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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진우 피살
1945.12.25 대한민국 건국에 크게 기여한 한민당 당수 송진우가 새벽에 자택에서 피살됨.
• 보성 적색 테러 사건
1946.8.15 전남 보성군 좌익 폭동으로 경찰관 1명 사망, 3명 중상
• 대구10.1폭동
1946.9.28 조선공산당 박헌영의 지령에 의해 대구를 시작으로 영남권에 확산된 폭동, 대구경찰서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뒤 우익 인사, 경찰 가족들을 학살. 경찰관 피살 39명, 민간인 피살 44명.
• 연안경찰서 및 각지서 피습사건
1946.10.20 조선공산당 당원들이 연백 경찰서와 3개 지서를 습격한 사건. 연안경찰서의 임학성 외 7명의 경찰관과 우익인사 서기원 등 4명, 및 온정 지서에 감금했던 김창순과 경찰관 2명을 강제로 납북.
• 부산경찰서장 피살 사건
1947.6.14 아침 출근길에 집 앞에서 원산민청 동맹원 정봉석에 의해 권총 사격을 받아 순직
• 수도경찰청 소속 경찰관 피살 사건
1947.11.11 박일손 경위가 정동 골목에서 권총 사격을 받아 순직. 1945년에도 부산에서 2명, 광주에서 1명의 경찰관이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다.
• 장덕수 피살 사건
1947.12.2 한민당 정치부장으로서 한민당 세력과 이승만 세력을 연결하여 대한민국 건국에 크게 기여한 장덕수가 피살됨. 범인 재판 과정에 백범 김구가 증인으로 불려나감으로써 관심을 모으기도 하였다.
• 개성 대동청년단 피살 사건
1947.12.16 개성시 본동 가로상에서 민완식 단장이 남로당원에 의해 권총으로 피살됨.


• 5.10총선거 방해
1948.5.10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으로 총203명이 피살되었다(선거공무원 15, 후보 2, 경찰관 51, 공무원 11, 가족 17, 양민 107).
• 여수순천반란
1948.10.19 제주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 중 준비 중인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제14연대에서 좌익분자들이 일으킨 폭동. 남로당 이재복의 지시로 지창수, 김지회, 홍순석 등이 주동하여 일으킴. 여수 시내를 장악한 좌익들은 경찰관, 기관장, 우익단체 요원, 지방유지,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다. 한민당,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서북청년단, 민족청년당 등 우익 단체의 요원들이 인민재판을 받아 학살당하였다. 반란은 순천으로까지 번져 순천경찰서장 양발원 총경을 비롯해 400여명의 경찰관이 죽고, 500여명의 민간인 학살당하였다.
• 대구반란 사건
1948.11.2 여수·순천 반란 사건 진압에 경황이 없는 틈을 타서 대구주둔 제6연대의 좌익 하사관들에 의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11월2일의 1차 사건에서는 조장필 소위 등 장교 4명과 사병 4명이 피살되었다. 12월6일의 제2차 사건에서는 장교9명이 피살되었다. 1949년1월3일의 제3차 반란에서는 포항 교외 오촌 비행장에서 백달현 소위와 하사관 1명이 사살되었다.
• 전남지사, 경찰청장 호위경관 피살 사건
1948.12.17 광주에서 순천으로 차량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무장 폭도들의 습격을 받아 비서1명과 호위경관9명이 순직함.
• 탄10용사
1949.5.4 개성 송악산 지구에 대규모로 공격해 온 북한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10명의 특공대가 토치카를 공격하고 전원 산화하였다.
• 울산국민회 간부피살
1949.6.21 울산군 범서리 중리의 국민회 간부 최해술이 4명의 남로당원에 의해 장총으로 피살됨
• 경북7월폭동
1949.7.20 달성광산 제1지구에서 광부 장도명 외 3명이 타살당함.
• 김호익 경감피살
1949.8.12 서울시 경찰국 사찰과 김호익 경감이 사무실에서 모 고관의 명함을 위조해 정문을 통과한 남로당원에게 권총으로 피살됨.
• 경북 공비출몰
1949.12.24 문경군 신북면 석봉리와 석달리에서 국군으로 가장한 무장폭도들에 의해 주민 86명이 총살됨. 1950.1.10 안동군 원곡면 사월동에서 국군으로 가장한 무장폭도들에 의해 8명이 학살됨.
