한국에 참전한 17개국회의가 열리고 있다.
덜레스는 그들이 채택하고 아이젠하워가 지원할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도구가 아닌가.

이런 류의 타협은 덜레스도 이승만도 취향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 상왈을 피해 갈 수는 없는 절체절명의 레일을 달리고 있었다.

덜레스가 입을 열었다. “각하, 이 결론에 각하가 이젠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승만이 대답하였다. “장관은 내 뜻을 알고 있지요. 그 점을 논의합시다.”

덜레스가 답하였다. “논의 할 것이 없습니다. 유엔 각국은 우리 행동을 결정하였고
이것을 이제 바꿀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기띤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면 장관께서는 왜 오셨소? 나와 조건을 논의할 의도가 아니라면
한국에 올 필요가 없잖소. 그런 조건들은 전문으로 보내도 되는 것 아니오?”

덜레스는 회유에 나섰다.
“각하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는 휴전에 대한 각의 승인입니다.
그래서 제가 온 것입니다. 각하의 승인을 받으려고 말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덜레스는 “미국 목표는 정확히 각하의 폭표와 같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각하께서는 그것을 전쟁으로 달성하기를 바라고 우리는 편화적 수단으로
달성하자는 것 뿐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계속 싸워야 한다고 고집하십니까?”

이승만 대통령은 침착하게 받았다.
“장관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이 전쟁으로 한국만큼 큰 고통을 당한 나라도 없고,
평화적으로 우리목표가 이뤄진다면 우리국민보다 더 기뻐할 국민도 없을 것이오.
장관께 묻고싶은 질문은 이것이오. 만약 평화적 협상에 의해 공독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경우,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어떻게?‘라는 이 질문이 최종적 이견의 핵심이었고,
어느쪽도 피할 수도 없고 가능한 해법도 없는 위기의 국면이었다.
유엔과 미국은 한반도에서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해 단순히 전쟁을 재개할 수 있는 입장이
못되었다. 그들이 합의한 해결책은 ’평화적 수단에 의해‘ 즉 공산주의자들과 평화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것 정도일 뿐이었다.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덜레스, 로버트슨과 대화하는 이승만.(자료사진)
▲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덜레스, 로버트슨과 대화하는 이승만.(자료사진)


이런 미국에 대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조소를 감추지 않았다. 

“장관께서 전쟁으로 얻을 수 없던 것을 어떻게 공산주의자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장관께 드릴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단 말이요?”

이 질문에 덜레스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대통령은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만약 90일이내에 정치적 방법에 의해 우리 공동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한다면
장관께서는 미국이 전투를 재개하는데 동의하시겠지오?”

덜레스는 자기에겐 동의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통령이 물었다.

“그렇다면 정치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때 어쩌자는 것이오?”

덜레스 역시 굽히지 않았다. “실패시키지 않을 작정입니다. 실패는 미국 방식이 아니니다.”

담판은 계속되었다. 때로는 긴 침묵 속에서 창가로 걸아가 창밖을 내다보곤 하였다.
마치 더 이상 할 망이 없다는 듯이. 두 사람에게는 피할 수 없는 역할이 강요되고 있었다.

탈출구가 없는 딜레마, 모두 삶의 일부로 껴안고 살아야하는 것이 ‘실패’라는 것을 알고있는
노련한 정치 대가들이다.
이승만은 성명서에 서명은 할 수 없었지만 ‘휴전을 방해하지 않기로’ 재차 동의하였다.
두 사람은 우호적으로 상호존경의 마음을 품고 헤어졌다.

(이상 [이승만의 대미투쟁] P645~657 요약, 비봉출판사 발행, 2013.11)



▶ 한미동맹 체결...‘미군의 무기한 주둔’ 명문화 성공

마침내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이승만의 요구사항중 하나는 명문화하는데 성공하였고 하나는 제외되었다.

‘미군의 무기한 한국 주둔’은 포함되고, ‘즉시 자동 개입’은 조약본문에 못 들어갔지만 

‘공동성명’에는 반영되었다. 다만 어느 경우에도 양국의 국회절차를 따르기로..

