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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난 도움 준 시슬러, 이승만에게 “원전 만들 인재 50명 유학보내라”
작성일 : 2018/10/04 15:37 / 조회 : 10 / 추천 : 1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131화(7552)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발생한 5·14 단전 사태는 내가 오랫동안 관여해온 전력 분야에선 깊은 ‘트라우마’였다. 미국의 전력선과 국내 전력설비 확충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암흑사태의기억은 오래갔다. 전기는 밥만큼 소중한 문명 필수품이었다.  

<4>과학기술 진흥 1호는 원자력
차관 빌려 발전소 확충해도 부족
전기 목마름 대책으로 원전 선택
미국 대통령 과학고문 시슬러
원전 행정·연구소·인재양성 조언
과학기술 진흥전략 한국에 첫 적용
20년 뒤 고리 원전 1호기 시험운전
과학기술 도전 "꿈은 이뤄진다" 1호


1957년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모습. 당시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56년 3월 2만5000kW 용량의 3호기를 완공했지만 한국의 전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중앙포토]

1957년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모습. 당시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56년 3월 2만5000kW 용량의 3호기를 완공했지만 한국의 전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중앙포토]

  
1950년대 당인리발전소가 전기 희망 
하지만 정부는 6·25전쟁이 끝나고 전후복구가 본격화한 다음에야 비로소 실질적인 전력 공급 확충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당인리화력발전소(69년부터 서울화력발전소로 개칭) 확장이다. 당인리발전소는 일본강점기인 30년과 36년에 용량 1만kW의 1호기와 1만2500kW의 2호기가 각각 준공됐다. 6·25전쟁이 끝난 뒤인 56년 3월 2만5000kW 용량의 3호기를 준공하면서 발전소 전기 공급량을 기존의 두 배로 늘렸다. 국민에게 전력 부족 해결의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당시로선 대사건이었다. 이 3호기는 82년까지 소임을 다하고 사라졌다. 1, 2호기는 앞서 70년 수명을 다했다.   
1967년 당인리 화력 발전소 전경. 굴뚝에서 수증기만 나오고 있는 지금과 달리 검은 매연이 심하게 발생하는 모습이다. [주앙포토]

1967년 당인리 화력 발전소 전경. 굴뚝에서 수증기만 나오고 있는 지금과 달리 검은 매연이 심하게 발생하는 모습이다. [주앙포토]

   
미국 거물 전력 엔지니어 시슬러의 조언
한국은 당인리 3호기의 준공으로 전력 부족을 일부 메울 수 있었지만, 여전히 전기에 목이 말랐다. 전후 복구사업으로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이 미처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핍은 갈망을 낳았다. 국내에 전문가가 많지 않았기에 만성 전기부족 현상을 해결하는 데 외국 전문가의 의견이 절실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 56년 7월 미국 전력계 거물인 워커 시슬러(1897~1994) 박사를 초청했다. 
1957년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모습. 당시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56년 3월 2만5000kW 용량의 3호기를 완공했지만 한국의 전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중앙포토]

1957년 당인리 화력발전소의 모습. 당시 주변은 한적한 농촌이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는 56년 3월 2만5000kW 용량의 3호기를 완공했지만 한국의 전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원자력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다. [중앙포토]

  
정부는 미 개발차관을 얻어 당인리 발전소를 확장했는데 이를 열성적으로 도와준 인물이 시슬러 박사다. 시슬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물자생산국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종전 직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0)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지시로 유럽 전력망 복구 작업을 지휘했다. 유럽의 전후 복구를 돕는 마셜 플랜에도 참여했다. 이런 인연으로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오른 뒤 과학고문을 맡았고 한국 지원에도 나섰다. 그는 코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63년 국제조직인 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와 64년 미국 엔지니어 단체인 전미기술아카데미(NAE)의 창립에 관여한 거물이다. 전력 분야에서 계속 일하며 에디슨사 회장, 세계에너지회의(WEC) 의장, 미국 원자력산업회의 의장 등을 지냈다.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기도 광릉의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모습니다. 맨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 아이젠하워 당선인 ,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다.아이젠하워 당선인은 한국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내설고 당선했다. [중앙포토]

1952년 12월 방한한 미국 대통령 당선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기도 광릉의 수도사단을 시찰하는 모습니다. 맨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 아이젠하워 당선인 , 백선엽 육군참모총장이다.아이젠하워 당선인은 한국전쟁 종식을 공약으로 내설고 당선했다. [중앙포토]

  
"한국 20년 안에 원전 가동" 예언 적중 
이런 인물이 57년 7월 8일 이승만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원전의 효율을 설명하며 전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 계획을 세워 원자력 발전을 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우라늄이 같은 무게의 석탄보다 300만 배나 많은 전기를 만든다는 그의 설명에 이 대통령은 귀가 솔깃했을 것이다. 조바심이 난 이 대통령이 한국은 언제쯤 원전을 가질 수 있을지를 묻자 시슬러는 “20년 뒤면 가능할 것”이라고 답했다. 호언장담 같았던 그의 예상은 20년 뒤인 77년 이 땅의 첫 원전인 고리 원전 1호기의 시운전을 하면서 그대로 실현됐다.   
1952년 12월 한국전쟁 도중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서부전선 최전방 미군 부대를 방문해 장병과 야전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다.[중아포토]

1952년 12월 한국전쟁 도중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서부전선 최전방 미군 부대를 방문해 장병과 야전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다.[중아포토]

  
1인당 GDP 70달러의 한국의 원전 도전 
시슬러가 이 대통령을 만났을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70~80달러의 최빈국이었다. 전기는 물론 당장 먹을 쌀도 모자랐다. 봄철 기근을 뜻하는 ‘춘궁기’나 ‘보릿고개’라는 말이 귀에 익숙한 시절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사람 두뇌밖에 없었다.   
  
1960년 6월 김포공항에 도착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허정 국무총리 등 3부 요인이 맞고 있다. [중앙포토]

1960년 6월 김포공항에 도착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허정 국무총리 등 3부 요인이 맞고 있다. [중앙포토]

행정·연구소·인재양성 삼박자 추진 
원자력 발전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시슬러의 자문은 조직과 사람에 집중됐다. 그는 크게 세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정부에 원자력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둘째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해 연구를 진행하며, 셋째 관련 과학기술자를 키우기 위해 50명 정도를 선진국에 유학 보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지원과 연구소, 인재 양성을 결합한 이러한 추진 방식은 과학기술 분야 진흥을 위한 기본 전략이다. 이런 방식이 한국에 적용되기는 처음이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이는 수많은 `처음`을 위한 첫 삽이었다.   

[출처: 중앙일보] 전력난 도움 준 시슬러, 이승만에게 “원전 만들 인재 50명 유학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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