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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비화 / 사라질 뻔한 대한민국, 세 번의 위기
작성일 : 2008/04/12 00:14

이주영 건국대명예교수

 

 

역사에는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미국인들이 1789년에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국을 세웠을 때 영국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거의 모두 그 신생국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늘에 태양이 있듯이 나라에는 반드시 군주가 있어야 하는 데, 군주가 없이 시민 대중으로 이루어진 근대 최초의 공화국이 유지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아메리카 합중국의 해체 가능성이 보였다. 북부지역과 남부지역, 상공업 세력과 농업 세력, 친영국파와 친프랑스파 사이에 일어난 극심한 갈등으로 어렵게 만든 연방은 항상 깨질 위험 속에 있었다. 북부지역이 두 번 탈퇴를 시도했고, 남부지역의 탈퇴로 남북전쟁의 참화를 입었다.

만일 그때 합중국이 해체되었더라면, 식민지 상태로 되돌아갔든가 아니면 오늘날의 중남미처럼 수십개의 작은 나라들로 쪼개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통일국가로 살아남아 오늘날과 같이 부강하게 된 것은 ‘건국의 아버지들’과 그 후예들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건국의 기본 이념에 대해서만은 동의할 정도로 현명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살아남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와 같은 설명의 논리는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살아남지 못했을 경우에 이 땅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었을까 하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북한에 흡수되어 공산화된 하나의 통일국가로서 조선시대처럼 중국의 속방이나 위성국으로 남게 되었을 것이다.

‘민족주의 사관’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결과는 잘 된 것이라고 정당화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 사관’이나, 또는 사회의 문명화가 자유와 번영이라는 인간 행복의 수단을 가져온다고 보는 ‘문명 사관’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결과는 큰 불행인 것이다. 그 경우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에 속하게 되어 북한의 생활방식과 생활수준에 맞추어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불행이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은 대한민국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산화되지 않고 미국 중심의 ‘해양문명권’에 남아 있게 된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최대 업적은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사라질 수도 있었던 나라였다
 
오늘날의 미국, 일본, 중국, 영국 같은 국가적 정체성을 가진 나라들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같이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낀 나라들은 국제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능성은 건국 이후의 역사를 보면 드러난다.

1948년에 대한민국이 출범했을 때 국내·외의 여론은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아주 강했다. 5.10 선거가 끝난 직후인 5월 14일에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는 미국이 장차 한국을 소련에게 포기할 것이라는 내용을 보도하였다. 그리고 17일에는 ‘뉴욕 타임즈’도 한국을 소련 통제 밑에 두려는 미국의 계획이 성숙 단계에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좀 더 뒤에 일어난 것이긴 하지만, 1949년 7월17일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좌파 지식인 오웬 래티모어는 ‘뉴욕 데일리뉴스’에서 “우리의 할 일은 남한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썼다.

이러한 발언들은 제2차대전 직후의 국제정세나 미국 대외정책의 기조에 비추어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루즈벨트에서 트루먼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행정부의 세계 정책은 모든 국제 문제를 소련과 합의 하에 처리한다는 원칙 위에 서 있었다. 그러므로 세계의 다른 지역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전체를 소련에게 양보할 의사가 있었다.

바로 그 가능성을 이승만 박사는 항상 우려하였다. 이승만 박사의 끈질긴 임시정부 승인 요구가 계속 미국 정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면서도 ‘적절한 절차’를 거처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던 것이 우려의 근거였다. 그 때문에 이승만 박사는 진상 규명을 위한 성명과 서한을 계속 냈던 것이다.

대한민국 승인은 파리 유엔 총회에서 불확실했었다
 
대한민국의 탄생을 반대하는 힘은 국내에도 있었다. 좌익들이 반대한 것은 물론이고, 김구와 김규식 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남북협상파도 통일독립촉진회를 조직하여 5.10선거 무효화 투쟁을 벌였다. 그들은 파리 유엔 총회에 호소하기 위해 대표단까지 구성하였다. 그것은 김규식이 수석대표 자리를 거부함으로써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김구는 미군과 소련군이 철수하고 나서 새로이 선거를 해서 한 반도 통일정부를 세우자는 성명을 발표하고, 같은 내용의 서한을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냈다.

이처럼 반대 세력이 컸기 때문에, 1948년 가을의 파리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승인이 통과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소련을 비롯한 공산 국가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인도, 시리아도 반대성향이었다. 그들이 반대하면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중동과 북유럽의 국가들이 동조하고, 중국도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승만 대통령은 승인을 위한 외교에 온힘을 기울였다. 장면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파견하고, 조병옥 특사로 각국을 다니며 호소케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친지들을 통해 각국 외교관들을 설득시켰다. 그 결과 유엔을 통과하였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때도 없어질 뻔 했었다
 
대한민국은 가까스로 탄생에는 성공했으나 뒤이은 북한의 6.25남침으로 또 다시 생존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남침을 받은 지 3일만에 국군의 절반이 없어지고 한달여만에 국토의 90퍼센트가 점령당하는 최악의 위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으로 반격이 이루어져 원래의 국토가 공산화되는 것은 막았지만, 중공의 인해전술 공격에 밀리게 된 미국과 참전국들이 무조건 휴전하려는 데서 또 다시 국가위기가 찾아 왔다. 중국, 또는 소련과의 전면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공산측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51년 1월초에 캐나다의 레스터 피어슨을 비롯한 이란과 인도의 대표 3인으로 이루어진 유엔 휴전위원회가 총회에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 그러한 우려는 사실로 나타났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없었던 것으로 해체하고 미국, 영국, 소련, 중공의 4대국의 감시 밑에서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한 반도의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이 없어질 수도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때마침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 하원의 요구에 따라 유엔 총회가 중공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전쟁을 계속함으로써 겨우 국가 해체의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제네바 정치회의에서도 없어질 뻔 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해체 위기는 1954년의 제네바 정치 회의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것은, 1953년에 조인된 휴전협정이 군사적 문제만 다루었기 때문에, 한 반도의 장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열린 회의였다.

이때 미국을 비롯한 유엔참전국 대표들은 대한민국을 해체시키고 유엔 감시 하에 한 반도 전체에 걸친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세우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이승만 대통령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줄 것을 대한민국 대표단 고문인 올리버 박사에게 부탁하였다. “만일 이승만 대통령이 찬성하지 않는다면 유엔 회원국들은 그를 돌보지 않게 되고, 대한민국은 완전히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위협도 덧붙였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올리버 박사는 전문을 통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이번에도 그 특유의 방식대로 완강히 거부하였다. 반대의 이유는 대한민국은 유엔의 계획에 따라서 실시된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세워진 나라이므로 북한만 새로 선거를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승만의 완강한 버팀에 유엔참전국들은 그들의 복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맺음말
 
59년에 걸친 대한민국의 생애가 이렇게 험난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다수는 그 실상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를 가져온 근본 원인이다. 그들에게 나라는 당연히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것을 세우고 지키고 키운 사람들의 피땀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놓였던 국제 환경이 얼마나 가혹한 것이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국민의 태도는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를 위험이 있다고 생각된다. 엉터리 정보를 가진 주식 투자자가 파산할 것이 뻔한 것처럼 나라의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현명치 못한 국민도 큰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무거운 마음 때문에, ‘자유와 번영’을 가져다 준 만59세의 대한민국에 대해 한없이 감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앞날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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