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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승만史(2) 한미동맹의 탄생 ⑮ 닉슨 방한과 미군 철수
작성일 : 2018/01/06 14:39 / 조회 : 229 / 추천 : 20


"공산당과 협상은 이렇게 하는 것" 고단수 외교의 칼춤! [새연재:한미동맹]

이승만의 `예측 불가능성` 외교전술에 "미처 몰랐다" 닉슨 감동
"협상 하나마나 통일전쟁 재개 요구"...아이크는 미군철수 발표

인 보길 / 뉴데일리 대표, 이승만포럼 대표

1953년 11월12일 닉슨(Richard Nixon) 미국 부통령이 한국을 찾아왔다.
휴전협정 조인 100일되는 날, 한미방위조약 조인 후 불과 40여일이 지난 때였다.

‘통일 없는 휴전을 결사 반대’하는 이승만을 위협하고 달래서 겨우 휴전을 성립시킨 미국은
그러나 이승만에게 “정치회담으로 통일을 달성시켜 주겠다”고 장담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90일이내 개최’(휴전협정60조) 한다던 정치회담은 그 마지막 시한 날 10월26일에서야
겨우 판문점에서 예비접촉을 시작한 참이다.


이승만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예상했던 반격의 기회가 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내년 1월1일까지 한국을 통일시키라”고 호통 치면서 
`휴전 방해 안하기` 유예기간을 ‘180일로 연장’시켜준다고 발표하였다.
 ‘90일간만 휴전을 방해않겠다’던 기간을 90일 더 보태주는 아량을 보이며 
 “그 기간내 통일을 못하면 나는 자유행동”한다고 ‘단독북진 전쟁’ 재개를 거듭 공언하였다.
“전쟁 재개땐 미국 지원”을 말하던 이승만은 이제 “우방 지원 없어도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승만이 언제 깰지 모르는 휴전협정은 다시금 원점으로 회귀한 판국이 되어버리자, 

힘겹게 예비접촉이 시작된 직후 아이젠하워는 부통령을 이승만에게 파견한 것이었다. 

벼랑끝전술을 펼치며 원하던 방위조약을 체결해줘도 ‘북진 통일’ 구호는 여전하고

2억달러 원조를 준대도 고집을 안꺾는 ‘통일 병자’ 이승만을 또 제거할 수도 없는 노릇,
당근으로 안 되면 채찍뿐, 아이크는 전에 없이 강력한 친서를 닉슨에게 들려 보냈다.
도착 즉시 경무대로 직행, 이승만을 예방한 닉슨은 2시간쯤 첫 회담을 가졌다.

당시의 풍경을 닉슨 회고록에서 본다. (The Memoirs of Richard Nixon’ 뉴욕, 1978).

[이승만 박사는 마른 체격에 키도 작아 보였다. 감색 양복에 감생 넥타이를 맨 그의 힘찬 악수와 당당한 걸음걸이는 78세(만) 노인으로 믿어지지 않았다.
양복 주머니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서한을 꺼내 그에게 건네며
‘나는 미국대통령의 특사이며 오래된 우정을 한국에 전하러 온 친구’라고 말했다. 

그 동안 이박사는 나를 뚫어질 듯한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집어들었다.
마치 편지의 무게를 재어보는 것처럼 침착하게 본투을 뜯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편지를 소리내어 읽는 것이었다. 

편지에서 아이젠하워는 위엄있고 분명하게 미국은 전쟁재개를 초래하는 어떤 행동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고 이대통령이 이 점을 명백하게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 박사는 다 읽은 편지를 무릎에 내려놓고 말없이 편지를 한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얼굴을 들었을 때 그의 두 눈은 눈물이 어려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매우 훌륭한 편지입니다.“ 이 박사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나서 마치 편지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경무대에서 손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과 닉슨 미국부통령.(자료사진)
▲ 경무대에서 손을 잡은 이승만 대통령과 닉슨 미국부통령.(자료사진)


닉슨이 아이크의 요구에 대한 확고한 보장을 요청하자 이승만은 즉답을 피하며 말했다.

“북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동포들을 생각할 때 한민족의 지도자로서 어찌해야 하겠오?

가능하다면 평화적 방법이 좋겠으나 필요할 경우엔 무력을 써서라도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을 구해야 하지 않겠소? 이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되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미국 정책에 부합되지 않는 어떠한 일도 하고 싶지 않은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분단된 채로는 한국은 물론 미국에도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을뿐더러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쟁 평화론`을 노련한 논리로 펼쳐 보였다.

새파란 젊은이 40세 부통령이 역전 노장 8순노인의 역사적 이야기들을 경청하고 있을 때
이승만이 미소를 흘리며 얼굴을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갑자기 내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더니
“언제가 되든지 내가 어떤 일방적 조치를 취할 때에는 사전에 가장 먼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통고할 것을 약속하지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요구한 대잡은 아니었다. 나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합의를 보기 전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단독조치를 취해선 안된다는 방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하였다.]

대사관에 돌아온 닉슨은 첫 회담이 소득없이 끝났음을 깨닫고 불안해졌다고 썼다.

백만시민이 닉슨 미부통령을 환송했다는 이한 기사와 환영음악회 기사.ⓒ동아DB
▲ 백만시민이 닉슨 미부통령을 환송했다는 이한 기사와 환영음악회 기사.ⓒ동아DB



★ 거국적 환영잔치...수십만 인파 운집...음악회선 뜻밖의 해프닝
다음날 13일 아침 중앙청 광장에서는 ‘우리의 은인 미국 부통령 닉슨 환영대회`가 열렸다.

학생과 시민들 수십만명이 운집한 이날, 이승만 대통령 부처는 닉슨 부처를 소개하였고
닉슨은 너무나 대규모의 환영에 감격한 듯 흥분된 얼굴로 연설하였다.