• 6.25전쟁 희생자 통계
국군 전사 41만5004명 국군 전상 및 행방불명자 42만8568명, 민간인 학살사망 12만8936 고문사망 24만4663 부상자 22만9625 납북자 84532 행방불명자 30만3212, 북한에 징발된 의용군 40만.
• 6.25전쟁 당시 서울 기독교인 학살
1950.7.10 피난하지 못한 목사들을 종로 YMCA에 강제로 소집하여 인민군환영대회를 열게 함. 주모자는 경동교회 교인이었다는 김욱과 대구10.1폭동 주역 최문식 목사였다. 그러나 환영회가 친북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행사 이틀 뒤부터 목사들을 검거하기 시작하여 옥사, 총살을 시켰다.


• 전북 순창군 복흥면 학살 사건
1950.7.20인민군 진주로 108명의 우익인사, 25명의 경찰, 150명의 군인, 920명의 민간이 학살됨.
• 삼천포읍 민청원 난동사건
1950.8.12 사천군 축동면 길평리에서 인민군과 동네 좌익들이 박해남 등 우익인사 4명을 총살
• 남해군 경찰관 학살사건
1950.8.30 남해군 창선면 상죽리 뒷산 공동묘지에서 보도연맹원 가족들이 경찰관 4명을 살해. 8.29 창선면 율도리 치안대원들이 우익인사 1명을 살해. 8.26 창선면 치안대원과 보동연맹 가족들이 우익인사 1명을 살해. 9.2 창선면 자위대원들과 보도연맹원 가족들이 경찰관 1명을 살해.
• 대전형무소 학살
1950.9.20 퇴각하는 인민군이 우익 수감자 6,831명을 학살. 대전의 성프란시스코 수도원에서도 우파 인사, 군인 및 경찰관 가족, 미군 협조자 700여명을 학살.
• 서대문형무소 수감 우익인사 납북
1950.9.17-28 7천 내지 9천명의 인사들이 납북됨. 대부분 도중에서 피살됨
• 마포형무소 수감 우익인사 납북
1950.9.17-20 1200 내지 1400명의 인사들이 납북되어 북으로 끌려가다가 처형됨.
•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1950.9.27 퇴각하는 인민군과 좌익들이 수감 중인 1천여 명의 우익 인사들을 학살
• 정읍학살 사건
1950.9.27 감금된 우익 인사 150여명이 폐광으로 글려가 총살되고, 20여명은 정읍유치장에서 총살되고, 100여명은 유치장 속에서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임.
• 양평학살 사건
1950.9월 하순 경기도 양평에서 600여명이 남한강 백사장에 큰 구덩이 속에서 학살됨.
• 청주, 제천, 음성 지역 학살
1950.7 공무원, 경찰, 군인, 한청단 및 기타 민간인 252명이 학살됨.
• 수원, 화성, 오산 지역 학살
1950.7 우익인사 120명이 학살됨.


• 패주 북한군 양민학살
1950.10.5 충주에서 국군입성 환영만세를 부르는 부녀자 5명을 살해하고 감금된 우파지도자 36명을 총살. 원주에서는 200명이 납치된 다음 행방불명. 홍천에는 천주교당 지하실 속에 감금되었던 40여명의 신도들이 행방불명. 춘천에서는 200명이 북괴군에게 학살당함.
• 전북 옥구군 학살
1950.8.2 미면 면장 등 12명을 총살. 1950.9.27-29 미면 미제마을 뒷산에서 117명을 학살, 이면 신촌마을 뒷산에서 관여산 마을의 우익 인사 248명을 학살, 원당리 마을 뒷산에서 원산북리 등의 우익인사 30명을 학살, 신풍리 유운마을에서 13명을 학살. 9.27 둔율리, 신풍리의 우익인사 가족 43명이 우물 등에 수장되어 학살됨.
• 광주형무소 학살
1950.9.28 광주형무소에 수감 중인 2천여 명 가운데 기업인 현준호, 전 전남지사 최영욱, 순천시장 박난순 등 우익인사 70여명이 먼저 학살되고, 나머지는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너릿재에서 집단 학살됨.
