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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왜 "남한"이란 좁은 우물에서 바라보나... 전직 기자의 "이승만 평전"
작성일 : 2026/10/06 17:26 / 조회 : 6 / 추천 : 0

[최보식의언론=심양섭 `이승만 평전` 저자· 정치학 박사]

심양섭 `이승만 평전` 표지

이승만을 ‘국부’와 ‘독재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건국·동맹·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의 공과를 함께 지닌 지도자로 재평가하는 책 『이승만 평전』이 출간됐다.

저자는 이승만을 아타튀르크·나세르·리콴유와 비교하며, 분단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선택과 건국, 한미동맹·농지개혁·교육 확대 등 국가 기반을 마련한 지도자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와 서울시장 직무 인수위원을 지냈고, 미국 워싱턴대학교(UW) 방문학자로 두 차례 연수했다. 이화여대·아주대·한림대·가천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탈북청소년 대안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편집자)

내가 『이승만 평전』을 쓰면서 택한 방법은 비교사다.

한 인물을 남한이라고 하는 좁은 우물 안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와 같은 조건에 놓였던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함께 저울에 올려보자는 것이다.

20세기 전반과 중반, 제국의 해체와 식민지 해방을 거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했던 나라의 국민들이 절실하게 원한 것은 외국에서 수입한 추상적인 제도만이 아니었다. 국가를 세우고, 질서를 만들고, 외세와 협상하며, 국가의 생존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이었다.

튀르키예의 무스타파 케말 파샤, 곧 아타튀르크는 오스만제국의 붕괴와 독립전쟁을 거쳐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한 뒤 1938년 사망할 때까지 약 15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는 1956년부터 1970년 사망 때까지 약 14년간 대통령으로 통치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1년간 총리를 지냈다. 세 사람 모두 권위주의적 통치와 장기집권을 둘러싼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들의 국가적 위상은 단순히 집권 기간이나 권위주의 여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 건설, 독립과 주권의 확보,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역할을 함께 평가하며 국가적 지도자로 기념하고 있다.

그 예우의 방식은 분명하다. 튀르키예는 수도 앙카라 한복판의 아느트카비르에 케말 파샤를 국부로 모시고 정부가 지금도 공식 추모한다. 싱가포르는 리콴유를 “건국 총리”로 공식 기록하고, 정부가 그의 생애와 공헌을 기리는 추모 아카이브를 운영하며 건국세대 기념관도 건립하고 있다. 이집트 역시 나세르의 자택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수에즈운하 국유화와 그의 정치적 유산을 국가 기억으로 보존한다.

적어도 이 세 나라의 사례는 `장기집권`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국가건설 지도자의 동상과 기억 전체를 지우는 우리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왜 이승만을 오랫동안 ‘친일·분단·독재’ 세 단어에 가두어 왔는가.

이승만을 이해하는 첫 열쇠는 분단과 체제 선택을 구분하는 데 있다. 이승만은 ‘분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체제’를 선택했다. 1946년 정읍 발언도 미소공동위원회가 멈춘 상황에서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를 세워 소련 철수를 세계 여론에 호소하자는 논리였다.

이후 유엔은 1947년에 총선거를 결의했고, 소련의 위원단 입북 거부 뒤 1948년에는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승만은 미국이 선호하던 미소 협조와 좌우 합작의 틀에 순응하기보다 대중집회, 국내외 여론전, 외교를 통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의 정부 수립을 밀어붙였다.

국내 조직 기반이 취약했던 그에게 권력은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투’ 끝에 정치적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일찍이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장외집회 이래로 그는 대중의 정서를 읽고 그것을 언어로 동원하는 선동가였고, 국제정세의 틈을 파고드는 지략가였다.

이승만을 올바로 평가하는 두 번째 열쇠는 남북한의 권위주의를 적대적 상호공존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비록 이승만이 전시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권위주의의 길에 들어섰지만, 그것을 평가할 때는 북한의 김일성 전체주의 독재를 함께 놓고 평가해야만 한다.

북한은 이미 전쟁 전부터 공산당 일당지배체제였고, 전쟁 후에는 공산당 내부 숙청을 통해 김일성 일인지배체제를 굳혔고, 1958년을 기점으로 수령제 전체주의로 진화했다. 6.25전쟁 때 인해전술로 몰려온 중공군은 전쟁 후에도 계속 북한에 주둔하다가 4.19혁명 2년 전인 1958년에야 완전 철수했다. 소련이 동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공산화하려고 마수를 뻗치고, 중국마저 1949년에 공산화된 상황에서 ‘민주주의 타령’만 할 수는 없었던 것이 대한민국의 국가적 현실이었다.

세 번째는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의 선후관계다. 오늘의 풍요와 민주주의를 1950년대에 완성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역사에 결과를 거꾸로 투사하는 일이다.

이승만 정부는 농지개혁으로 지주 중심의 사회구조를 흔들고 자영농의 기반을 넓혔으며, 초등의무교육을 폭발적으로 확대해 인적 자본을 축적했다. 이승만의 반공포로석방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승부수였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포로석방의 결단으로 이승만은 일약 『타임』지의 표지인물이 되었다. 전쟁 뒤에는 미국 원조와 한미동맹이라는 안보·경제의 외부 조건을 확보했다.

박정희의 산업화는 `진공`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이승만이 국가·안보·토지·교육의 토대를 놓았기에 박정희의 개발국가가 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건국과 부국은 단절이 아니라 바통터치였다.

맹자는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고 했고, 『관자』는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안다’고 했다. 현대 정치학의 언어로 바꾸면 경제발전이 있고서야 정치발전이 가능하다는 명제이다. 가난하면서 민주주의를 유지한 경우는 인도를 제외하고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의회정치의 모국인 영국에서조차 경제가 발전한 뒤에야 정치가 발전했다.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천만 실향민, 그리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을 선택한 3만4천여 탈북민의 발걸음은 거대한 역사적 선택이다. 그들이 완벽한 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김일성의 전체주의가 아닌 자유의 가치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을 선택한 것이다.

“이승만이 분단을 초래했다”는 한 문장만으로는 천만 실향민과 탈북민들의 선택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승만은 분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냉전과 소련의 북한 점령으로 갈라지고 있던 한반도에서 어떤 체제의 국가를 세울 것인가를 선택했다.

전시수도 부산 기념관에 설치되었던 이승만의 동상에 붉은 페인트를 칠함으로써 철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들을 나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기념관과 동상은 한 나라를 세운 인물의 공과를 공적 공간에서 토론하고 기억하는 장치다. 나세르, 케말 파샤, 리콴유를 기억하는 나라들처럼 우리도 이승만을 비판하면서 기념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우연히 생긴 나라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선택과 건국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의 운명을 놓고 벌였던, 치열한 정치투쟁의 결과였고, 그 중심에 이승만이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지점에서 한국현대사에 대한 성숙한 토론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이승만을 올바로 평가하고 기념하는 것은 다음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이승만을 알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승만 평전』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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