[조선일보 보도] 이승만 대통령과 덜레스 미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합의를 본 한미상호방위조약 조인은 8일 상오10시 6분 경무대에서 이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위원 일동 및 국회 조-윤 부의장등 대표 일행, 그리고 미국측 브릭스 주한대사와 스티븐스 육군장관, 로지 유엔대표, 로버트슨 국무차관보등 일행과 내외기자 다수 참석리에 양국정부를 대표하여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장관이 각각 2매로 된 조약문에 각기 서명을 하여 조인을 완료하였다.

조인은 불과3분간에 이루어져 10시9분에 마치었다.
이리하여 덜레스 장관일행은 낮 12시10분 이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각료 및 기타 다수인사들의
환송을 받으며 여의도 공항을 출발 이한하였다.
한편 조인이 끝난후 이대통령과 덜레스 장관은 다음과 같은 장문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다. 사진 아래 `상호방위조약 전문 보도.ⓒ조선DB
▲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하다. 사진 아래 `상호방위조약 전문 보도.ⓒ조선DB



*공동성명 전문*

[우리들의 우호적이며 이해에 넘치는 협의는 한미양국이 한국통일을 포함하는 양국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위하여 서로 친밀한 협의를 하여 나갈 결의를 명백히 표시하는 바이다.

우리는 오늘 공동방위조약 원안에 가조인하였다.

이 조약은 우리 양국이 공동위협을 막기 위하여 연합해서 공동행동을 취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이 조약은 한국에서의 공산침략의 위협과 싸우기 위하여 우리 양국을 결합케 하였던 유대를 더욱 공고히 만들게 될 것이다. 우리 양국은 이 조약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헌법에 의한 수속을 계속 추진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에서 볼 때 이와 같은 헌법에 희한 수속이란 상원에 의한 인준을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 상원은 금주 휴회에 들어갔으므로 내년 1월까지는 정기회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오늘 취하게 된 행동에 이르기까지 서로 교환된 견해를 미국 상원 지도자들은
충분히 통고받아 왔으며 따라서 미국 상원이 급속히 찬동적인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성심으로 희망하고 있다. 오늘부터 이 공동방위조약이 발효케 되는 날까지 사이에 한국에 있는
우리 양국군대는 유엔군사령부에 소속되며 동 사령부는 정전조항에 의거하여 행동할 것이다. 

휴전협정에 위반하여 공산군이 한국에 불법 무력공격을 가하는 일이 생길 경우
한국군을 포함하는 유엔군사령부는 그와 같은 불법공격을 동 사령부자체와 예하군대에 대한
공격이요 위협임으로 즉시 그리고 자동적으로 반격을 할 것이다.

불법공격에 대한 이와 같은 반격은 새로운 전쟁이 아니며 정전으로 말미암아 종결된 전투행위를 공산군이 재개한 데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유엔 사령부는 이러한 공격에 대비하여 부단히 감시를 할 것이다.

우리 양국정부는 공동방위조약이 발효케 된 이후 한국이 한국에 주류케할  군대의 지위 그리고 우리들의 공동사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한국측 시설과 인원의 사용에 관한 협약을 즉시 상의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계속 유엔군사랑부와 협력할 것이며 한국에 있는 유엔군의 지위와 그들에 대한 한국측 시설 및 인원의 사용은 현재대로 계속될 것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정치회담은 3개월 이내 동1953년 10월27일 이전에 개최되기로 되어있다.

이 정치회담에서 한국대표단은 한국 및 기타 유엔군사령부측 각국대표단과 협력해서 
한국을 하나의 자유독립국가로 평화리에 통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보좌관들은 충분하고도 만족할만한 의견교환을 이미 끝마치었으며
우리는 그것이 정치회담에서 예비적인 기초가 되리라고 희망하며 또한 믿는 바이다. 

만약 정치회담이 90일간 개최된 후 그 본래의 목표를 달성키위한 모든 기도가 헛된 것이었으며
공산측은 동회담을 이용하여 침투하고 선전하고 또는 기타 방법으로 한국을 곤란케 만들려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 양국정부에 명백히 되었을 떼에는 우리들은 동회담에서 동시에 퇴장할 용의가 있다. 그후 우리는 통일된 자유독립 한국을 성립하기 위한 방안을 협의할 것인바 이 목표는
제2차대전중 한국이 그 전후 목표로 확정한 것이며 유엔 역시 이를 그의 목표로 수락하였으며
또 이는 계속 미국외교정책의 중요한 목표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한국이 자기문제를 처결할 고유한 주권적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한국은 서로 합의를 본 정치회담 기간중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일방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기로 동의하였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괴된 한국의 경제를 부흥하기위하여 작성된 3개년 내지 4개년계획은
한미양국대표를 통하여 통활될 것이다.