“미국에서는 일곱 살 어린이들까지 한국 국민을 어떻게 도와주느냐고 근심하고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어깨를 나란히, 몸과 마음이 한덩어리가 되어 공산당을 반드시 물리치고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직 전진이 있을 뿐입니다.”
서울이 떠나갈 듯한 박수와 환호가 그칠 줄 몰랐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아이젠하워 친서를 낭독하였다.

정상끼리 교환한 서한을 공개낭독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관례상 극히 드문 일이지만
이승만이  자주 이용하는 외교술의 하나로서, 미대통령등이 보내는 압력성 편지들을

신문에 전문을 공개한바 몇차례 있었지만 이처럼 군중앞에서 낭독시킨 것은 처음이다.

서울시장은 닉슨에게 금빛 행운의 열쇠를 주었고 닉슨 부인에겐 한복을 선물하였다.

미국 정부내에서 반공 강경론자로 알려진 닉슨을 이승만은 각별하게 극진한 대접을 베풀었다.

닉슨이 도착한 여의도 공항에서 경무대에 이르는 시내 연도에는 ‘1백만 인파’가 나왔다고 보도할 정도로 열광적인 환영인파를 보자 닉슨 부부는 두 차례나 차에서 내려 악수세례를 나누었다다. 

관공서는 물론 가정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달았고 거리에 인파는 닉슨이 떠난 15일까지 나흘동안 잔치분위기를 연출하였는데, 이것은 정부가 동원했다기보다는  “전쟁에서 나라를 구해준 은인이자, 한미방위조약을 맺어준 동맹자”로서 첫 손님인지라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닉슨을 반기는 분위기가 뜨거웠다고 언론이 보도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환영기사에서 “폐허화된 수도 서울을 직접 본 닉슨씨가 거국적으로 환영하는 한국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똑 바로 감지했을 것”이라고 썼다.

시공관(市公館)에서 열린 ‘환영 공연’에선 뜻밖에 이런 일도 일어났다.

[닉슨 부통령은 14일밤 그의 짧은 체한일정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감격의 장면을 직접 연출하였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보내게되는 14일밤 닉슨씨 부처는 시공관에서 그를 환영하는 예술의 밤에 참석하였는데 관현악단과 합창이 진행되는 도중 돌연 무대장치가 파손되어 여자 합창단 전원이 쓰러지고 막이 내리게 되자 무대정면 2층 최전열 좌석에 자리잡고 있던 닉슨씨는 돌연 기립하여 열렬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면서 전관람석도 호응하도록 종용하였던 것이다.
즉 구노 작곡 ‘병사의 합창’이 바야흐로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려는 무렵 돌연 20명의 여자 합창단이 서 있던 단이 무너져서 전원이 쓰러지고 관현악단의 연주가 중단되어 부득이 막이 내리자 전선시찰등으로 피곤한 몸을 쉬려는 듯 조용히 좌석에 앉아있던 닉슨 씨는 벌떡 몸을 일으켜 3분간에 걸친 열정적인 박수로서 쓰러진 합창대원들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실망의 충격으로 악기를 떨어트렸던 관현악대로 하여금 마치 황폐화한 한국재건사업을 힘차게 고무하듯 열광적인 연주를 다시 계속케 함으로써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주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보도).

이날 음악회 프로는 고전무용 (장고무, 태평무, 화랑무, 승무), 신라시대 관등놀이, 그리고 모윤숙 여사의 닉슨 환영 자작시 낭독, 해군정훈음악대의 민요 연주 등을 45분간 공연하였다.

이승만은 13일 환영대회후 닉슨을 정례 국무회의에 초청하여 각료들을 소개하였고,
닉슨은 “참혹한 전란을 이기고 전후복구에 매진하는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표한다”고 인사하고 경제재건을 미국이 적극 돕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자리에서도 이승만은 “공산당과 협상은 무용지물이며 군사적 승리만이 통일을 가져올 것”이라고 되풀이 하였으며 남감해진 닉슨은 무슨 수로 ‘북진포기 각서’를 받아낼까 초조해졌다고 한다.

중공군이 점령했다가 도망치면서 불을 지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는 중앙청을 돌아본 닉슨은 국회로 달려가 15분간 열변을 토한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을 제발 꺾어놓고 오라`는 특명을
받은 닉슨은 작심한 듯 국회의원들에게 제네바 정치협상을 통한 평화적 통일을 역설하였다.

“신익희 의장께서 통일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신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입법부 여러분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통일은 가능하면 평화적 통일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 없는 통일이 곧 국민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닉슨 부부(왼쪽)와 미국여성 건너 이승만 부부, 미군 장성들.
▲ 닉슨 부부(왼쪽)와 미국여성 건너 이승만 부부, 미군 장성들.



마법의 협상술 "이승만이 무슨 일을 저지를 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마지막날 이승만은 닉슨을 경무대로 불러 배석자도 통역자도 없이 단독회담을 가졌다.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하얀 종이 두장을 꺼내주면서 이승만은 말했다.

“보안유지를 위해 내가 직접 타이핑한 거요. 참고용으로 쓰고 찢어버려도 좋소.” 라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는 곧 따로 직접 편지를 써보내겠노라고 했다.

그 영문 타이핑 문서의 글을 요지만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은 이승만을 뜻대로 조종하고 있다’고 믿게되는 순간,
당신들은 당신들(미국)이 가지고 있는 가장 효과적인 협상 카드 하나를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희망을 잃게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미국이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평화를 위해선 어떤 양보라도 해줄 것으로 믿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서로 솔직합시다. 나는 그들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들은 본인(이승만)에 대해서는 평화를 위해서 무슨 양보라도 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은 이승만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의혹을 제거해주어서는
결코 안되는 것이다. 본인이 모종의 행동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끊임없는 제동력이 되고 있음을 당신들은 알아야 합니다....”

