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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下野)로 민주주의를 지킨 이승만의 결단
작성일 : 2018/04/23 16:04 / 조회 : 54 / 추천 : 13

하야(下野)로 민주주의를 지킨 이승만의 결단


[건국 70주년 기획] 인터뷰 박진 전 이승만기념사업회 회장·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이승만 대통령의 존함을 들으면 가정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시나요?

초인적인 정신력을 가진 분이라고 느껴집니다. 나라를 잃고 주권을 상실했을 때 한 몸을 던져 그렇게 오랜 기간 역경과 시련을 딛고, 극복하고, 나라를 수립한다는 것은 불굴의 집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탁월해 불가능한 일을 하셨습니다. 애국심, 열정, 독립정신을 가졌던 분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 한민족 역사에서 이승만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기여는 어떤 것일까요?

역시 건국입니다. 나라가 없어졌는데 나라를 다시 만든 것 이상으로 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조선 말 열강들이 각축을 벌이면서 한반도에 지정학적인 충돌이 일어났을 때 우리나라는 갈 길을 모르고 헤맸습니다. 국민들은 나라를 믿고 ‘이 나라를 누군가가 구해 주겠지’라고 생각을 했지만, 결국은 그 당시 외교정책이 실패한 거죠.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정말 갈팡질팡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나라의 군주가 외국 공관에 가서 1년씩이나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거죠. 그때 한학을 공부하던 이승만 청년이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다가 한성감옥에 들어가서 영어(囹圄)의 몸으로 그 안에서 성경을 공부하고, 자유 사상을 접하고, 다시 깨어나 결국은 미국에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나라를 일으킨 것 아닙니까? 그 이상의 큰 업적은 없습니다.

-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애족에 대해 점수로 평가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감히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겠습니까?

저는 100점도 모자란다고 생각합니다. 애국심이 그 누구보다 강했던 분이고 자기 절제력, 애국애족 정신 등 모든 면에서 정말로 뛰어난 분입니다.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나 혼자서라도 대한민국을 세우겠다.’ 그거 참 눈물 나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을 우리 후세대가 정말 있는 그대로 이해해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노력이 이뤄져야겠습니다.

-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건국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말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어느 지도자나 완벽한 지도자는 없습니다.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지 않겠습니까? 동서양 고금(古今)에 걸쳐 리더십을 살펴보면 다들 열심히 했지만 역사의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본인이 옳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독선일 수도 있고,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경우에도 공과 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개혁, 농지개혁, 또 외교적으로도 한미동맹, 원자력기술을 도입, 문맹 퇴치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대해 다 책임을 지고 하야했습니다. 나라 사랑하는 정신이 없고 권력욕만 있었다면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물러나지 않았다면 큰 참화가 왔을지 모릅니다.



1960년 4월 26일‘국민이 원한다면 물러가겠다’는 하야 성명을 발표한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를 떠나 거처인 이화장으로 가고 있다. 연도에는 시민들이 모여“이 박사 만세”를 부르며 환송하고 있다. / 출처 : 이승만건국대통령 기념사업회



초대대통령, 건국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만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초대대통령, 건국대통령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그 다음에 후계 지도자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기념할 수 있겠습니까? 우남로, 우남공원, 우남기념관 등이 앞으로 계속 나와야 국민들 마음 속에 다가가 건국 지도자로서의 위상이 제대로 확립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일부 사학자는 1919년 4월 23일 상해 임시정부 시작이 대한민국이 시작된 건국일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정부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정하지도 않고 기념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건국일은 마땅히 국가명절인 ‘건국절’로 제정해 기념해야 되는데도 국가가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시지요.

잘못된 거죠. 물론 1919년 3·1운동과 그해 4월의 상해임시정부 수립 둘 다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건국일이란 생일도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은 정말 잘못됐습니다. 잉태한 날은 있는데 생일이 없는 나라를 바꿔야 합니다.

나라의 기념일을 365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마음 깊이 생각해 보고,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그 건국에 대한 의미를 마음 속으로 새길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겠습니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기념일로, 생일로 제대로 입법화 하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큰 역사의 교훈이 되도록 하는 일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앞을 내다 보았던 지도자 이승만

-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당시부터 무장독립 운동보다 외교독립 운동을 주창했고 많은 분이 외교의 달인, 외교의 귀재, 베테랑이라고 칭합니다. 국회의원 시절 외교통상위원장이셨는데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외교 역량과 외교를 통한 실질적인 국익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전기를 읽다 보면 참으로 외교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슈화해서 국익을 위해 결과를 끌어내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 미국에 가서 주장했던 첫 번째 외교활동은 1882년 조미우호통상조약을 조선과 미국이 맺어 우리 한반도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미국이 중재를 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미국이 그것을 어겼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이 이것을 일방적으로 파괴하고,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만든 것을 미국이 방조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앞으로 큰 일이 일어난다, 일본이 만약 조선을 식민지화 하게 되면, 결국 식민지가 됐습니다만,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본이 태평양을 뒷마당으로 보고 해군력을 증강시켜 결국 미국을 공격할 수도 있다, 이런 생각까지 한 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라는 책을 1941년 안타까운 마음으로 썼는데 그 책의 서문을 보면 ‘일본은 1940년에 이미 벌써 전쟁 준비를 다 마쳤는데 유독 미국 사람들만 꿈속에 있는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정말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썼다’ 고 나와 있습니다. 그 책이 나오고 나서 불과 5개월도 안 돼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깜짝 놀라죠. 그런 충격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승만이 누구냐?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느냐!’고 하면서 뒤늦게 부랴부랴 그것을 읽어보고는, 참, 이런 분이 있었구나! 그리하여 그 책을 미국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우리 독립운동, 건국 과정에서 미국은 그 당시 ‘동아시아에서 소련과 합작, 협력을 해서 새로운 평화질서를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를 하자고 합의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를 하면서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다, 남북한 인구비례에 의한 자유총선거를 통해서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도이지 왜 우리가 신탁통치를 받아야 하고, 왜 미.소가 공동으로 통치해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나라가 제대로 건국이 됐겠습니까?