이 계획은 미국국회에서 예산이 통과 되는대로 약 10억불의 자금을 사용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장차 국방비에서 절약되는 금액 중에서 이미 2억불은 한국을 위하여 할당되었다.

우리는 또한 한국 육해공군을 유지 발전하는데 관계된 제반문제에 관하여 예비적인 의견을
교환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이 해서 우리 양국정부 사이에 확립된 관계가 극동에 있어서의 독립과 자유를 진전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공동안전보장에 대한 불굴의 신념을 가지고 또한 유엔헌장을 충실히 준수하는 우리는 통일된
민주독립국의 회복이라는 우리의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함께 나아갈 의도이다.

여기 발표된 것 이외에 달리 제시된 약속이나 합의는 하나도 없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는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국무장관. 뒤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백두진 총리, 임병직 등이 지켜보고 있다.(자료사진)
▲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하는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국무장관. 뒤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백두진 총리, 임병직 등이 지켜보고 있다.(자료사진)


★한미상호방위조약 全文(현행)


제목: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본 조약의 당사국은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인식하며 또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평화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이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도 가지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통의 결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또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의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를 삼갈 것을 약속한다. 

제2조 

당사국중 어느 일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원조에 의하여 무력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고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실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제3조 

각 당사국은 타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당사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당사국에 대한 태평양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공통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제4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국의 헌법상의 절차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에 효력을 발생한다.

제6조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후에 본 조약을 종지시킬 수 있다. 

 

*양해사항

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서는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경우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치하기로 된 것과 미합중국에 의해 결정된 영역에 대한 무력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원조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영문 조약문*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igned at Washington October 1, 1953

Entered into force November 18, 1954

The Parties to this Treaty,

Reaffirming their desire to live in peace with all governments, and desiring to strengthen the fabric of peace in the Pacific area,

Desiring to declare publicly and formally their common determination to defend themselves against external armed attack so that no potential aggressor could be under the illusion that either of them stands alone in the Pacific area,

Desiring further to strengthen their efforts for collective defense for the preservation of peace and security pending the development of a more comprehensive and effective system of regional security in the Pacific area,

Have agreed as follows:

Article 1

The Parties undertake to settle any international disputes in which they may be involved by peaceful means in such a manner that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and justice are not endangered and to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in any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or obligations assumed by any Party toward the United Nations.

Article 2

The Parties will consult together whenever, in the opinion of either of them, the political independence or security of either of the Parties is threatened by external armed attack. Separately and jointly, by self-help and mutual aid, the Parties will maintain and develop appropriate means to deter armed attack and will take suitable measures in consultation and agreement to implement this Treaty and to further its purposes.

Article 3

Each Party recognizes that 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 on either of the Parties in territories now under their respective administrative control, or hereafter recognized by one of the Parties as lawfully brought under the administrative control of the other, would be dangerous to its own peace and safety and declares that it would act to meet the common danger 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Article 4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Article 5

This Treaty shall be ratified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Korea in accordance with their respective constitutional processes and will come into force when instruments of ratification thereof have been exchanged by them at Washington.

Article 6

This Treaty shall remain in force indefinitely. Either party may terminate it one year after notice has been given to the other Party.

IN WITNESS WHEREOF the undersigned plenipotentiaries have signed this Treaty.

Done in duplicate at Washington, in the Korean and English languages, this first day of October 1953.

