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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일생은 애국애족의 상징
작성일 : 2018/03/14 10:32 / 조회 : 99 / 추천 : 11

[건국 70주년 기획 인터뷰] 국회의원 김종석

- 이승만 대통령의 존함을 들으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우리 건국의 아버지죠. 대한민국이 있도록 하신 어른이시죠. 그분이 아니면 대한민국이 있었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 우리 5천년 한민족사에서 이승만 대통령만이 기여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5천년 동안 왕조 하에서 약소국가로서의 역사를 가졌던 우리 민족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로 바뀌었는데, 사실 역사적으로 그런 적이 없었잖아요? 이러한 전례 없는 시도를 우리 민족에게 할 수 있도록 기틀을 여신 거죠. 비록 서양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이지만 그것을 몸소 경험하신 이승만 대통령께서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국민 주권의 의미를 깨우쳐 주셨는데, 이야말로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자신의 미국 자문역을 하셨던 올리버에게 당신 이후에 후계를 걱정하는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애국애족이란 면에서 평점을 얼마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분에 대해 평점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승만 대통령 본인이 애국애족의 상징이세요. 그 분의 일생의 어록이나 독립운동이나 과정을 보면, 본인의 삶 자체가 본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증거이거든요. 그래서 평점의 대상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애국애족의 상징이세요.

이승만으로 인해 자유라는 사회 누려

- 김구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도로, 기념관, 공원, 동상 등을 세워 기리고 있어요. 그러나 정작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정말 말이 아니에요. 왜 이렇게 다르다고 보시나요?

지금 이승만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폄훼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이승만 대통령 그 자체보다는 그분 때문에 존재하게 된 대한민국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봐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들기 위해 그 작업의 첫 단추를 이승만 대통령을 부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많은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순수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성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둠의 세력에게 본의 아니게 이용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합니다.

안창호 선생이든 조병옥 박사든 그분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건국하셨기 때문이거든요. 일부에서 얘기하듯이 그때 만약 ‘이승만만 아니었으면 남북통일이 되었다’라는 얘기는 결국 적화통일을 말하고, 그렇게 되었다면 장면이고 조병옥이고 어디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전부 다 김일성, 김정일에 의해 제거되고 말았겠지요.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이야말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심지어 건국의 아버지를 비판할 수 있는 사치스러울 정도의 자유까지 누릴 수 있게 해주신 분인데, 이런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남산에 가보면 안창호 선생 동상도 있고 심지어는 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하시던 이시영 선생 동상도 있어요.

그런데 정작 이시영 선생이 모셨던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없다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도 문제지만 외국인이 보기에도 참 부끄러운 일이죠. 빨리 정상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최초 풀뿌리 모금으로 설립된 이승만 강의실

- 일부 사학자들은 1919년 4월 13일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1948년 8월 15일이 건국된 날이라고 교육하지도 않고, 국가 기념일로 정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워진 그날을 건국절로 제정해야 마땅한데도 기념일로 제정하지 않고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건국은 문자 그대로 대한민국이 생겨난 날이지요. 그 날은 1948년 8월 15일이라는 건 역사적인 사실 아닙니까? 1945년 8월 15일은 일제가 패망을 했고 미군이 한국에 진주할 수 있었던 날을 의미하는 것인데 어떻게 1945년 8월 15일이 더 중요한 날일 수가 있죠? 1948년 8월 15일이 더 중요한 날이지요.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이 태어난 날이에요.


1919년에 3·1운동 직후에 상해 망명정부는 국민과 국토가 없는 문자 그대로 망명정부지요. 망명정부에 참여했던 어른들의 노력이 결실을 이룬 게 48년 8월 15일이거든요.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48년 8월 15일생이 맞지요. 굳이 표현하자면, 잉태된 날은 1919년이라 하더라도 무방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스토리고요. 역사적으로 보나 법률적으로 보나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1948년 8월 15일 태어난 나라이지요.