그 외교력, 판단력, 담대함, 저는 이것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보여준 역사적인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6·25전쟁 중에 일본 어선이 우리를 침범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 전쟁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일본 어선들이 고기를 잡으러 독도에 들어오니까 그냥 평화선을 선포하면서, ‘이는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설에 근거한 것이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침범하는 일본 배를 나포하고 일본으로 하여금 들어오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대처했습니다. 만약 그때 평화선이 없었으면 독도는 벌써 일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전쟁 중에 미국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하려고 하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들을 석방해 버렸습니다. 반공포로들이 만약에 소환 위원회에 가게 되면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으로 갈 수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눈뜨고 볼 수 있나, 미국이 우리와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휴전을 하는 것은 안 된다,

이렇게 해서 새벽 2시 2만7000명을 석방했습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담대함과 결단력은 참으로 초인적인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우리는 휴전을 받아들이고 미국과 동맹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일들을 볼 때 국익을 위한 외교 활동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판단력, 담대함, 탁월한 식견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미국, 영국에 유학을 하면서 이승만 박사가 어떤 공부를 하고, 어떤 글을 쓰고,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 주권을 위한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승만 박사에 대해 추상적인 차원에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박사가 쓴 글을 접하게 되면서 아, 이 분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라는 것을 거의 매일 볼 때마다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당시 조선의 청년으로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전 세계 만방에 알리고, 왜 조선이 독립을 해야 하고, 왜 일본이 군비 증강을 하면 문제가 되는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설파했습니다. 21세기 지금도 보면 역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승만 대통령이 생각한 문제와 걱정이 그대로 연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지정학적인 환경은 이승만 대통령이 살아계셨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 전에는 한미동맹이 없었고 지금은 한미동맹이 있다는 차이뿐이지 나머지는 다 비슷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이 하신 외교 활동과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될 우리의 방향, 외교의 전략, 국가적인 결단을 하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에서 외교통상위원회 소속으로 활동을 많이 했고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을 맡아서 한국과 미국의 의원외교 활동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미 FTA 비준이 제안되었을 때 외교통상위원장으로서 그것을 통과시키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 이유는 중국이나 일본은 미국과 자유무역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 시장을 우리 대한민국이 동맹국으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먼저 들어가 시장을 선점하고 우리의 좋은 물건을 팔고 거기에서 해외 경제 영토를 개척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의 외교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되고 또 저희 기념사업회에서 연구가 잘 이뤄져 국민들이 이승만 박사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정치인이나 관료 출신은 이승만 대통령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는데도 박 회장님은 이승만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으셨었는지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지요.

아마 운명적으로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우선 제가 하버드대에서 석사 공부를 하면서 이승만 박사가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석사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국 신문에 이승만 대통령이 인터뷰를 여러 번 했는데 거기에 나온 내용을 보면서 참 대단한 분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려면 참 어려운 일을 나라도 없을 때 그런 활동을 하셨다니 참으로 훌륭한 분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박사학위 논문을 옥스퍼드대에서 하는데 우리나라 외교정책에 대해서 논문을 쓰다가 이승만 정부의 외교정책은 과연 어떤 판단으로 이뤄졌고, 그것이 우리의 국익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하는 부분을 공부하다가 미국에서 나온 자료, 영국에서 나온 자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국제정치 지도자들이 회고록을 쓰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언급한 부분을 모아서 봤습니다.


그때 제가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이, 또 영국의 지도자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높게 평가를 하고 지도자로서의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반대로, 실패한 대통령, 독재한 대통령, 국민을 저버린 대통령, 이렇게 폄하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후 의정활동을 하면서 미국을 자주 다니게 되어 또 외교에 대한 국제법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제가 종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데 이곳에 이화장이 있어 이곳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생전의 유품들, 쓰신 글들, 감옥에서 만든 사전,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했던 모든 유품을 보고 이 분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승만기념사업회에서 회장직이 공석이기 때문에 맡아 달라고 부탁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아 사양했습니다. 그러다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을 모아서 모두 같이 미력하나마 노력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맡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승만의 진보정신 평가돼야

- 4·19 때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당 총재로서 부정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하야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이승만 대통령의 희생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야를 한 것은 어떤 무리한 정권 연장이나 권력욕만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학생들이 다친 것에 대해선 아마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파했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청년 시절 운동권 학생 아니었습니까? 종로 4거리에 나가 자유를 얘기하고, 인권을 얘기하고, 입헌군주제를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로서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학생들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간 것에 대해 얼마든지 이해하고 대견하게 여길 수 있는 분이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어떤 이유가 있어도 당신이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분의 책임정신, 희생정신이 제대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후 하와이에 가서 쓸쓸히 병상에서 돌아가실 때 과연 이승만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와이 이승만 숭모회에서 서거 50주년 기념 행사를 했을 때 저희 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하는 형식이 되었습니다. 가서 하와이에 남긴 이승만 대통령의 여러 가지 족적과 그 당시 상황에 관한 자료를 보고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사랑회 <이승만을 말한다>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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