FOR THE REPUBLIC OF KOREA:

/s/ Y. T. Pyun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 John Foster Dulles

미군의 상시주둔 성공...나토식 ‘즉시 자동개입’ 삽입엔 실패

이승만은 끝까지 나토형 조약을 주장하였지만 결국 동의하고 말았다.
1948년 건국직후부터 유럽의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같은 ‘태평양 동맹’이나
한미안보협정을 맺자고 요청하면서 미군 철수를 저지하려 하였으나 트루먼은 거부하였다.
이승만이 즐기차게 고집한 요구사항이 바로 나토 헌장의 “즉각적 자동적인 개입” 조항이다. NATO 동맹의 핵심조항은 제5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약국은 [...] 한 국가 또는 여러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행위로
간주하며, 조약국 중 한 국가가 그러한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에는 [...] 집단의 자위권(自衛權)
발동에 따라 나머지 조약국들은 [...] 무장한 군대사용을 포함한 모든 행동을 [...]
즉각 활용함으로써 공격받은 국가를 지원한다.”

즉 어떤 국가가 NATO의 한 회원국을 공격할 경우 모든 회원국은 이를 NATO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동시에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는 NATO헌장 제5조를 적용해 공동 군사작전을 감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회원국의 전시 군사작전 지휘권은 사령관에 부여되어 있으며
나토 사령관은 미군 대장이고 나토에 대한 부담금도 미국이 가장 많다.
1949년 처음 12개국으로 출범한 나토 회원국은 현재 28개국이다. 소련도 붕괴후 준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을 정도이며, 한마디로 유럽전체가 똘똘 뭉쳐있는 무시무시한 거대 군사동맹체가 되었다.
이 나토 헌장 제5조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도 ‘즉시 자동개입’ 조항을 반드시 넣자고 덜레스와
사흘 밤낮을 싸웠던 것인데 철판같은 이승만도 결국 꺾이고 만 것이었다..

또 하나 이승만의 불만은 제6조 ‘통고 1년후 자동소멸’ 조항이다.
이승만의 ‘무기한 유효’ 요구를 들어준 미국이 그 대신 ‘자동소멸’ 단서를 덧붙인 것.

미국이 “원하지 않는 조약”인지라 제1조부터 ‘이승만의 단독북진 예방’에 초점을 맞춘 조약은. “행정지배하의 영토까지만”이라든지 “단독행동 금지, 협의하라, 합의하라, 국회 승인을 받아라” 등등 줄줄이 이승만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문구들이 지나치게 반복되고 있다.

★ 첫 술에 배부르랴...부족하지만 이승만은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크와 덜레스가 거부했던 미군 상시주둔과 경제-군사 원조를 일단 확보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북방의 공산침략 재발을 막을 수 있고 남방의 일본 재침 야욕에도 굳건한 제방을 쌓음으로써 이승만이 평생 꿈꾸던 2중봉쇄(dual containment) 방벽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덜레스가 ‘벼랑끝 전술’이라며 혀를 내두른대로 이승만의 불타는 통일열망 앞에 굴복한 미국도
2중봉쇄 효과를 얻게 되었다. 공산군 침략 방지와 더불어 이승만의 단독북진도 막아야하는
아이젠하워는 이승만이 강요하는 방위조약이 더 없이 효과적임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역사적인 한미방위조약 조인식에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현장중계 기사와 한국을 떠나는 덜레스 사진. 이날 조선일보 사회면 톱기사는 북한의 `붉은 숙청`이란 제목에 박헌영이 사형선고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끈다.ⓒ조선DB
▲ 역사적인 한미방위조약 조인식에 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현장중계 기사와 한국을 떠나는 덜레스 사진. 이날 조선일보 사회면 톱기사는 북한의 `붉은 숙청`이란 제목에 박헌영이 사형선고받았다는 기사가 실려 눈길을 끈다.ⓒ조선DB


★미국의 일방적인 휴전 강요에 분노했던 한국 국민은  나라를 구해준 고마운 나라 미국과의
군사조약이 어렵사리 체결되자 “이제는 살았다”고 만세를 불렀다.
언론도 조약체결 현장 스케치 기사까지 실었고 거리에는 축하 행진이 이어졌다. 

조약 조인에 우레같은 박수...아이크, 이승만대통령에 낚싯대 선물 

[조선일보 보도] 미국무장관 덜레스씨 일행은 그동안 수차에 걸쳐 이대통령과 회담을 한 결과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조인을 마치고 이날 하오 12시10분 가로에 도열한 서울시민의 환송과
이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각료 기타 다수의 정계요인들의 환송을 받으며 여의도 비행장을 떠나
 귀국의 도정에 올랐다.

