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
어제 6
총방문자 57671
 
 

美박사 들고온 우라늄 상자···이승만의 눈빛이 반짝였다
작성일 : 2018/10/02 11:28 / 조회 : 20 / 추천 : 3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131화(7550)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1959년 7월 14일 한국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기공식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첫 삽을 뜨고 뒤에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이 서있다. [사진 정근모 박사]

1959년 7월 14일 한국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기공식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첫 삽을 뜨고 뒤에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이 서있다. [사진 정근모 박사]

내 사무실의 자리 뒤에는 역사적인 흑백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57년 전인 1959년 7월 14일에 있었던 한국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 기공식 장면이다. 사진 오른쪽에는 첫 삽을 뜨는 이승만 대통령, 그 옆으로 원자력원 초대 원장인 김법린 박사의 모습이 각각 보인다. 이 원자로는 4·19 혁명과 5·16 쿠데타라는 현대사의 대격변을 겪으면서도 건설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62년 순조롭게 완공됐다. 여기에는 미국에서 도입한 ‘트리가 마크-Ⅱ’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했다. 원자로에서 기초 실험과 교육훈련을 하면서 원자력 운영 경험을 축적했으며 동위원소를 생산해 의료에 사용했다. 이를 가동하면서 한국은 원자력 기술 확보를 통한 에너지 자립과 과학기술 입국을 동시에 추구했다. 반세기에 걸친 원자력과 에너지 기술 확보 염원의 시작이다. 
  

<2> 원자력 기술은 반세기 염원
세계가 원폭 충격 못 빠져나올 때
아이젠하워 ‘평화 원자력’ 연설
“죽음 아닌 삶을 창조하는 물질”

아이젠하워의 고문 만난 이승만
1959년 연구용 원자로 첫삽

이 원자로가 착공되던 당시 나는 김법린(1899~1964년) 원자력원장의 보좌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해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행정대학원에 1회로 입학했다. 1학년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지금으로 치면 인턴에 해당하는 수습행정원으로서 김 원장을 모시고 있었다. 당시 서울대 행정대학원에는 주·야간 과정이 모두 있었는데 주간 33명, 야간 67명이었다. 주간반 학생 33명은 의무적으로 정부 기관에서 수습행정원으로 일하면서 실무를 배워야 했다. 1기 주간반은 대부분 법대나 정치학과·사회학과 등 문과 출신이고 이공계 계통은 나밖에 없었다. 신설 기관인 원자력원에 내가 배치된 이유일 것이다. 
  
배치 직후 김 원장을 찾아가 인사를 드렸다. 문교부 장관 출신의 김 원장은 과학이나 공학자 출신이 아니라 불교철학을 공부한 철학박사였다. 그분은 내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는 말을 들으시곤 “자네는 딴 데 가서 일할 필요가 없네. 내 곁에서 일하도록 하게”라고 말씀하셨다. 김 원장이 부르면 달려가 물리학 등 과학과 관련한 질문에 대답하는 보좌 업무를 맡았다. 이렇게 김 원장을 모셨던 일은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를 통해 한국의 과학기술, 과학기술 행정, 그리고 원자력 개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원자력 태동기를 맞고 있었다. 그 시작은 53년 12월 8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이란 제목으로 했던 연설이었다. 미국은 45년 핵폭탄을 개발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뒤 태평양 전쟁을 끝냈다. 세계는 무시무시한 핵폭탄의 공포에 떨었다. 그 뒤 소련이 49년, 영국이 52년 핵실험을 하고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가공할 위력의 핵무기가 각국으로 확산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결단을 내렸다. 아이젠하워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원자력이 갖는 엄청난 힘을 인류에게 큰 이익을 주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창했다. 그는 원자력 기술을 농업과 의학, 전력 제공 등에 활용해야 한다며 이를 담당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창설을 제안했다. 아이젠하워는 “인간이 갖고 있는 위대한 창의력을 죽음이 아닌 삶을 창조하는 물질을 만드는 데 바치겠다”고 전 세계에 약속했다. 군인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연합군사령관으로 활약했던 아이젠하워는 원자력을 무기가 아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사용하는 물꼬를 튼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전 세계는 아이젠하워의 제안에 공감했다. 54년 IAEA의 창설을 논의할 국제회의를 28차례 열었다. 그 결과 56년 유엔총회에서 국제원자력기구 헌장을 채택하고 이듬해 IAEA가 유엔 산하기관으로 발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56년 미국 전력계의 거물이자 대통령 과학고문인 워커 리 시슬러 박사가 한국을 찾아와 이승만 대통령과 만났다. 시슬러 박사는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시슬러의 나무상자 안에는 우라늄과 석탄이 들어 있었다. 시슬러는 이 대통령에게 우라늄을 보여주면서 “우라늄 1g으로 석탄 3t의 에너지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석탄이 땅에서 삽으로 캐는 연료라면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원자력을 다룰 과학기술 인재를 육성한다면 한국도 머지않아 전국을 전깃불로 환하게 밝히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셈이다. 자원 빈국인 한국 대통령의 눈이 번쩍 띄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았으며 수시로 정전됐다. 
  
