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잠든 이들을 기리며

이분들의 삶 앞에서 나의 그 어떠한 것도 희생이라 쉬이 부를 수 없으리

하와이 해변을 걷는다. 천연의 푸르름으로 가득한 바다를 바라보며 발바닥에 폭신하게 닿아 피로를 걷어주는 고운 모래를 밟으며 지금 내가 누리는 이 자유의 공기를 듬뿍 마신다. 

이 해변을 청년 이승만도 걸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가 즐겨 걷던 해변은 어디였을까. 그의 시선을 멈추게 한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 천혜의 자연 속에서 무엇을 그리워하며 또 무엇을 꿈꾸었을까. 

점점 떠오르는 해가 말해준다. 그는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꿈꾸었노라고. `동방의 등불`이 되리라는 타고르의 축복이 이루어질 그 날을 미리 보고 또 보았노라고. 


둘째날 아침 풍경 ⓒ 권혜진 기자 

광화문을 본 따 지어진 한인기독교회 터에는 이민 선조가 가져와 심었다는 수양버들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다. 수양버들을 올려다보다 문득 그 나뭇가지를 가져와 심었을 이름모를 이민 선조를 떠올려 봤다. 상상 속에 펼쳐진 장면은 고향집을 떠나며 부모와 이별하는 장면이었다.

 

"어멈 아범, 내 다녀오갔심다."

씩씩하게 인사했지만 문득 가슴 저 편에 불안감이 스쳐갔다. 

"나 무슨 생각하는? 독립자금 모을라구 그러는거 아녀?"

자식 떠나보내는 부모는 왠지 모를 떨림을 애써 대의(大義)로 덮었다. 

부모가 그리울 때, 고향 동무 생각날 때 마음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했다. 

무엇이 생명력 길게 버틸 수 있을까.  무엇이 고단한 내 육체를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래, 산야에 야생하여 생명력 강하고 약초로 쓰여 나를 치료도 해 줄

이 수양버들이 제격이겠다. 

함께 가자. 함께 미지의 땅으로 가서 고국의 안녕을 빌자. 

그러다가, 그러다가 그리움에 사무칠 때면 

바람에 흔들흔들 수양버들 잎에 내 마음 실어

그 바람 타고 고국에 다녀오자.

사뿐히 어멈 아범 어깨에 내려앉아 토닥여 드리고 오자. 

하나, 또 하나 조심스레 가지를 잘라 

어멈이 꺼내준 무명으로 고이 감싼다. 가만히 가슴에 안는다. 

 

이같은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떠오르면서 나는 찡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인기독교회 뜰에 심겨져 백년의 시간을 자라온 수양버들나무. 고국을 향한 이민선조의 마음이 이 땅에 심겼다 ⓒ 권혜진 기자 

수양버들 나무 옆에는 이승만 대통령을 기리는 `우남관`과 `독립기념관`이 있다. 하지만 이 두 건물 모두 굳게 문이 닫혀 있다. 
 

굳게 닫혀 있는 `우남관` 

`하나님, 안됩니다. 이건 아닙니다.` 속으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승만에 관한 기억이, 기록이 봉인되어 버렸다. 

이 공간에 놓을 사진들, 유품들, 기증받은 물품들....

어디에, 어떻게 배치할까 설레였을 그 마음에도 외면의 먼지가 쌓여간다. 

오직 조국의 독립과 안녕, 번영을 위해 불태운 그의 꽃같이 아름답고

솔같이 푸르른 한 평생의 시간들이 부정당하고 있다.  

분명 뿌리는 같은데 고개를 젓고 있다.

한 쪽은 힘껏, 이승만의 끈을 붙잡으려고 하고,

한 쪽은 싹둑, 그 끈을 자르려 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허락하신 국부(國父)가 살아내신 삶,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만 알려지게 해주시고 인정받게 해주세요.` 


굳게 닫힌 우남관. 왜 그의 일생을 그저 묻어두려 하는가 ⓒ 권혜진 기자 

빅아일랜드섬 힐로에는 이민 선조의 자립과 독립자금 마련을 위한 동지촌이 꾸려지고 `숯사업`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고 결국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옛 가마터와 이승만 생가 근처에 피어있는 무궁화만이 조국의 무궁한 영광을 꿈꾸었던 이승만과 동지들의 염원을 보여준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올드랭 사인 곡조에 맞춰 애국가 부르며 무궁화 씨앗을 심는다. 

오늘도 실패한 숯 만들기. 

약속한 독립자금 수일 내로 보내야 할 터인데.....

저 나무는 무언 잘못을 했길래 헛되이 베어지고 태워지고 버려지는가. 

내 동포는 무언 잘못을 했길래 먼 타지에 와서 헛되이 고생하는가. 

자책이 몰려올 때, 원망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 검게 그을린 팔로 그저 눈물만 훔친다. 

무궁화, 영원의 꽃

이 작은 씨앗 안에 담긴 무궁한 아름다움

그래, 대한도 그렇게 무궁한 영광으로 피어나리라.

마침내 그 아름다운 빛을 발하리라. 

흔들리는 무릎을 세워 다시 가마터로 향한다. 

빅아일랜드섬 이승만 생가 부근에 피어난 무궁화  ⓒ 권혜진 기자 

"Long ago, far off,

we fell on fields of honor, remember us now.

아득한 옛날, 아주 먼 곳에서

우리는 명예의 들판에 쓰러졌네, 이제 우리를 기억해주오." 

 

이름도 생소한 나라를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스무 살 남짓한 청년들이 하나 둘 쓰러져갔다. 피비린내 나는 그곳을 명예의 들판이라 부르며.....

어느새 이들이 마감한 그 생의 두 배를 살았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이들도 마땅히 살았어야 할 그 인생의 시간들을 지나왔다. 

그들은 수 십 년이 지나 태어날 나를 위해 자신의 생을 바쳐 자유를 지켜냈다. 

그들이 기꺼이 자신의 생을 버려 내가 거저 자유의 생을 얻었다. 

자유대한을 위해 하는 나의 그 어떤 행위도 이들의 짧은 생애 앞에서 쉬이 희생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기에.....

기억할 것이다. 그 이름을 부를 것이다. 

부르고 기억함으로써 그들이 죽음과 맞바꿔 우리에게 안겨준 자유, 

대한의 하늘과 바다, 땅 곳곳에서 무궁히 숨 쉬도록 할 것이다. 

우리 다시는,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어서는 아니된다. 


ⓒ하와이 출신 한국전쟁-베트남전쟁 전사자 추모 공원비 뒷면 ⓒ 권혜진 기자 

기억해야 할 이름, 이름들.....ⓒ 권혜진 기자
이제 본 기자가 참가자에게 요청한 `나에게 하와이 트레이닝이란 (          )이다`로 제3회 트루스포럼 하와이 트레이닝의 연재를 마치려고 한다. 

`나에게 하와이 트레이닝이란 (내 삶에 의미가 된 이름들과의 만남)이다. 극히 일부만 알고 있었던 국부 이승만, 하와이 이민선조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 그리고 하트 참가자들.....하와이 곳곳에 있는 그의 흔적들, 비석에 새겨진 이름들, 일상을 함께 지내면서 불렀던 이름들 모두 실재가 되어 내 하트에 하트로 남겨졌기 때문이다.`

출처 : 프리진뉴스(https://www.freezin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