이날 역사적인 방위조약 조인식은 경무대 대통령 관저에서 이루어졌는데 예정시간인 상오10시 정각에는 백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정부 각부처 장관 그리고 이번회담에 맹활약한 유엔대표 임병직씨, 주일공사 김용식씨 등과 국회 측에서 조봉암-윤치영 양부의장을 비롯하여 이갑성 이상철 임영신 각의원등10여명의 덜레스 장관 환영위원일행 그리고 미국측 수행원들과 신문통신기자 사진반원들이 역사적인 조인을 대기하고 있었다.

10시6분이 되자 덜레스 장관이 변 외무장관 안내로 입장하고 뒤이어 이 대통령이 입장하자 변장관과 덜레스 장관이 황홀한 사진 후랫슈 속에서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아 서로 싸인을 하였다. 싸인을 마치자 장내에는 우뢰같은 박수가 터졌으며 이 역사적 조인은 불과 3분동안으로

이대통령과 악수를 마친 덜레스장관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낚시대와 부속용품을 내놓았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환담을 하며 10시 12분 조인식장을 퇴장하였던 것이다. (이상 조선일보 사회면)

올리버 박사의 회고에 따르면, 전쟁중 극도의 긴축과 절약을 몸소 실천하고 있던 이승만 대통령이 덜레스 일행을 위해 자주 파티를 열어준 것은 그야말로 특별대우였으며 더구나 경무대의 대식당을 개방한 파티는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고 한다.
특히 이승만은 덜레스와 로버트슨을 데리고 몸소 경복궁을 안내하면서 역사 강의도 했다.

일본 정부가 사무라이들을 동원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한 현장을 돌며 청년시절 자신이 가담했던 국모살해 보복사건을 회고하고 지금 ‘미국이 또 키워주는 일본의 재침 위협’을 경고하면서 
한미조약에 미군의 상시주둔을 명백히 규정할 것을 거듭거듭 역설하였다.
고궁의 망국 역사현장에서 또 다른 망국을 막아줘야할 안보장치 협상을 벌인 셈이다.

다음날 한미조약에 서명을 끝낸 덜레스가 낚시대 한 벌을 선물하며
“이것은 스미드 국무차관이 특별히 구입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자 이승만은 

이리저리 낚시대를 돌려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친구들이 고기는 우리더러 이 낚시대로 잡으라는 게야.“

매사에 ‘예지력이 천보 만보 앞선다’는 전략가 이승만 다운 말, 원하던 조약을 맺어주었으니
앞으로 한국문제는 한국 책임이란 메시지로 읽어내는 투시력이랄까.
다음 날 이승만은 전국민을 향하여 감개에 젖은 담화를 발표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이 끝난뒤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덜레스 미국무장관.(자료사진)
▲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이 끝난뒤 악수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덜레스 미국무장관.(자료사진)



▶ 1882년 이래의 역사 반전! “자손만대 복락(福樂)의 토대 생겼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우리나라 독립 사상 일대진전이며 동 조약외에 미국이
 10억불 이상의 경제원조로 한국의 재건 부흥과 우리 국군을 확장강화키로 협정된 것은
경하할 일인바 일반국민은 국가경제 재건에 전력을 다하라“는 담화 전문은 이렇다.

*담화 전문*

1882년 한미통상조약 이래로 오늘날 미국정부와 공동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처음되는 일이요, 또 우리나라 독립역사상에 가장 귀중한 진전이다.

강대한 이웃나라 중간에서 약소국이란 명칭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 금수강산에서 소산되는
물품이 풍부함으로 자고로 우리나라를 탐내는 나라들이 많아서 어떤 큰 이웃나라를 의지하지 않고는 독립을 보장하기어렵다는 의도하에서 우리 반도강산을 주인없는 물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자초로 국제상 도의를 믿고 무력을 무시한 결과로, 무력을 숭상한 일본이 서양각국의 지지를 받아서 우리나라 전고에 없는 치욕과 통분의 40년간의 노예명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무력을 믿고 세계를 정복하려다가 패전하게 되고 그후에 각국이 한국을 어떻게 조치할까 하여 저희들끼리 모여서 정책을 정하고 우리로 하여금 그 결정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한 결과로
필경은 남북분단의 참담한 상태를 이루었던 것이다.