- 김 교수님은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박사로서 일찍이 1910년 프린스턴 대학의 박사 출신이셨던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후배이십니다. 김 교수님이 동문회장을 역임하셨던 2012년에는 50만 달러의 거금을 모금해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이승만 강의실(Lecture Hall)’을 우드로 윌슨기념관 안에 세우셨습니다. 이승만 대통령께서 훌륭한 후배를 두신 겁니다. 이 사업을 계획하고 성사시켰던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제가 80년부터 83년까지 프린스턴 대학 박사과정에 있었어요. 프린스턴 대학은 이승만 대통령이 공부하셨고, 그분은 우드로 윌슨의 제자이셨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갔죠. 그래서 저는 기대를 굉장히 하고 갔는데, 대학은 물론 프린스턴 시내 어디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흔적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안타깝게 생각을 했고, 그 당시 유학을 같이 갔던 분들 중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던 중에 제가 한국에 와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 프린스턴 대학 동문회장을 맡고 나서 선배님들 동문들과 이런 얘기를 하자, 감사하게도 대부분의 동문 선배들이 ‘참 좋은 얘기다’고 하면서 격려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유학할 때 느꼈던 안타까움을 이번 기회에 해소하자 한 겁니다. 정운찬 전 총리님을 비롯해서 동문들께서 도와주셔서 했는데 프린스턴은 의과대학, 법과대학 이런 게 없어서 졸업생들이 부자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교수, 학자들이라 모금의 한계가 금방 생겼는데, 너무 놀라운 것은 동문회가 이런 모금을 한다고 하니까 그 소식을 들은 프린스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시민들, 국민들, 우리 사회 지도층들이, 대표적으로 경인여대 김길자 명예총장님을 비롯하여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명예회장 같은 분들이 선뜻 거금을 내주셨어요. 10만 원부터 100만 원까지 하는 분들로 모금에 참여하신 분들 중 절반 이상이 프린스턴 동문들이 아니세요.

30만~40만 달러는 동문이 아닌 분들이 낸 돈이에요. 이 돈을 프린스턴 대학에 기증하려고 하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기념하는 장학금이나 시설물을 만들자고 요구하자 프린스턴 대학이 고민에 빠진 겁니다. 보통 미국 대학들에 가보면 사람 이름이 붙여진 건물들이나 방이 있는데 정해진 기부액이 보통 300만~400만 달러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는 50만 달러 가지고 해달라니까 당연히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그것은 전례가 없는 경우라고 하면서 조그마한 정원 하나에 이름을 붙여줄 수는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곤란하다고 했는데, 프린스턴 대학 이사회에서 검토를 하더니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내는 것은 미국에서 유력한 사람들이, 유족들이, 거부들이 한 사람의 유산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프린스턴 동문회 사상 처음으로 풀뿌리 모금을 한 것으로 10만 원, 20만 원을 모아서 만든 돈이므로 금액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프린스턴 대학 이사회에서는 이것은 50만 달러가 아니라 500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해서 허락해 준 거라고 해요.

그리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스승이신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기념하는 행정대학원 건물 안에 있는 최첨단 강의실을 이승만 강의실로 명명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부조(浮彫)와 도와주신 분들의 이름을 새겨서 교실 안쪽에 붙여놨어요. 그 후에 들어보니,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려고 하는 한국 교포 유학생들, 인근 교포들이 프린스턴 대학의 캠퍼스를 방문하는 경우에는 꼭 그 방을 들러보는 관광 코스가 되었다고 해서 참으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 말년인 1960년 4월 19일에 학생운동이 일어났고, 그때 죽은 학생이 186명이나 되었고 수 천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께서는 자유당 총재로서 책임을 지고 하야를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 주세요.

어떻게 보면 99번을 잘해도 100번째를 잘못하면…. 마지막에 가서 안타깝게 임기를 마치셨지요. 50년대, 60년대에 태어난 신생 독립국 대부분은 민주적 질서나 정치제도가 미숙하여 외견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독재자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뤄진 나라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상당수는 국민들에 의해서 안타깝게 물러난 경우가 많은데 항상 뒤가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은 그런 불상사가 발생한 직후에 부상당한 학생들을 위문하시고 국민의 뜻이 그렇다면 나는 물러난다고 선언하셨지요. 그야말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는 애국애족에서 취하신 행동이셨어요. 그 시대에 선진국 몇 나라를 빼놓고, 국가 원수 중에 그런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권력에서 물러난 사람은 이승만 대통령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의 그러한 정신. 즉 민주정신을 전문가들이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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