• 서울 낙산 학살 피살
1950.9.23 서울 낙산에서 북한군이 시민 80여명을 학살
• 논산 학살사건
1950.8.28 충남 논산군 성동면 우곤리에서 민청 대원들이 조창수 등 우익인사 72명을 살해
• 개신교 목사 및 신도 납북 및 학살
남궁혁, 송창근, 김영주 등 납북되거나 학살당한 목사는 장로교 177명, 감리교 44명, 성결교 11명, 성공회 6명. 북한에서는 장로교 240명, 감리교 46명이 학살됨(목회자 540여명과 7,500여명의 신자가 피살되거나 납북됨)
• 호남지역 천주교도 학살
목포본당 신자 20명 피살, 광주교구 신자 70여명 피살, 전주교구 신자 71명 피살.
• 왜관 수도원 학살
경북 왜관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36명이 순교함.
• 임자도 절부암 학살
전남 임자도에서 100명,150명 단위로 구덩이를 파고 교인과 양민이 학살됨
• 논산 병촌교회 학살
60여명의 교인이 학살됨.
• 전남 영암읍 교회 학살
신도 24명이 학살됨


• 전북 옥구 해성교회 학살
전북 옥구군 미면 해성교회에서 49명의 신도가 학살당함.
• 전남 영광군 염산교회, 야월교회 학살
영광군 염산면의 염산교회는 전교인의 3분의2가 넘는 77명이 학살됨. 염산면의 야월교회도 전교인인 65명이 학살됨.
• 호남지역 민간인 학살 상황
호남은 민간인 학살의 최대 피해지역으로서 총12만 2799명의 피살자 가운데 7만9,708명으로 전체의 6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 가운데서도 최대의 피해지역은 영광군으로 2만1,225명. 고창은 2,364명. 나주는 3,596명, 함평은 1,954명, 영암은 7,175명.
• 전남 곡성경찰서 피습사건
1951.9.30 지리산 공비 이현상의 부대의 기습을 격퇴하다가 17명의 경찰관이 순직
• 동래 무장공비 사건
1952.2.6 동래군 장안면 효암리 마음에 빨찌산들이 침투하여 김기호 장안면장 등 4명을 살해.
• 김제만경 학살 사건
6.25전쟁 당시 전북 김제군 만경면 민간인 176명을 학살
• 하동 무장공비 사건
1952.4.24 전남 하동읍에 무장공비들이 습격하여 양민 2명을 살해
• 거제도 포로수용소 만행
1952.6.11 공산 포로들이 장악한 제77호 감동을 비롯한 거제도 포로수용소 안에서 105명의 반공포로가 인민재판에 의해 살해됨.
• 괴산군 일가족 타살 사건
1952.6.26 충북 괴산군 사리면 표동마을의 안치양 가족 6명을 빨찌산들이 살해.
• 목포지역 학살
1950.9.7 12명의 좌익들이 전남 무안군의 박상옥의 가족 4명, 목포형무소 간수부장 박종섭의 가족 10명을 학살.
• 영동 무장공비 습격 사건
1952.8.15 무장공비들이 충북 영동읍에 침입하여 경찰관 2명, 휴간군인1명, 소방대원1명을 살해.


• 고부 금융조합 습격사건
1953.2.18 전북 정읍군 고부면 금융조합 지소에 무장 공비들이 침입하여 신화폐를 탈취하고 경찰관 1명을 살해.
• 서북청년단 활동
1947년에 북한 출신 반공청년들로 구성되어 건국,6.25전쟁을 거치는 혼란기에 경찰, 국군을 도와 질서 유지에 기여하였다. 수많은 단원이 희생되었다.
• 대동청년단 활동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을 단장으로 하여 해방직후 혼란기에 질서 유지와 건국에 기여하였다. 지청천은 초대내각에서 무임소 장관을 역임하였다.
• 대한청년단 활동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잡다한 청년단체들을 통합해 만들어진 단체로서 6.25전쟁기에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구월산 유격대 활동
1950년12월7일부터 휴전이 되는 1953년 7월27일까지 초도를 중심으로 대동강 어구의 하취라도에 이르는 서해의 많은 섬들을 근거로 공산군과 투쟁. 8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내면서 적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 옹진반도 청년방위대 활동
1946.2.5 옹진군 당현리 옹진읍내 초등학교 교정에서 38도선 경비대를 조직한 이래 6.25전쟁을 거치면서 피난민 호송, 유격전, 유엔군 지원 등에 큰 공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270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다.
• 김창룡 중장 피살
1955.1.30 육군특무대장이며 반공전선의 선봉인 김창룡 중장이 출근길에 집 앞에서 허태영 대령에게 피살되었다. 배후 인물은 강문봉 준장과 정일권 대장.