‘솔직해지자’는 이승만 대통령은 마침내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독자적 행동’을 끊임없이 말해 온 것은 “결국 미국을 돕기 위한 것”이었으며

“미국의 군사적 지원없이 한국만의 단독행동은 불가능하다. 한미 두 나라는 반드시 공동보조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승만은 닉슨의 손을 굳게 잡았다.

“대한민국이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할 나라는 미국 밖에 없고 도움을 주는 나라도 미국 밖에
또 누가 있겠소?” 드디어 이승만은 막내아들 같은 미국 부통령에게 눈물을 보였다.

이날 두 지도자는 다시 한번 ‘한미동맹’을 확인하면서 ‘통일을 위한 정치회담’에 대해서도
공감하였으며 “한국의 완전한 자유 독립은 통일 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조속한 통일을 위해 양국은 변함없이 협력해야 한다고 이승만은 거듭거듭 다짐하는 것이었다.

3박4일 방한 마지막날 아침 8시반 경무대로 출발인사 하러 온 닉슨은 기자들에게
“한미양국 공동목표는 한국 통일이며 이는 정치회담에서 이뤄져한다”고 말하고
“무의미한 대공유화정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새삼 강조하였다.

이승만은 닉슨과 동승하여 여의도 공항까지 나가 전송하였다.

미국 37대 대통령을 지내고 은퇴한 닉슨은 1978년에 출판한 회고록에서
한국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길게 기록해 놓았다. 

“나는 한국 국민들의 용기와 인내, 이승만 대통령의 정신력과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고
한국을 떠났다. 나는 또한 공산주의자들을 다룰 때는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 이대통령의 통찰력 있는 충고를 두고두고 생각해 보았다.
그후 여러나라를 여행하면 할수록, 많은 것을 겪으며 배우면 배울수록
그 노정치가가 얼마나 현명했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갈수록 감탄하게 되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카드놀이, 그것은 공산권을 혼란속에 떨게하며 
미국의 달러가 쏟아지게 만드는 이승만표 마술 `외교의 칼춤`이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카드 많이 만들자” 성탄절에 ‘외화 벌기’ 담화

성탄절이 다가오는 11월, 한국에 들어와 있는 수십만명의 미군 등 외국인들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성탄 선물을 고향에 보내야 하는 명절인데 서울에선 도무지 이런 물건들을 구할 길이 없었다. 복구 사업도 제대로 못하는 전쟁 폐허에서는 ‘성탄 분위기’조차 찾기 힘들 지경이다.

이들의 해결방법은 결국 일본이다. 일본이 만든 카드와 성탄기념품들이 대량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다.

“작년에 성탄 예물과 성탄 엽서를 많이 만들어서 팔게 하라는 담화를 낸 후에 그 성적이 매우 좋아서 외국인들이 이 엽서와 기념품을 사다가 자기나라에 많이 보냈던 것인데, 우리 한국인들도 차차 눈을 떠서 1년동안 틈틈이 만들어두었다가 때맞춰 팔 것으로 기대했던 바, 금년에 아직도 이런 물건이 장에 나오거나 PX에 진열한 것이 도무지 없으므로 여러 사람들이 각방면으로 구해도 얻기 어려워 매우 실망하고 있다한다. 

이 엽서는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각색으로 인쇄한 것을 한 장에 미화 25센트씩 주고 사게된다고까지 언론이 자자하니 우리 모든 미술가들과 이 방면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다 외화 벌기를 싫어하는지 잊어버리고 있는지 자연 섭섭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외국친구들이 한국산을 사서 성탄예물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하는 것인즉 우리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어 내다 팔면 돈벌이가 될 것이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이며, 외국인들이 아무것이나 사서 보내면 우리 능력 없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우리 경제를 걱정하는 친구들이 말하기를, 한국 풍속과 특색을 그린 엽서들이 일본에서 들어온다하며, 한국에서 난 것이 있으면 이것을 쓰겠는데 부득이 일본 것을 사게 된다하니 우리 경제발전을 이런 데까지라도 주의하여 생각하지 못하면 세계에서 도와주려고
해도 생활개선이 안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각성해서 부지런히 무엇이든 만들어
우리 스스로 발전케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승만, 미국과 판문점 예비회담에 잇따라 경고령 

닉슨 미부통령이 다녀간 뒤 외신들은 이승만 대통령의 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알기 위하여 잇따라 인터뷰 신청을 하였다. 이승만이 닉슨에게 어떤 보장을 주었는지, 휴전을 “반대하지만 방해하지는 않겠다”는 행동방침에는 변화가 없는지, 판문점에서 계속되는 정치회의 예비접촉이 공산측의 선전장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한국 휴전상태는 이대로 정착될 소 있을 것인지,
세계의 눈은 또 다시 이승만에게로 집중되고 있었다.
다음은 INS가 보도한 ‘이승만의 휴전 전망’ 요지이다.

이승만의 세계관 역사관 국가관이 엿보이는 글 (동아일보 1953.11.21)ⓒ동아DB
▲ 이승만의 세계관 역사관 국가관이 엿보이는 글 (동아일보 1953.11.21)ⓒ동아DB


★ “미국은 한국을 도우라, 또 하나의 체코를 갖고싶지 않거던...“

[동경15일발 항공편 INS제공=합동] 난맥 속에 빠진 현재의 한국 휴전 뒤에는 거대한 그리고
잠재적 폭발성을 내포한 문제가 가로 걸리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휴전 조건을 수락함에 있어서 이것을 다시 재고하기로 작정한 기한인 명년 1월28일까지도 그의 불만을 그대로 남겨놓게 되는 경우에 이대통령은 과연 어떠한 행동을 취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그것이다.

