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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농지개혁
작성일 : 2018/04/06 16:30 / 조회 : 79 / 추천 : 16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농지개혁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일까? 필자는 1950년 3월에서 5월 사이에 단행한 `농지개혁`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승만을 가리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대통령이라고 한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특히 6.25 한국전쟁 당시 통치자로서 그가 보였던 무책임한 행태, 그리고 1950년대에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의 명백한 불법과 부정을 대면하면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게 아니라 `파괴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농지개혁은 다르다.  

물론 농지개혁을 등 떠밀려서 한 측면도 있다. 북쪽에서 시작한 화끈한 토지개혁의 바람이 남쪽으로 불어와 피하기 어렵기도 했고, 미국의 압박도 있었으며, 지주정당인 한민당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또 농지개혁은 이승만이 아니라 초대 농림부장관이었던 조봉암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농지개혁과 같은 급진적 개혁 과제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을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추앙하는 `보수`는 이승만이 저지른 온갖 불법과 부정을 마치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거나 갖은 악행 뒤에는 범인(凡人)이 헤아리기 어려운 원려지심(遠慮之心)이 있었던 것처럼 미화할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농지개혁을 치적으로 강조해야 하고, 그랬을 때 한국 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31% 농지의 소유자가 변동된 역사적인 사건 

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농지개혁 결과 총 69만4894정보(1정보=3000평)의 농지가 분배되었는데 1947년 당시 경지면적이 219만2546정보였으니까 전체 농지의 31%가 소유자가 변동된 셈이다(`세수포럼` 2014년 5월 김정진의 발표문 `잊혀진 역사, 농지개혁` 재인용). 매년 50~70%의 소작료로 고통받던 농민들은 매년 평년작의 30%를 5년간 현물로 납부하면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반면, 지주들에게는 현물이 아니라 지가증권으로 보상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농지개혁은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혜택이었지만 지주들에겐 손해였다. 

농지개혁은 대한민국을 자작농의 나라로 만들었다. 1945년 말 총 경지면적의 35%에 불과했던 자작지는 농지개혁 직후인 1951년 말에는 96%로 급등했다. 1949년에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완성한 일본도 개혁 후의 자작지율이 90%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농지개혁의 내용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역사비평> 91호 전강수의 `평등지권과 농지개혁 그리고 조봉암` 307쪽) 이로써 산업화 시작 전에, 산업화에 가장 큰 걸림돌인 전통적 지주제는 해체된 것이다.  

성공한 농지개혁은 교육열과 경제 발전의 기초 

이승만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먼저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은 생계를 유지해가며 자식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는데, 이러한 교육에 대한 열정은 유능한 인적 자본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농지개혁이 가져온 공평한 토지 분배는 국내의 안정적인 수요 기반 구축과 제품의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평등한 토지 분배는 소유 토지가 사업의 밑천으로 쓰인다는 것을 감안하면, 신흥 자본가 출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요컨대 이승만의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성공적인 산업화의 기초였던 셈이다.  

그뿐 아니라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한국전쟁에서 남한의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인구의 절대다수였던 농민 입장에서는 전쟁 전에 이미 자기 땅이 생겼기 때문에 북한의 `급진적` 토지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유인이 크지 않았다. 남한 정권에서 살더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면, 굳이 북한 정권을 지지할 필요는 적었다.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있었기에 높은 교육열과 성공적인 산업화가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의 보수를 자칭하는 학자들은 농지개혁을 강조하는 것에 `소극적`이다. 농지개혁의 의미를 오늘날에도 되살리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인지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빼면 이승만에게서 내세울 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출처. 프레시안 [기고] 토지 불로소득으로 인한 소득 불평등이 문제다.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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