다행히 천의인심에 응하여 우리 전민족의 한마음 한 뜻과 우리 청년의 애국 충심으로
우방의 도움을 얻어 국군을 조속한 시일내에 동양에 큰 강병이란 칭송을 듣게 된 것이니
실로 커다란 공로를 성취해 놓은 것이다.

지금에 와서 이 결과로 한미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그 영향이 자손만대에 영구히 미칠 것이니 우리가 잘만해서 합심합력으로 부지런히 진전시키면 이웃나라들이 우리를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고 무시하는 자가 있어도 침략하는 자가 없을 것이니
이번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지도로 미국무장관 일행이 와서 이만치 해 놓은 것은
감사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 덜레스씨 일행이 여기 와서 성공한 것은 방위조약으로써 영원한 복리를 우리에게 줄만한 토대를 세워 놓은 것이니, 

첫 째로 미국이 10억불의 예산으로 우리 건설을 돕기로 라스카씨의 제의로 거의 성안이 되어서
내년 국회에서 통과될 것인데 미국대통령의 특별주선으로 2억불을 불일내로 지출해서 우리 건설과 공업등 발전을 시작하기로. 된 것이니 지금부터 오는 정월까지를 한하고 계획을 만들어서 다 쓰게 될 것인데 지나간 5~6년 동안에 미국에서 우리에게 원조를 준 것은 다 외국인이 주장해가지고 사용한 결과로 명의상으로는 우리에게 준 돈이지만 사실상으로는 일본 경제를 부흥하는데 태반 사용되고 우리는 소비품 만을 받게 되었던 것이므로 실상 효과는 심히 박약했던 것이다.

이제는 한미 양국대표가 합동경제위원회에서 작정하여 미국원조 목적대로만 쓰게 된 것이니
우리 경제력을 발전케 하는데 막대한 성공을 우리가 치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로는 우리 국군확장인데

지금까지는 미국 육해군의 중요한 권위자들이 우리를 양해하고 동정해서 각각 자기들의 힘에 따라 이만치 발전시켜온 것이므로 우리 육군은 이만치 발전되었으나 해군 공군에 대해서 태반부족의 약점을 가졌던 것인데, 지금부터는 우리 국군세력의 방위력이 상당해서 미국방 원조예산중에서 한국에 육군증강과 해공군력을 증진시키기로 이번 토의결과로 협정된 것이니 우리 전민족이 경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중략)....우리 군인들은 이 기간에 몸과 마음을 굳건이 준비해서 기회가 오거든 일시에 밀고 올라가야 될 것이다. 

이런 관계 이유에서 휴전조약에 서명도 아니하고 오직 휴전을 막지 않기로 협약된 것이니 

정치회담에서 성공만 될 수 있으면 다행인 것이오, 못되더라도 많은 손실은 없을 것이오,
우방들의 협의로 성공케 할 것이다.

이 동안에 우리가 할 일이 하고많은 중에 한편으로 국가재건에 전력해서 2억불과 기타 다른 원조경비 등으로 우리 공업을 대확장해서 자급자족의 기초를 이때 세워놓아야 하니 일반경제가나 국민이 사소한 이를 도모하지 말고 국가경제 대발전의 토대를 이때 건설함으로써 많은 피를 흘리고 또 많은 희생을 한 큰 의의를 장래에 미치도록 전국민의 단결로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방위조약 체결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국민담화를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이 재건부흥에 노력하자고 촉구하였다.ⓒ조선DB
▲ `방위조약 체결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국민담화를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이 재건부흥에 노력하자고 촉구하였다.ⓒ조선DB