실로 미국과 세계에 대한 대단한 잠재적 중대성이 이 문제의 해답 속에 가로놓여 있음에 비추어 INS 통신사는 이대통령에게 그가 보는 바대로 정세를 전망해줄 수 있는가를 요청하였던바
이대통령은 친히 집필한 다음과 같은 기사로써 응답하였다. 

[과거 수십년 동안 미국에서의 평화주창과 평화론자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반전(反戰) 공식을
그릇된 전제위에 놓고 주장하여 왔던 것이다.
즉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는 대신에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평화를 얻어내려는 노력만 해왔다.

그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모든 인류사회에 있어서 정의만이 평화의 진실한 기초였다는 사실과 인류문화가 지탱되는 한 이것이 인류사회 우애의 초석이 되어야한다는 사실을 망각하였었다.
그리하여 각국간에 어떤 형식의 평화를 미봉적으로 마련하여 놓으려고 노력한 현실주의정치가들은 전쟁제조 세력들과 유화(宥和)하는 과정을 밟기 시작하였다.

이런 유화란 가장 흔한 방식—즉 약소국가의 영토 침략자도 약속대로 하려니 하는 허망한 바램으로 평화애호국가의 군비를 축소하는 것, 각양각색의 외교적인 에누리 흥정—의 형식으로 시종하였었다. 그러나 유화라는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면서 사들인 이 미봉적 평화의 과정이란 ‘정의의 원칙’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무참하게 실패로 돌아가곤 하였다.

유화론자들은 비단 평화를 획득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이 피하려고 노력하던
바로 그 전쟁들을 오히려 장려하여 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 2차에 걸친 세계대전은 고립주의정책이 세계정복을 꾀하는 자들에게 타국을 하나씩 차례로 패배시켜가면서 급기야는 모든 국가들을 굴복시키는 기회를 줄 뿐이라는 것을 모든 미국인들로 하여금 충분히 깨닫게 하였을 것이다.

20세기의 역사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기록들은 유화라는 것이 평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로 불가피하게 이끌려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 유화는 호전국가들을 영토와 부와 인적자원으로 배불려 줌으로써 그들을 강대하게 만들어주며 나아가서 그들은 새로운 침략을 꾀하게 되는 것이다.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소련은 명백히 세계정복을 목표로 하는 잔인무도한 모험을 시발점으로
하여 발족한 나라이다. 소련은 미국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평화를 추구하는 국가임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또 미국이 약소국가를 구원하러 나오지 않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북한 공산괴뢰를 한반도 남부로 보내 한국전체를 소련의 지배하에 넣으려는 야만적 시도를 하게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은 즉석에서 유화의 안티테제라고 할 결정을 내렸다.
그리하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미국으로부터 육해공군과 전쟁기재가 쇄도하게
되었다. 이것은 정의의 위대한 원칙을 떠받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의 시작이었다.
다른 자유국가들도 미국의 선도에 따라 작은 나라 한국에서 자유가 소실되는 것을 막는 것을 돕기 위하여 군대를 보내왔다. 자유애호국가들은 처음으로 무력에 호소하여 쉽사리 정의의 법칙을 침해하고 자위수단이 없는 소국을 도둑질하려던 침략도당을 응징하는 시도에 뭉치었다.

자유세계가 행한 바는 법치사회에 있어서 약한 사람이 강도당하였을 때에 준법적이고 평화애호자라면 누구나가 취하였을 바로 그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회에 있어서 약자를 돕는 유일한 길이다.
위법자는 처단되어야하며 이렇게 함으로써만 그 사회는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어떤 대가를 지불하면서라도 평화를 획득해야겠다는 일부 정객들은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어떻게 해서라도 전쟁을 막는 방법을 찾으려 하고 있으며.....
(중략).....물론 무서운 전쟁보다는 평화라는 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하나의 문제가 집요하게 제시된다. 

즉 이제 우리가 발포를 중지함으로써 제3차대전의 발발가능성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인가?

세계공산세력이 정복을 자행하는대로 맡겨두지 않고 적이 한반도전체를 병탄하는데 반항하는 것이 우리의 과오라고 치자. 그러면 다른 국가들은 고사하고 미국만이라도 평화와 안전이 보장될 것인가? 정상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을 공산주의에게 내주면 크레믈린을 고무격려하게 될 것이며 소련이 다른 자유국가들을 위성국가라는 노예수용소에 몰아넣게 하는 날을 더 앞당기리라는 것을 내다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물론 재앙일 뿐이다.....(중략)....
백만 중공군을 한국 땅에 남겨 둔 채로 이것이 평화라고 수락할 수 있겠는가?

첫째로 우리는 살아날 길이 없다. 둘째로 그러한 대공굴복은 결국 한국에서 전쟁을 끝낼 수 없으며 다른 지역에서 전쟁을 방지할 수도 없게 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소생을 위하여 싸움을 고집한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을 뿐이다.

“당신네들의 적이 소련이든 중공이든 일본이든 독일이든 간에 당신네 국토 안에 백만 대군의 적군을 주둔시킨 상태의 평화를 당신네들은 평화라고 수락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미국은 아무런 저항없이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또 하나의 체코를 갖고 싶은가?

그렇지 않으면 한사코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더 많은 한국을 갖고 싶은가?

만약 미국으로서 더 많은 한국이 나타나게 하여 격려하고 싶다면 미국은 대한민국이 중공군을
그 출발점으로 쫓아내는 싸움을 돕지 않으면 안된다. 한 많은 분할의 우리 땅에서 우리국토를
분할시킨 공산주의자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단 말인가.]
(동아일보 11월22일자)

이승만의 독립정신이 잘 요약된 말이다. 어찌 이승만만의 독립정신일 것인가.