• 휴전선 양민 학살 사건
1958.12.8 중립지대에 포함된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조산리에 사는 이대성 씨를 북괴군 5명이 납치해 살해.
• 파주 살인간첩 사건
1959.9.5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이천리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주민 임상준 씨가 간첩들에 의해 살해됨.
• 중부전선 국군 피살 사건
1960.3.9 중부전선 제5767부대 전방관측소 부근에서 잠복근무 중이던 3명의 병사가 사살됨.
• 베트남 전쟁 참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2개 사단 이상의 국군이 참전하여 5천 명 정도가 전사했다. 참전은 군사훈련, 장비 현대화의 계기가 되어 국방력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에 대한 군납을 통해 경제력을 신장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 해군함정 당진호 침몰사건
1967.1.19 동해 휴전선 근해에서 명태잡이 어선들을 보호 중이던 650톤급의 해군 56함 당진호가 북한 해안포의 포격으로 침몰하고 승무원 79명 가운데 39명이 전사하였다.
• 화천북방 북한군 침입사건
1967.4.12 중동부 전선 화천북방 비무장 지대에서 육군1692부대 전발순찰대가 북괴군에 공격을 받아 1명이 전사.
• 1.21청와대 기습 미수 사건
1968.1.21 북한 124군 부대의 무장공비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청와대를 기습하려다가 실패한 사건. 흔히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불리운다.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이 순직했다.
• 미군부대 침입 사건
1968.1.25 서부전선 미 보병2사단지역에 10여명의 무장북괴군이 침입하여 카투사 2명과 미군1명이 전사함.
• 연평도 어선5척 피납 사건
1968.6.17 연평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5척의 어선 44명의 어부들이 납북됨.
•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10.30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여 울진군 북면 화전민 마을에서 양양군에서 제사를 지내려 온 전병두 씨를 살해. 김재연 상사 전사. 11.14 삼척군 하장면 산골짜기 외딴집 최찬석 노인의 3식구가 살해당함. 울진군 부구우체국 집배원 강태희 씨가 살해됨. 11.25 영월군 외딴마을 우태봉 씨의 가족3명을 살해. 11.25 강원도 정선군에서 강오용 중사가 전사. 백춘기 상사가 전사.
• 동해 어선4척 피납 사건
1968.11.7 어로저지선 근처에서 명태잡이하던 어선 4척과 어부 32명이 납북됨.
• 명태잡이 어선7척 피납사건
1968.11.9 동해 어로저지선 근처에서 7척 납북됨.
• 이승복 어린이 가족 피살 사건
1968.12.9 울진삼척 지구에 침투했던 공비 잔당이 평창군의 이석우 씨의 외딴집에 침투하여 가족에게 공산주의를 가르치자 10세 아들 이승복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 공비들이 어머니와 함께 돌로 처서 죽임.
•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
1974.8.15 국립극장에 열린 8.15경축식전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였으나 육영수 여사가 절명.
• 대성동 농민 납북사건
1975.8.27 판문점 옆 자유의 마을인 대성동 근처에 북한 군인 2명이 침입하여 농부 김세유 씨를 납치.


• 15사단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0.3.27 비무장 지대에서 수색 중 교통호에 은거중인 공비들의 공격을 받아 김윤길 상병이 전사.
• 아웅산 국립묘지 암살사건
1983.10.9 미얀마를 친선방문중인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국립묘소를 참배하려 했을 대 북한 무장공작원들이 묘소 전장에 설치한 원격조종폭단을 폭발시켜 서석준 부총리 등 17명이 순직.
•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 사건
1983.9.1 뉴욕발 서울행 대한항공 보잉747기를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격추시켜 승객과 승무원 269명을 살해.
• 부여 무장간첩 사건
1995.10.24 충남 부여군 석성면 정각리 정각사 입구에서 무장간첩 2명이 불심검문 경찰에 무성권총을 발사. 아군 2명 전사.
• 강릉 잠수정 침투사건
1996.9.18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상륙하려던 북한 잠수함을 통한 침투공비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아군 11명이 전사.
• 해군함정 참수리호 침몰 사건
2002.6.29 월드컵대회를 방해하기 위해 1999년 연평해전 지역 근처 수역에서 북한 경비정이 고속정 참수리 357호를 기습 포격하여 격침시킴으로써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이 전사하였다. 그것은 1999.6.15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4척을 대파하고 어뢰정을 격침시킨 서해해전에서의 승리에 대한 북한의 보복이었다. 당시 해군은 김대중 정부의 북한에 대해 유화적인 ‘햇볕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선제공격이 제약 당함으로써 큰 희생을 입었다.