이 만남은 한국 에너지 자립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 대통령은 원자력이 한국의 주요 에너지원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원자력 기술의 도입을 결정했다. 이를 위해 56년 정부 조직으로 원자력과를 신설하고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국회와 정부도 하나가 됐다. 국회는 58년 원자력법을 제정했고, 정부는 같은 해 10월 원자력원과 원자력연구소를 세웠다. 
  

정근모

정근모

중요한 사실은 원자력연구소에 공학자만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리학·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를 배치했다. 원자력연구소는 원자력만이 아니라 한국의 과학입국을 위한 연구를 담당하는 첫 기관이 됐다. 과학입국의 의지를 원자력연구소를 통해 표현한 셈이다.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58년 한양대, 59년 서울대에 원자력공학과가 문을 열었다. 석탄 대신 사람의 두뇌에서 전기를 밝힐 에너지를 캐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땅에서 원자력 연구와 교육은 곧 과학기술 진흥과 동의어가 됐다. 

[출처: 중앙일보] 美박사 들고온 우라늄 상자···이승만의 눈빛이 반짝였다



 

인쇄 추천



 
  RSS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추천
  [미래한국-김길자회장 기고글] 대한민국은 건국...   대한민국사랑회 08/06 14:27 673 96
  김길자 회장, 제1회 [애국인상] 수상   대한민국사랑회 07/01 15:50 502 94
  <2014.1.28> 조선일보 김길자회장 인터뷰 ...   대한민국사랑회 02/24 12:26 318 122
  건국 다큐영상물 "대한민국의 위대한 기적의 시...   대한민국사랑회 02/05 13:26 439 128
  1199 "대학 유일" 이승만 동상 눈에 비친 "좌우대립"...   대한민국사랑회 11/11 09:24 8 0
  1198 [우남이야기] 문맹의 나라를 깨운 "교육혁명가" ...   대한민국사랑회 11/11 09:20 9 0
  1197 청와대 ‘입맛 뉴스’   대한민국사랑회 11/08 11:55 14 1
  1196 부산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사적 된다   대한민국사랑회 11/08 09:13 13 1
  1195 [6.25전쟁중 이승만의 독립전쟁] 부산정치파동에...   대한민국사랑회 10/31 15:58 18 0
  1194 2018년 10월 결산서   대한민국사랑회 10/31 15:47 18 1
  1193 [우남이야기]"부산 정치파동"은 이승만의 민주화...   대한민국사랑회 10/07 15:14 35 3
  1192 1919년과 1948년-새 나라의 잉태와 탄생   대한민국사랑회 10/07 15:12 31 1
  1191 전력난 도움 준 시슬러, 이승만에게 “원전 만들...   대한민국사랑회 10/04 15:37 32 3
  1190 전력 92% 보유 北, 1948년 5월 갑자기 전기를 끊...   대한민국사랑회 10/04 15:35 34 3
  1189 한국 첫 영부인 프란체스카 유언 "내 관에 태극...   대한민국사랑회 10/04 15:34 25 3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주소 : (우110-872) 서울 종로구 내수동 72번지 경희궁의 아침 오피스텔 3-532호
전화 : 02-738-1794~5 팩스 : 02-738- 1796 e-mail : manager@loverokorea.org
Coptright 2008 대한민국사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