여기서 ‘또 하나의 체코’란 말은 이승만이 해방후 ‘남북좌우합작’을 강요하는 미국과 싸울 때에도 되풀이 했던 말이다. ‘저항 없이 공산화된 체코’는 저 유명한 ‘뮌헨 협정’의 산물이다.

1938년 독일 뮌헨에서 영국 수상 체임벌린( Arthur 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이 프랑스와 함께 히틀러 앞에 굴복한 ‘유화의 상징’ 뮌헨협정, 체코의 일부 할양을 요구하는 히틀러에게 반항하는 체코를 돕지는 못할망정 “땅을 내주라”고 압력을 가한 평화주의자 체임벌린, 

다음해 히틀러는 체코를 침공 합병하였고 폴란드를 침략하며 세계2차대전이 일어난다.

‘전쟁을 피하고 싶어’ 체코를 양보했던 체임벌린은 노벨평화상까지 탔지만 화병으로 죽는다.

세계대전이 끝나자 히틀러가 싫었던 체코는 소련의 적화 공작에 저항 없이 공산화 되고 말았다.

그리고 뒤늦게 자유화 봉기를 일으켰지만 히틀러보다 잔혹한 스탈린의 철권탄압에 꼼짝 못하고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70년간 위성국 노예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통일협상은 1월말까지만...전투재개에 동참하라” 잇따라 담화 발표

이승만대통령은 9일 미국과 유엔우방이 정치적 수단에 의하여 한국을 통일 시키는 “최종기일은 명년 1월말일”이라고 재확인하고 만일 그것이 실패한다면 그들은 “전쟁재개에 자동적으로 참가해야한다”고 말하였다.

이 한국 지도자는 만일 필요하다면 단독으로라도 싸우려는 한국의 의도에는 아무 변함도 없다고 말하고, 이어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어찌 내 방침을 변경할 수 있는가”고 언명하였다. 또 이대통령은 참전우방가운데 일부 국가는 전쟁 재개에 참가하기를 원하지 않을것이라 지적하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한국전쟁이 그들 자신의 자유와 안전의 방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믿는 국가나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집에 돌아가게 하자. 남북한은 통일되어야한다. 북한에 있는 동포들은 우리들의 도움을 절규하며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행동해야 한다. 한국군은 전투를 원하고 있다. 아무도 우리 국군을 말리지는 못할 것이다“고 말하였다.

이대통령은 다음달 안으로 정치회의가 열리지 않을 경우 그가 취할 조치를 상세히 말해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다.

“.....누구나 알다시피 90일이라는 기한이 추가되어 있다. 만일 정치적 시도가 이 기한 내에 실패한다면 참전 제국은 통일전쟁을 재개함에 있어 자동적으로 우리들과 협력해야 한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독립민주 한국을 실현하려는 목적을 위해서 싸우게 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 목적은 무시되거나 망각될 수 없는 것이며 또 우리 의식 밖으로 몰아낼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평화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언제나 대한민국의 목적인 것이다.
”고 천명했다. 

이대통령이 명년 1월말일이 최종기한이라고 못박은 것은 정치회의 개최 마감일 다음날인
지난 10월28일부터 시작하여 90일간이라는 추가기간을 계산하여 나온 최종일이다.

이대통령은 싸우기를 원치 않는 국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유이다. 그들이 옳다고 믿지 않는 대의를 위해서 또 그들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지않는 대의를 위해서 그들이 피를 흘리는 것을 우리도 원치 않는다. 

우리는 충심으로부터 우리의 이성을 가지고 그들은 그들의 전쟁을 해왔고 우리도 우리의 전쟁을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바이다.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무익한 것이며
공산주의자들은 공정한 평화를 협상하려는 의지를 갖고있지 않다“고 단언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한국(한반도)의 남쪽에 대한 학살행위를 위한 힘을 증강하기 위해서만 휴전에
동의한 것이다. 판문점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역사상 유례없는 오만한 언행으로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휴전회담이 끝난 후에도 자유세계가 이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이것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민주적 원칙 하에서 한국을 통일 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대통령은 중립국들을 회담에 참석시킨다는데 반대입장을 분명히 재확인하고
“인도는 체코나 폴란드와 똑같은 나라이며 중립과는 정반대편에 서있는데 중립국이라 인정해줌으로써 우리가 또 기만당하기를 기대하는가”고 물었다. (조선일보 12월12일자)


판문점 예비회담 결렬...“대공협상은 무의미“ 담화.

이대통령은 15일 판문점 예비회담에서 미국측 대표가 퇴장한데 대하여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유엔측의 승리”라고 지적하는 한편, “종전사실로나 이번 경험을 통해 볼 때 공산주의자들과의 타협적인 태도는 아무 효력도 없다”는 것을 거듭 경고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미국대표가 자기 국가의 명예와 위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회담에서 퇴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판문점에서 공산측은 3개월간 한국정부가 애국반공포로를 석방하엿을 때 미국이 공모하였다고 비난하였다. 이것은 세균전 운운과 같은 수많은 허위비난중 하나이며

어떻게 하면 미국을 모욕하고 또한 쓸데없는 회담을 끌어나감으로써 자유국가들을 피로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주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특사 딘씨는 이러한 모욕을 더 참을 수 없었으며 공산측이 이 허위비난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유엔측의 유약한 정책을 잘 알고 있는 공산측은 이 요구를 거부하였으며 따라서 딘 특사는 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퇴장은 유엔측으로 볼 때 하나의 현저한 승리이며 전세계 반공인민들의 사기와 정신을 크게 고무할 것이다.

판문점 예비회담의 원래 목적은 정치회담의 시일과 장소를 결정함에 있었다.