 
<북한 지역 우익인사 및 기독교인 학살 사건>
• 신의주 학생 사건
1946.11.6 평안북도 용천군 용암포의 용암포 교회(담임목사 이기혁)에서 열린 반공청년들의 집회를 공산당이 노동자들을 시켜 공격케 하여 장로1명이 피살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 11.23 분개한 신의주의 학생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자 소련군이 비행기를 출동시킨 기총소사로 수십 명이 학살당함.
• 주일선거 반대 운동
1946.6.5 면, 군, 시, 도 인민위원장 선거일을 주일인 11월3일로 발표하자 교회가 선거일 변경을 요구. 10.25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이기혁, 김화식 목사를 비롯한 7인의 대표를 뽑아 김일성에게 진정했으나 거부됨. 이들은 나중에 공산당의 탄압에 못이겨 월남하거나 학살됨.
• 3.1절기념행사 수류탄 투척 사건
1946.3.1 평양 삼일절 기념행사장에서 김일성을 죽이기 위해 기독청년들이 수류탄을 던짐. 김일성은 생명을 건졌으나 많은 목사들이 보복을 당해 희생됨.
• 강양욱 암살 미수 사건
김일성의 외삼촌으로서 목사인 강양욱이 공산당의 앞잡이가 되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자 기독청년들이 암살하려다 아들 하나만을 죽이고 실패함. 많은 사람들이 보복으로 희생되었다.

• 김책 암살 미수 사건
평안북도 후창군의 후창교회 청년들이 공산당의 거물인 김책을 사제총으로 죽이려다 미리 발각되어 총살당함.
• 철원 기독청년 학살
철원군 장흥리 교회의 신한청년단 소속 청년들이 등사판으로 반공문서를 만들어 돌리다가 박승백 장로를 비롯해 전원이 체포되어 총살당함.
• 평양 산정현 교회 몰수 사건
1949. 6 교회를 몰수하려는 공산당 정부에 맞서 조만식이 다니던 평양 산정현 교회의 유계준 장로가 거부하다가 1950.6.24 총살당함.
• 흥남 배공청산단 사건
1949. 7. 24 이범석 국무총리의 무기 지원 하에 흥남 5대 공장을 장악하여 흥남지역의 인민군 활동을 마비시킬 작전을 수립하였으나 밀고로 인해 발각되어 약 1200여 명의 반공 인사들이 검거됨. 10월 17일부터 20일에 걸쳐 진행된 최고특별인민재판 공개재판에서 일괄 기소되어 가혹한 처벌을 받던 중 6.25동란 기간 국군이 함흥과 흥남에 진주하기 직전인 1950년 10월 12일을 전후하여 원형성 단장 이하 검거된 단원이 모두 학살당함. 용산효창공원 내에 이들을 기념하는 북한반공투사위렵탑이 있음.
• 6.25남침 직전 목사와 신부의 행방불명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내부를 단속하기 위해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목사들을 잡아 살해함. 대표적으로는 평양의 감리교 목사 현병찬, 산정현 교회의 김철훈 목사, 장대현 교회의 김화식 목사(기독교자유당 창립자, 남산현 교회의 배덕영, 송정근 목사, 장대재 교회의 신석구 목사, 강계의 본당 주임 석원섭 신부,
• 원산 학살 사건
1950.10.8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우익인사 200여명은 철산리 교외에서 총살한 다음 시체를 바다에 버리고, 350명은 형무소 뒤편 신풍리 뒷산 기슭 방공호 속으로 끌고 가 학살한 다음 다이나마이트로 방공호 입구를 폭파하여 묻어 버림.
• 평양 학살 사건
1950.10 퇴각하는 인민군이 예비검속을 통해 잡아들인 우익 인사들을 평양의 칠골리에서 2500여명, 승호리 인근의 사도리 뒷산에서 4,000명 정도를 학살.
• 평양 장연 학살
1950.10.8 남한에서 납북된 인사 1,800명이 학살됨.
• 함흥지역 학살
1950.10 함흥 감옥에서 700명, 충령탑 지하실에 200명, 정치보위부 지하실에서 300명, 덕산의 니켈 광산과 반룡산 방공굴에서 각각 6천여 명 이상씩 학살. 즉, 함경도 지역에서만 1만2천여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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