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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지하신문
작성일 : 2019/03/04 18:13 / 조회 : 11 / 추천 : 0

[언론인 3.1 운동] 이종일의 지하신문과 이승만의 지하신문

▲ 구한말 이승만과 [제국신문]을 창간했고, 3.1운동때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지하신문을 찍어 전국에 배포한 묵암 이종일 선생 동상.ⓒ자료사진


언론인 이승만, 그리고 이종일의 ‘지하신문’...3.1운동 확산 불 지르다

3.1운동 당시 한반도엔 한국인 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일본 총독부가 1910년 8월29일 강제합병과 동시에 한국인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모두 폐간시켰기 때문이다. 단 하나 신문은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를 [매일신보]로 이름을 바꾸어버린 총독부 기관지뿐이었다.

식민 무단정치 10년 만에 터져버린 독립만세 운동은 그러나 억압되었던 언론자유부터 대폭발을 일으켜 독립운동을 전국에 학산 지속시키려는 지하신문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말았다. 

기미년 3월1일 오후2시, 종로 파고다공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군중들에게 난데없이 신문 수천부가 뿌려졌다. 3월1일자 [조선독립신문(朝鮮獨立新聞)] 창간호 전면에 게재된 뉴스는 손병희 김병조 등 민족대표 31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었다는 내용이다. 천도교 월보(月報)과장 이종일(李鍾一)의 지휘로 제작된 이 신문은 그날 33인 대표였던 이종일 등이 체포되자 후계조직이 이어받고 2진도 체포되면 3진이 제작하는 식으로 현재 확인되는 호수만 제42호까지, 8월29일엔 ‘국치기념호’도 찍었는데 그후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지하신문들에 힘입어 전국을 휩쓴 만세운동 당시 배포된 인쇄신문, 등사판 신문등 각종 유인물 신문은 국내만 29종, 만주에 13, 연해주 5, 중국 7, 미국-프랑스등 5종 등 확인된 것만 59종에 달한다. (정진석, ‘3.1운동은 지하신문이 확신시켰다’. 월간조선 2019.3월호).



▲ 3.1운동때 이종일이 만든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 첫호.ⓒ자료사진


★ ‘3.1운동 지하신문’ 실물 보관한 이승만의 유품

이들 지하신문의 존재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건국후까지 오랜 기간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경찰 기록에서 짐작만 할 뿐 그 실물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뜻 밖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에서 네 가지나 발견되었다. 하와이에서 이승만이 유명을 달리한 뒤 정리한 유품 속에 [조선독립신문]을 비롯, [국민신보] [진민보] [자유민보] 등이 당시 실물 그대로 소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놀랍고 반가운 학계에서는 그때부터 3.1운동과 지하신문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3.1운동 당시 미국에 있었던 이승만은 이 지하신문들을 언제 어떻게 손에 넣을 수 있었던가.

1918년 윐흔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이 나오면서부터 국내에 밀사와 밀서를 보내 ‘독립투쟁’을 촉구하고 독려하였던 이승만인지라 3.1운동과 동시에 발행된 지하신문도 국내 동지들중 누군가가 이승만에게 보내 준 것은 아닐까. 여기서 이승만과 이종일 두 사람의 남다른 인연을 추적하게 된다.



▲ 1898년 7월 이종일이 이승만과 함께 창간한 [제국신문]ⓒ자료사진


★ 한국 최초의 ‘일간지 시대’..."신문은 교육과 혁명의 무기" 

1919년 2월 말, 자신이 사장인 인쇄소 ‘보성사’의 문을 걸어 잠그고 3.1 독립선언서를 대량 인쇄해낸 묵암(默菴) 이종일(李鍾一·1858~1925)은 일찍이 언론인이었다.

이종일이 찍어낸 지하신문 [조선독신문]을 평생 간직한 이승만은 배재학당시절부터 언론인이 되었다. 
이승만의 언론경력은 너무나 눈부시다. 

학생조직 ‘협성회’ 지도자로 협성회 회보의 주필로서, 서재필의 [독립신문]에 기사와 논설을 쓰는 청년리더로서 “날마다 신문을 내야겠다”며 한국 최초의 일간지 [매일신문]을 창간한다.

[매일신문]의 사장겸 주필, 기자인 이승만은 이때 러시아-프랑스에 대규모 이권을 내준 고종황제의 비밀 외교문서를 폭로하여 한국최초의 국제적 필화사건을 일으키면서 정면대결, 러시아의 부산영도 조차계약 등을 무산시킨다. 

 잇따라 “대한제국 출범을 축하”하는 또 하나의 일간지 [제국신문]을 이종일과 함께 창간한다. 

이때도 [매일신문]과 같은 한글 전용 신문, 친구들이 말려도 이승만은 듣지 않았다고 한다.

17세 연상인 이종일이 사장, 23세 이승만이 주필로서 서울 장안의 지가를 뜨겁게 달구다가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던 이승만은 반역죄로 투옥된다. 

특히 1901년2월부터 1903뇬 4월까지 이종일의 요청에 따라 죄수 이승만은 몰래 논설을 써서 [제국신문]에 게재한다. 옥중 논설자체가 세계 언론사에 드문 일이거니와, 27개월동안 무려 260편이 넘는 논설에 매일 주장한 내용들은 그야말로 자유-평등-인권 등 급진적 혁명적인 옥중 독립운동이었다. 이승만은 교육문제, 기독교 중심의 백성교화를 비롯하며 특히 통상을 통한 무역입국, 새 알자리 개발, 상업적 농업 등 현대적 자본주의적 제안으로 왕국을 흔들었고, 혼인 폐습, 미신타파, 심지어 최초로 크리스마스 축하 논설까지 썼다. 이 논설들은 1904년 러일전쟁이 터지자 부랴부랴 집필한 옥중저서 [독립정신]의 줄거리가 된다. 그후 석방된 이승만은 즉각 이종일의 [제국신문]에 다시 주필이 되었다가 도미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독립과 국민교육 수단으로 신문의 힘을 활용했던 두 사람이 3.1운동의 효과 극대화를 위해 지하신문을 발간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독립동지들의 전략적 사고가 아니었을까. 물론 3.1운동 준비당시 두 사람이 접촉한 기록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이승만이 밀서를 국내에 배포하면서 언론동지 이종일을 빼놓을 수 없었으리라는 개연성은 아주 높다 할 것이다.
더구나 이종일도 한성감옥에 투옥되어 이승만과 상당기간 의기투합했던 감옥동지였음에랴.
역사는 이처럼 단세포 동물이 아니다. 보이는 것만 역사라 한다면 약사학은 필요없잖은가.

출처. 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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