그러나 공산측은 3개월 이상 수많은 무관한 문제를 제의하고 불필요하게 긴 발언을 함으로써 회담을 정체상태로 이끌어 왔던 것이다. 그네들은 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또 다시 3개월이나 그 이상 끌어갈 것이다. 우리들은 시초부터 공산주의자들이 어떠한 자들이며 또 그네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자들과의 여하한 회의도 이를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우리들은 이번 경험을 통하여 공산주의자들이나 소비에트 국가들에 대하여서는 온건하고 타협적인 태도가 아무 효력이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유엔측이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딘 특사는 최대한의 인내력과 적절한 위엄을 가지고 그의 사명을 다 하였으며 우리는 그를 자랑으로 삼는 바이다. (조선일보 12월17일자)

“한쪽만 양보하는 코미디 그만 치우자“ 이승만 외신 회견

[서울21일발 로이타 특전=세계] 이대통령은 21일 만일 정치회의 개최후 90일이 지나도 한국통일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북한에서 굶주리고 있는 동포를 구출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라고 천명하였다. 로이타 통신기자가 제시한 질문서에 대한 회답에서 이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미대통령과 덜레스 장관으로부터 미국을 방문하여 달라는 ‘비공식 초청’을 받았으나 공무관계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판문점 예비회담의 결렬은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예비회담은 이 이상 필요치 않다. 예비회담은 정치회의에 소련을 중립국으로 참석시키라는 엉터리 요구와 반공포로 석방에 대한 야비한 욕설을 7주일간이나 계속해 왔다. 이래서야 정치회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모든 양보가 한쪽에서만 행하는 이러한 희극을 그만 치우는 것이 좋다.”고 확언하였다. (조선일보 12월23일자)


대만 반짝 방문, 장개석총통과 ‘단독북진’ 전략 탐색

이승만 대통령이 돌연 대만을 다녀왔다. 사전예고도 없이 변영태 외무장관과 휴전회담 대표였던 최덕신 소장만 대동한 이승만은 27일 오후 여의도 공항을 출발하여 대북 송산비행장에 내렸다. “나의 이번 방중은 장개석 총통에 대한 개인적인 우정의 답례일뿐 정치적 이유는 없다”고
담화를 낸 이승만은 공항까지 나온 장개석과 만나 2박3일의 반짝 방문을 가졌다.

4년만의 재회, 건국후 미군이 철수하자 1949년 8월 장총통을 불러 진해에서 태평양안보동맹구상을 논의한바 있지만 중국대륙이 공산화되자 장총통은 대만에 고립되고 말았다.

만 하루나 같은 방중에서 진행한 이승만-장개석 정상회담의 주제는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승만의 목적은 개인전략을 가다듬는 차원이었다고 한다.
 미국주도의 정치회의가 깨질 경우 ‘단독북진 전쟁’ 재개의 대비책이었다.
즉 재개되는 한국전장에 장개석이 국부군을 얼마나 파병할 수 있는지,
동시에 중국본토를 공격하는 견제작전을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진단이었다는데,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자유 수호에 합의, 대공투쟁 강화’등 원칙론만 담겨있다.
같은 날 자유중국(대만) 국회에서 연설한 이승만은 전통적인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한중관계에서 국공내전과 6.25침략으로 반공투쟁을 공유한 세계적 보루임을 강조, 아시아 공동안전보장을 위한 협정을 만들어 공동전선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 미군 철수 개시...“가고 싶으면 가도 좋다. 우리는 싸운다” 경고

아이젠하워가 주한미군 철수를 선언하였다.
그가 좋아하는 조지아주 오거스타 소재 ‘소(小)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는 “평화협상 무드에 기여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지상군 2개사단을 우선 철수하겠다“고 26일 발표하였다.
전면철수냐? 중공군도 철수하느냐? 기자들의 질문에 백악관은 ”점진적으로 철수할 것이며
이번에 1차 철수“라고만 밝혔다.

이것은 두말 할 것없이 닉슨까지 보내 달랬는데도 불구하고 휴전반대를 꺾지 않는 이승만이
협상무용론과 전쟁재개를 계속 주장하자 아이크가 던진 강력한 견제구였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날아든 ‘미군 철수’ 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을 강타하는 충격이었다.

정치협상 실패시 통일전쟁 재개를 주장해온 발언을 무색하게 할 뿐 아니라,
협상에 나온 공산측에게 ‘미국은 전쟁 거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유화 선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한마디 사전논의도 없었던 터인지라 이승만은 성명을 발표, 아이젠하워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한미방위조약 조인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한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떤 국가도 그들이 한국에서 싸움으로써 그들 자신의 자유와 안전도 지켜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들의 국민을 싸우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전쟁 재개를 원치 않고 있으며 그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번 결정도 한국정부와는 사전 협의가 없이 이루어졌다. 나로서는 ‘최량의 우방’인 미국에 반항하고 싶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들과 협상도 안되는데 전쟁을 재개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평화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젠하워가 발표한 새로운 전략은 육군은 대폭 철수하되 해공군을 강화하고 원자무기를 실전배치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철수하는 2개 사단의 무기와 장비는 한국군에 넘겨주기로 하였다.

이듬해 3월 첫 철수부대 45사단의 환송식을 조선일보는 1면 톱시가로 보도하였다.

“아이젠하워 미대통령의 새전략에 따른 미군철수 제1진이 된 45사단 7천11명과 장교 50명이
제네럴 맥크리 호를 타고 떠난다. 인디언의 속설에 전뢰(電雷)를 일으킨다는 ‘선더 버드’(Thunder Bird) 별명으로 불리는 45사단은 ‘철의 3각지대’ 펀치볼 전투등 중동부전선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백설이 내린 인천제2부두에서 환송식을 개최하였는데 테일러 8군사령관은 본국의 리지웨이(현재 미국 육군참모총장)의 부대이동명령서 낭독하였고 무기 없는 빈 몸뚱이 병사들은
손을 흔들며 군함에 올랐다.
정부수립후에도 한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떠나더니 그때는 무기까지 다 가져갔으나 이번에는
그래도 우리국군에게 모기를 다 놓고 간다고 한다. 방위조약까지 맺었으니 벙세도 많이 변하였다. 비내리는 인천항을 뒤로 하고 제너럴 매크리호는 멀리 떠나갔다.”

