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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과연 독재자인가
작성일 : 2010/07/28 09:16

과연 이승만은 독재자인가?
 
7월 19일은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서거하신지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우남 이승만기념사업회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45주기 추모식이 7월 17일 훼더럴웨이에 있는 금란교회에서 있었다. 나는 이 추모식에서 이 제목으로 강연을 하였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정작 이 부분에 대해 설명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과연 이승만은 독재자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나는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반국가적 내용에 대한 실태분석을 하는 연구팀에 참여하여 교육부의 교과서 편수지침에 “독재자 이승만”으로 아예 못박아 편수지침이 내려진 것을 보고 놀랐다.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에 대해 아예 국가가 ‘독재자’로 못박아 기술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이다.
북한의 대남 사상전이나 한국의 친북좌파의 사상전이 이처럼 혹독하게 국가의 사고를 마비시킨 것을 보고 아연 실색하였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승만에 대해 물어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독재자’라는 대답이 나온다.
건국대통령이 독재자로 무조건적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국가적 불행이요 재앙이다.

우선 한국 정치에서 이승만은 좌우합작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공산괴뢰정권, 특히 김일성은 이승만 박사 때문에 전 한반도를 공산화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북한은 무조건 이승만 박사를 괴뢰도당이니 매국노니 또는 독재자로 매도한다.
이승만 박사는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정통성이 없다는 공격은 거짓이란 것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승만 대통령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것은 이승만 박사 때문에 남한을 공산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국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폭동과 반란으로 건국을 방해하였지만 이를 진압하였고 건국 후에도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 아래 공산군으로 남침하였으나 이승만 대통령이 막아냈다. 그래서 이승만은 무조건 북한이 독재자로 매도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나 김정일은 이승만 박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최악의 독재자이고 보면 이런 공격이 단지 사상전이며 거짓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친북좌파 반역세력은 북한의 이 노선에 따라 이승만 박사를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고 이것을 국가적으로 맹신하게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정도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다음은 4.19세대나 5.16군사혁명 집단이 이승만 박사를 매도한다.
이승만 박사가 독재자여서 그에 대해 항거하였다고 해야 4.19의 위상이 높아지고 5.16의 정통성이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4.19는 오히려 이승만 박사가 하야함으로써 완성된 것이다. 또한 4.19는 부정선거에 항거한 것이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나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대해 항거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4.19세대의 재평가 노력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5.16세력은 제2공화국의 친북정책에 반대하여 궐기하였고 또 반공을 국시로 한 점 등 오히려 이승만 박사의 노선을 따른 점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5.16군사쿠데타는 대한민국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과도 절대로 대칭적 관계에 있지 않다. 그럼에도 5.16세력이 이승만 박사를 매도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군사혁명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측면이 있으며,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개인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배경에 자리잡고 있다고 보인다. 대구폭동에서 형 박상희가 사형당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승만 박사는 좌우합작 공격으로 죽었다. 그러나 이것은 억울한 누명이며 이 누명을 벗겨야 할 때가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이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대부가 되겠다는 생각에서 4.19학생의거를 혁명으로 근거 없이 격상시켜 대한민국의 건국과 나아가 제1공화국과 이승만 대통령을 폄하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것은 순전히 정치적 누명에 해당하며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이제 한국 정치에서 ‘독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주화운동’에 대한 뜻부터 살펴 보아야 한다.
민주화운동은 논리적으로 독재에 항거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보상위에서 간첩과 빨치산도 민주화운동 공로자로 결정하고 명예회복하고 보상한 것에서 정확하게 표현되었듯이 한국 정치에서 민주화운동은 친북좌파들의 반국가활동, 그것도 계급혁명, 즉 계급독재를 지향한 공산혁명을 지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다는 것은, 계급독재를 지향한 공산혁명 운동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가적으로 김대중씨가 죽기 직전에 이명박 정부를 ‘독재’로 지칭한 것에서도 한국 정치에서 말하는 독재의 의미를 살펴보아야 한다. 김대중은 좌파 정권은 민주, 우파 정권은 독재라고 이름을 붙였다. 따라서 친북좌파세력이 독재라고 말하는 것은 우파 정권이란 뜻이다.