▶ 한미동맹 보완 시급...기회는 정치회담에 있다

“1882년 한미통상조약이래 독립 역사상 일대진전”이란 말로 담화를 시작한 이승만의 역사적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그 ‘조-미 수호 통상조약’이 낳은 70년 설움이 드디어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7살 때 맺어진 조-미조약은 사실 조선왕조 스스로가 아니라 청국 이홍장의 코치에
따랐던 사대주의 맹종에 불과한 것, 1879년 이홍장은 조선과 미국 간의 수교로 일본의 독점적인 조선침투를 견제하고 국제사회에 청국의 위신을 높이고자 조선에게 대미수교를 권고하였다.
나라밖 세상에 도무지 무관심한 왕실이 잠자는 사이 수신사 김홍집이 ’조선책략‘을 들여왔다.
이 문서는 황준헌이 정리한 것으로 ‘친중(親中) 결일(訣日) 연미(聯美)’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는 중국용 변방 자강책이었다. 결국 중국의 종용에 떠밀려 구미 선진권과 손을 잡은 첫 나라가 묘하게도 미국이 되었다. 그것도 일본보다 30년 늦었지만.

이승만이 태어난 해 1875년 운양호(雲楊號) 사건, 일본 군함이 강화도를 공격하며
개국을 요구하자 굴복한 강화도 조약이 조선개국의 첫 발이다.
일본의 도꾸가와 막부가 1854년 미국의 페리제독의 ‘흑선(黑船)’함대의 압력에 개국한 후
 ‘국망(國亡)의 위기’를 근대화의 혁명(명치유신)으로 환골탈태한 일본이 개국30년 만에
열강에 앞서 조선을 차지하려는 시도가 미국흉내를 낸 운양호사건이었다.
미국에 이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열강과 조약을 맺으면서도 ‘일본보다 늦었음’을 깨닫기는커녕 청일전쟁이 벌어져도 `무당에게 국운을 점치는‘ 샤머니즘 늪속의 조선 왕실은
끝내 나라를 일본에 내주고 만다. 그것이 매국인줄도 모르고 매국문서에 국쇄를 찍어주는
`사대주의 중독 장애자`들에게 근대화나 국가의식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승만은 뒷날 그의 옥중저서 [독립정신]에서 “우리는 여러번 기회를 잃었다”고 한탄한다.

첫째, 병자호란 이후 군사력을 길러 북벌(北伐)했어야 마땅한 기회를 기회인 줄도 몰랐다.

둘째, 서구 열강이 통상을 요구했을 때 우리주도하에 통상 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

셋째, 청일전쟁 전 10년간 미국등 조약 우방들을 활용하여 국제관계와 안보 군비에 자강-자립했더라면 청일전쟁이 아니라 ‘한청전쟁’을 벌여 중국과 일본에 대등한 나라로 변신할수 있었다.

넷째, 왕이 궁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에 피난갔을 때라도 자각했다면 러일전쟁은 ‘한러전쟁’이
되어 러시아와 일본을 한꺼번에 막아낼 수 있는 독립국가의 재건 기회를 놓쳐버렸다.

조선왕조가 몽땅 잃어버린 것을 반세기 후에 강대국들과 싸우고 이용하여 되찾은 이승만은
그래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독립 역사상 우리민족이 이룬 경하해야할 대반전’인 것이다.

러일전쟁후 일본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을 체결해야 했던 비운의 건물 `중명전` 현재 모습.(자료사진)
▲ 러일전쟁후 일본 이토 히로부미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을 체결해야 했던 비운의 건물 `중명전` 현재 모습.(자료사진)


★ ‘미군의 무기한 한국 주둔’을 성공시켰다지만, 이것은 그러나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지척의 공산군이 또 남침하면 남한은 그대로 불바다가 될 터인데 미군참전을 위해 미국 상원의
승인을 마냥 기다릴 겨를이나 있겠는가. 이승만은 한미동맹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내년 1월까지는 미국의회 사정상 조약 비준은 서둘 필요도 없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정치회담에서 통일해주겠다는 미국의 공약은 그야말로 텅빈 공약인줄 알지만
한미동맹 강화를 도와줄 또 하나의 대미 협상카드로는 아주 훌륭한 미끼가 될 것이었다. 

두달 후 10월1일 워싱턴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양국이 정식으로 조인한다.

하지만 휴전후 3개월내 열기로 한 정치회담은 판문점의 예비회담조차 열릴 기미도 없다.

자, 국가재건이 급하다. 국민담화에서 밝혔듯이 10억달러 원조자금을 받게 된 이승만은
전쟁폐허를 복구하고 경제를 일궈야하는 부흥사업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다.

<계속>


출처. 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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