45사단에 이어 40사단은 두달 후 5월에 철수하였다.

미국 상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준하자 사진들도 크게 보도한 조선일보 1954.1.29일자ⓒ조선DB
▲ 미국 상원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준하자 사진들도 크게 보도한 조선일보 1954.1.29일자ⓒ조선DB


▶ 한미 양국 국회, 방위조약 비준...이승만 축전 보내

해가 바뀌어 1954년, 미국의회 개회에 맞춰 한국 국회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준하였다.

조약은 정부가 헌법 제42조에 의거하여 국회에 비준을 요청한 것으로 외무 국방 양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5일 본회의에 상정, 토론을 생략하고 기립표결로 123명 출석 전원이 찬성하였다.

미국 상원은 26일(한국시간27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표결, 81대 7표로 통과시켰다.

상원 원내총무 윌리엄 F 노랜드 의원(공화당 원내총무)은 이 조약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대한민국이 60만 병력을 동원한 헌신적 전쟁노력을 높이 찬양한다. 앞으로 미국이 만약 어느 곳에서든지 전쟁에 휩쓸린다면 한국이 맨 먼저 자진해서 우리를 도우러 달려올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다. 다시 자유통일국가로 합치기를 열망하는 한국 국민을 위해 마귝운 변함없이 도와야 할 것이며 미국의 안전을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꼭 필요한 것이다.”

변영태는 “우리는 자유세계에 남아있기가 소원이다. 이제 그 보장이 생겼다.”고 성명을 냈고,

이승만은 직접 타이핑한 축전을 아이젠하워에게 띄웠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각하. 

우리 양국사이에 체결된 공동방위조약이 귀국 국회에서 비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은 각하의 성공을 충심으로 축하하는 동시에 침략을 저지하고 세계안전을 강화하려는 이 역사적 조약을 만드는데 있어서 각하가 크게 노력하신데 대해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한국정부 및 국민은 귀국 정부 및 국민과 더불어 우리 양국이 동지이며 간절한 공동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게 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승만“

‘간절한 공동사명’이란 말로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통일’을 다시금 환기시켰다.
이 비준서에 양국 대통령이 서명을 하여 원본은 워싱턴에 보관하기로 하였다.

서명한 비준서를 서로 교환하면 조약은 즉시 발효되어 한미동맹이 작동해야 할 것인데,
이승만과 한국민이 갈망하던 한미방위조약이 발효되기 까지는
10개월이란 세월이 더 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무엇 때문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비준서. 양국 대통령이 서명하고 서로 교환해야 조약은 발효한다. 사진은 서명전의 비준서.ⓒ조선DB
▲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비준서. 양국 대통령이 서명하고 서로 교환해야 조약은 발효한다. 사진은 서명전의 비준서.ⓒ조선DB


이승만 “월남 파병” 제의...“공동운명국가들과 공생공사 해야”

이승만은 공산군과 싸우는 인도차이나 연방에 한국군을 파견하겠다고 미국에 제안하였다.

프랑스와 월남 연합군은 호찌민(Ho Chi Minh 胡志明:호지명)이 이끄는 북월맹 공산군의 공격에 패퇴를 거듭하여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사실상 상실한 상태까지 몰려있었다.

“우리는 반공투쟁에서 어떤 아시아 자유국가도 고립되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다.
특히 똑 같은 공산침략을 받아 이런 사태를 체험한 한국으로서는 반공 형제국이 정복되려는 이때어찌 방관하겠는가”라며 이승만은 “공산군과의 전쟁경험이 풍부한 국군 1개사단 파견”을
미국 극동군사령관 헐 장군과 논의하고 아이젠하워에게도 보고케 하였다.

특히 이승만은 “라오스 정부에서 두 차례나 긴급지원 호소를 받았다”며 미국도 ‘모종의 이득’을 양해해주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변영태는 “공동운명국끼리 공생공사(共生共死)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반공승리를 다짐하고,
손원일 국방장관은 해군-공군도 의용군으로 나가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미국 국무성과 국방성도 긍정적으로 검토하였는데, 그러나 뒷날 미국측은 주한유엔군이 불안정해지고 중공군의 인도차이나 참전까지 불러올 위험이 있다며 ‘반대’로 돌아섰다.

이와 함께 ‘단독 북진’을 고집하는 이승만이 월남참전과 동시에 북한공격을 감행할까 우려하여
반대하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이 이승만에게 약속했다는 ‘모종의 이득’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제네바 정치회의 개최 결정...이승만 반발, 미국에 ‘참가 조건‘ 협상

판문점 예비교섭이 3월15일 결렬되었다. 본회의 날짜와 장소를 협의하는 예비접촉에서 공산측은 엉뚱하게 “소련을 중립국대표로 참석시켜야 한다”는 선전공작에 올인하다가 갑자기 “6월의 반공포로석방에 미국이 공모하였다”며 욕설로 가득찬 성명을 발표, 회담 결렬을 획책하였다.

미국측 딘 대표가 “허위 발언 철회하라”며 퇴장한 것이 12월12일, 이듬해 1월 베를린에서 열린
4국 외상회담에서 “정치회의를 4월26일 제네바에서 열자”고 결정 공동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무기연기 되었던 예비회담은 사라지고 곧장 본회의가 열리게 된 것이다.