종합해서 본다면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란 것은 우파정권에 항거하여 공산혁명 운동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을 하였다는 사람들은 이승만 대통령뿐만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과 전두환 대통령 등 우파 정권의 대통령들을 모두 독재자로 매도한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도 독재자로 매도하지 않는가?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민주주의자, 애국자, 반공주의자, 그리고 보수주의자였음을 말하는 것일 뿐 진정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독재의 뜻을 살펴보자. 독재(dictatorship)은 고대 로마에서 국가의 위기 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어느 집정관에게 절대적 권력을 부여한 것을 말한다. 그를 독재자(dictator)로 불렀다. 이 때의 독재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요즘 우리가 말하는 독재는 고대 그리스의 폭군(tyrant)에 더 가까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기가 높은 한 개인이 시민의 절대적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절대적 권력을 휘두른 것을 말한다.
현대에서, 브리카니카 사전에 의하면 독재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 효과적인 헌법적 제한이 없이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는 정부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정의로서는 독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고 본다. 나는 독재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헌법적 제한을 초월하여 절대적 권력을 차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현대 사회에서 절대적 권력 보유는 비민주적으로 간주된다. 절대왕정에서는 왕이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였다. 고대 로마에서 한시적으로 국가적 위기시에 헌법적 제한 내에서 부여하였던 절대적 권력이 왕정이 되면서 제도화되었고 왕은 그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고 행사하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삼권분립에 의해 입법권과 사법권 그리고 행정권이 분리되었고 어느 누구도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지도 행사하지도 못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의 인권이 동등하고 모든 사람들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기본원칙에 의해 사회가 조직되어 차별적으로 권리와 의무를 보장하지 않는다. 과거의 혈통에 의한 차별적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던 것이 지금은 오직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의해 사회적 역할이 주어진다. 다만 공산사회는 혈통대신 신분에 따라 사회적 역할이 주어져 과거의 차별적 사회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법의 지배(rule by law) 원칙이 확립되어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권력은 법에 의해 한계가 정해진 것으로 개인적 권력이 아니라 법에 의해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독재자는 법 위에 군림하면서 특정 계층에는 혜택을 베풀고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단지 절대적 권력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독재로 매도하기는 힘든 것이 만약에 그 절대적 권력의 보유 목적이나 행사가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라면 독재로 매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절대권력의 보유 자체가 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고대 로마에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여야만 하였던 것은 특정 국가적 위기에는 절대적 권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절대적 권력이 정당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의 절대적 권력이 신생민주국가에서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 행사의 목적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에 의해 독재 여부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경우 공산당이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고 특히 공산당의 당수가 수령의 이름으로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나쁜 의미의 독재에 해당하는데, 공산당은 모든 사람의 평등권을 인정하지 않고 특정 계급에만 주권을 인정하여 그 절대적 권력을 차별적으로 행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제도화된 독재라고 말 할 수 있다. 다만 북괴집단의 경우 수령절대주의에 따라 수령 개인이 절대적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특정 계층을 탄압하는데 쓰기 때문에 가장 나쁜 형태의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

이승만 박사의 경우, 그는 평생을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자유민주국가를 건국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나 유지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고 일정기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정착되어 민주주의가 제도화될 때까지는 일종의 민주주의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과 중공을 등에 업고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한 대한민국을 없애기 위해 건국전부터 폭동과 반란으로 방해하였고 급기야 북한의 공산주의 집단은 우세한 공산군으로 대한민국을 말살하기 위해 남침을 하였다. 이런 국가적 위기에서 우리는 고대 로마에서 필요로 하였던 것과 같은 선의의 독재가 필요하였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그 절대적 권력은 이승만 개인이 가진 카리스마, 그 개인이 가진 절대적 권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없는 한국민과 민주주의가 제도화 되기 이전의 그 취약성을 보완하여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제도화되기까지 필요한 기간 민주주의를 보호할 섭정, 곧 절대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그러한 권위를 보유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오히려, 공산주의자들의 건국 방해 및 대한민국 전복을 노린 군사적 침략 기간 절대적 권위로 나라를 지킬 인물이 필요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이 그 권위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보유한 적이 있는가? 없다!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삼권분립 원칙에 의해 입법, 사법, 행정권이 분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승만 대통령은 신생 독립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제도화하는데 필요한 개인적 카리스마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그 개인적 권위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민주주의가 제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을 차별적으로 대우한 적이 있는가? 다시 말해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차별적으로 행사한 적이 있는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사람의 권리와 의무를 평등하게 부여하고 보장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혈통이나 신분에 따라 차별적으로 법을 적용한 적이 없다. 삼권분립에 의해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하였다. 또한 이승만 대통령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한 적이 있는가? 없다!
선거를 거부한 적이 없고 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4.19에는 학생들의 의거를 칭찬하고 부정선거에 대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임하였다. 그의 사임은 신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정도에서 제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학생들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그 민주주의 제도가 보다 더 확고하게 정착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을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나 자신을 지지하는 특정 계층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는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해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였다.
부산정치파동은 전쟁 중 통일이냐 휴전이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서 자신의 정치적 리더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했던 조치였다고 본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한 쿠테다 계획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중대한 시국을 맞아 통일을 성취하고 민주주의가 정착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본다.