미국의 덜레스, 영국 이튼, 프랑스 비도, 소련 모로토프 등 4국 외상들은 한반도 평화문제 토의를 위한 정치회의에 소련은 참전국자격이 아닌 중립국 자격으로 참가하기로 결정하고 인도차이나 문제도 다루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한국은 즉각 반대하였다. 변영태 외무장관은 “한국과 협의도 동의도 없는 결정은 부당하며 
평화회의도 공산측 방해로 이미 말살되었다”고 주장, “소련을 중립국으로 참석시킨 것은
유엔결의 위반일뿐더러 중공 정권 승인을 노린 1단계 음모”라고 규탄하였다. 

이승만은 “또 하나의 소련 책략”이라며 덜레스가 소련을 주최국의 일원으로 초청한 것에 

“미국이 또 놀랄만한 정책전환을 행하였다”고 미국의 양보에 비난을 퍼부었다. .

“소련이 민주진영을 현혹시키려는 또 하나의 책략. 건설적 성과 거둘 수 없다”

“미국이 휴전협정 규정에 배치되는 회담에 동의하다니, 판문점 회담의 재판 될 것이다.”

“공산당에 대한 단 하나의 효과적 전술은 우세한 힘으로 대항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3.1절 기념사에서는 “제네바 회의에 아무 기대도 할수 없으며 대한민국은 우방의 원조가 없더라도 실지를 회복하기 위하여 독자적 행동을 취할 것“이며 절반의 국토를 공산침략하에 남겨둔 채로 휴전하고 평화통일 운운하는 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자유의 항복이라고 규정,
”우리는 자유냐 노예냐 양자택일을 하지않으면 안된다.“고 역설 하였다.


덜레스에 질문서, 아이젠하워에 친서를 보내다

이승만은 브릭스 주한대사를 통하여 덜레스에게 질문서를 보냈다.

“지난해 8월7일 한미방위조약 가조인 전날 작성한 이승만-덜레스 공동성명은 유효하다.

한국 대표단을 제네바에 파견하기 전에 다음 사항에 대해 문서로 보장하기 바란다.

1. 90일내로 끝맺지 못할 경우 동 회의는 완전종료한 것으로 간주할 것..

2. 회의중 공산측이 선전으로 시종하면 한미양국은 동시 퇴장한다는 약속을 지킬 것.“

이 밖에도 이승만은 소련과 중공을 참석시킨 양보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라는 요구와,
회의를 원탁회의로 할거냐 대좌식 회의로 진행할 것이냐까지 물었다. ‘외교귀신’다운 질문이다.

덜레스가 모두 “보장한다”는 회답을 보내자 이승만은 또 추궁하였다.

“한국문제와 인도차이나 문제를 동시에 동일장소에서 협상할때 발생하는 위험에 대책은 가지고 았느냐? 이 점에 대한 당신의 보장은 석연치 않다. 각각 다른 토의체에서 진행한다 하지만  

미국측이 한쪽 협상에서 공산측에 양보를 준다면 다른쪽 협상에서도 양보할 위험이 크다.
당사국이 참석하지도 않은 비밀회의에서 절충될 위험성이 없다고 보장하고 철저히 감시하라.

소련이 교전국의 자격으로 참가한다는 것을 명백히 해주고, 한민족의 적인 중공이 회담을 계기로 사실상 유엔의 승인을 받게 된다는 점에 한국은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정치회의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무력으로 남북통일 하는데 있어서 

무기, 탄약, 공군 해군의 지원을 확약해 달라, 이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군이 외국군 지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즉시 원조해줄 것을 요구한다.
공산군이 무제한 증강 중이므로 한국군 증강에도 제한을 두지 말아 달라. 

이 2가지중 한가지가 충족된다면 우리는 제네바 회의에 참가할 것이다.“.

고비마다 군사원조를 ‘강요’하는 이승만, 덜레스와 아이젠하워는 이번에도 ‘항복’ 하였다.



“미국의 원조 보장 받고 참가” 국민들에게 경위 설명

제네바 정치회의에 참가를 결정한 이승만은 대표단 10명을 구성하였다.

변영태 외무장관을 수석대표로 한 대표단이 4월19일 여의도 공항을 출발하는 날,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의 군사적 지원 강화에 명료하도고 실질적인 보장을 받았기 때문에” 제네바 회의의 참가하게 되었다고 국민들에게 설명하였다.

*이승만 출발성명 요지

한국정부는 제네바 회담에 참석하라는 미국의 초청을 수락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가 왜 지금까지 수락을 오래 끓었는가하면 그 이유는

1. 우리는 제네바 회의에서 어떤 결과를 획득할 수 있을지 크게 의심하여 왔고

2. 이 회담으로 말미암아 공산측에 전쟁준비기간을 더 주게 되리라고 우려하였으며

3. 이 회담이 대성공이라고 전세계에 선전된다면 그 결과 우리 한국문제는 더욱 무한정 끌려가
해결하기 곤란하게 될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수주일 기다리는 동안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고도 실질적인 보장을 얻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다. 다행히도 현재 우리가 받은 보장은 대단히 명백하고도 고무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보장아래 우리는 이제 신념과 상당한 희망을 가지고 제0네바에 가게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위대한 우방이며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조적 정신을 발휘하기 원하였기 때문이며
만약 이번 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때 미국은 그 이상 공찬측과 더 협상한다는 것이 소용없는 동시에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또 결정적으로 깨닫게 되리라고 우리는 간망하는 바이다.
한국으로서는 이번 회담이 평화적 통일을 도모하려는 시간소비적 시도의 마지막이 되어야한다. 공산측이 우리 북한의 인민을 살육추방하며 우리국토의 북반을 중공의 1개 성으로 만들고 있는
이때 우리가 수수방관할 수 없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중략)....우리 우방들이 공산주의자들과 협상을 통하여 해결짓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것인가를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평화 달성의 희망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이 회담에 참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정신에서이다...“

<계속>

출처. 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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