중임제한을 철폐한 사사오입개헌도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도화 되는데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한국의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필요한 기간 필요한 절대적 리더쉽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사오입 개헌은 요즘 우리 국회에서 흔히 보는 국회의장 직권 상정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나 또는 민노당이 전기톱이나 햄머로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또는 국회의장석을 점거하여 깡패들처럼 몸으로 돌진하면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폐기시키는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신사적인 행동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무리한 폭력을 행사하였다면 사사오입이 필요없을 한 명의 동의자를 더 확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비난하는 부산정치파동(발췌개헌, 발췌개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이나 사사오입개헌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만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신생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이 오히려 이승만의 절대적 권위를 필요로 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구체적으로 독재자로 알려진 짐바브웨의 무가베,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미얀마의 탄 수웨와 비교하여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를 수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떻게 보아도 이승만 대통령은 이들과는 구별되는 리더쉽을 행사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웠고 인도네시아 스카루노 대통령은 교도민주주의를 내세웠다. 이와 같이 신생독립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 어려움이 극복되기 전까지 국가는 특정 위기상황으로 보아야 하며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대적 권력이 필요한데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이 아니라 권위로서 그 위기를 극복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국가 위기시에 절대권력이 절대로 필요하다. 절대권력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을 경우 ‘독재’ 또는 ‘독재자’가 나타나거나 필요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였고, 국가를 건국하여야 하였으며, 민주주의를 정착시켜야 하였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며, 그 필요한 기간 독재가 필요한 작업이다. 이 필요한 독재를 이승만 대통령이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대체하였다.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그를 독재자로 매도하지만 당시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은 한국 정치에서 좌파들의 음모라고 보아야 하며 그리고 4.19세대와 5.16집단의 독선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만약에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그 제도화에 필요한 기간을 확보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신생 대한민국이 절대로 필요한 절대적 권위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 절대적 권위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행사하지 않았다.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였으며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데 썼다. 다만 반공주의에 따라 국가를 전복하려고 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였는데 이것은 권력의 나쁜 행사가 아니라 정당한 행사다. 마치 범죄자에게 엄정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듯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을 단호하게 단속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지 공산당처럼 특정 계급을 학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에 이승만이 독재자라면 그는 선한 의미의 독재자다. 이승만의 ‘독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탄생할 수도 없었으며, 공산집단의 6.25남침에서 국체를 유지할 수도 없었으며, 신생 민주국가로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국가의 기간산업의 기반을 닦아 놓아 그 이후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는 기초를 만들어 놓았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한다면, 이것은 그들이 반공주의를 내세웠기 때문에 공산주의 세력이 붙인 딱지일 뿐이다. 그런 의미의 독재라면 우리는 오히려 반길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의미에서 독재자로 매도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부가 교과서 편수지침에서 독재자 이승만으로 기술하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다.
4.19의거를 혁명으로 과대포장하고 5.16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높이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이나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4.19도 5.16도 없었기 때문이다. 4.19나 5.16은 결코 대한민국을 적으로 하지 않았고 또한 이승만 대통령을 적으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나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보다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궐기한 것이다. 물론 북한 집단이 이승만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누명은 반드시 벗겨져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라 건국과 호국의 영웅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과 반란, 그리고 군사적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데 필요한 절대적 권위를 제공하였다. 그는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또는 개인적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 그 절대적 권위를 행사하지 않았다. 오직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위해 헌신하였다.

말년에 하와이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오직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리고 조용히 가족과 제자 한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운명하신 것은 그야말로 영웅에 걸맞는 죽음이다. 재산을 불리거나 추종자들에 둘러쌓여 죽었다면 그는 한 사람의 독재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재산도 없고 추종자도 없는 쓸쓸한 죽음이야 말로 그를 진정한 건국과 호국의 영웅으로 불러 손색이 없도록 만든다.

우리는 이승만 같은 절대적 권위를 가진 건국 대통령과 호국 대통령을 가졌던 것을 자랑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라 건국과 호국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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