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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제헌절
작성일 : 2018/08/06 07:32 / 조회 : 8 / 추천 : 0
7월 17일 제헌절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제정한 날로, 국가의 기본법(헌법)을 세운 것을 국경일로 경축하고 있다. 이 날에는 외세의 지배와 독재정치를 배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헌법체제를 수호하는 의지를 다지는 각종 기념행사가 거행되어 왔으며 3부 요인을 비롯한 각계 대표들과 생존 중인 제헌국회의원들이 모여 의식을 열며, 공공기관과 각 가정마다 태극기를 게양했었다.

그러나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6월 20일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관공서의 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했다. 이 규정에 따라 식목일은 2006년부터, 제헌절은 2008년부터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식목일의 경우, 이제는 나무를 심을 필요성이 없어서 폐지되었다고 해도, 제헌절의 국경일 제외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제헌절의 참뜻을 기리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이들은 어린 세대들이 제헌절에 대한 정보와 인식이 부족하고 국가의 근본이 되는 헌법의 제정·공포가 지니는 가치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제헌헌법이 지니는 의미


제헌헌법이 지니는 의미는 첫째, 건국 과정의 험난했던 역사적 배경이란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미국과 소련의 양 연합군이 한반도에 진주하게 되었다. 북위 38도 이북에는 소련군이, 남쪽에는 미군이 군정을 실시했다. 한반도의 장래 문제는 모스크바 3상회의와 미소공동위원회를 거치면서 5년간 신탁통치를 통해 완전한 독립을 도모하기로 한 안이 나왔지만 한국민들의 강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결국 1948년 2월 유엔 총회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해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방한했지만 북한의 반대로 38선을 넘지 못하고 남한만의 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했다.

남한 내부에서도 총선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았다. 박헌영의 남로당은 정판사 위폐사건, 대구폭동, 철도파업 등으로 총선거를 통한 건국을 방해했으며 최후에는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킨 4.3사건이 발생했다. 총선을 앞두고 4월 말에는 임정지도자 김구 일행과 중도파 김규식의 방북이 있었다. 이들 남북협상파들의 방북 이면에는 북로당 공작원 성시백의 집요한 공작이 있었다. 결국 그들은 김일성의 초청장을 가져온 성시백의 꾐에 빠져서 많은 애국지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가서 남북대표자연석회의에 참가했다. 그들은 김일성의 각본대로 양군 철수와 남한의 단정반대에 동조했으나, 결국 김일성에게 이용만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1948년 5월 10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38선 이북 미수복지역에 인구에 비례한 100석을 보류하고 남한 지역에서 선출한 2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제헌국회는 곧 이승만을 의장으로 선출해 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이승만 의장은 헌법전문에 대해 삽입해야 할 것으로 기미년 3·1혁명, 민주주의, 독립정신 등을 주장했다. 제헌국회는 이승만의 제의를 수용, 헌법전문을 다음과 같이 확정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민국은 을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견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 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우리들과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여... 이 헌법을 제정한다’

이어 헌법기초의원 30명과 전문위원 10명으로 헌법기초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시급한 안건은 나라이름(國號)를 제정하는 일이었다.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자는 압도적 의견이 다수결로 정해졌다. 이것은 중국에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임시정부 형태가 있었지만 국호가 없었기에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반증한 것이다.

둘째, 제헌헌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헌 헌법은 전문과 10장 103조로 구성되었으며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했는데, 정치체제는 왕정이 아닌 ‘민주공화제’로 하여 주권재민의 원칙을 확인했다. 또한 제3조 영토 조항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속도서로 한다”고 하여 한반도의 영토는 한반도 전체 지역임을 천명했으며 이는 북한지역이 북조선공산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강점당한 것으로 헌법에 명문화해 후손들이 반드시 수복해야 할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즉 제헌헌법을 통해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후손들이 해결해야 할 ‘자유민주통일’과 ‘북한 해방’을 국민의 숙제 내지 국가적 미션으로 이를 망각하지 않도록 명문화한 것이다.

당시 소련의 통제하에 있던 북한은 유엔 임시한국위원회의 입국을 거절해 5·10총선을 거부했다. 이는 유엔의 결의를 무시한 만행으로 이것만으로도 북한은 한반도에서 정통성을 주장할 근거를 상실한 것이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정부 형태였다. 의원내각제와 양원제 국회를 기본으로 하고, 위헌법률심사권을 대법원에 부여한 유진오의 초안이 헌법기초위원회에 제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초안은 이승만 의장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단원제 국회와 대통령제 정부 형태, 헌법위원회가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진 안으로 변경되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대통령제를 선호한 이승만은 조선시대의 사색당쟁으로 나라가 망했다는 인식이 강했고, 건국 초기에 산적이 일이 많아서 대통령의 권한이 커야 한다고 믿었다.

 
건국과 정부수립은 같은 것

1948년 8월 15일 중앙청 광장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 밤 자정을 기해 미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인수했다. 이로써 1910년 대한제국이 망한 뒤 38년만에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주권국가가 건립된 것이다. 그에 반해 북한은 9월 일방적으로 찬성을 강요하는 흑백투표에 의해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1948년 12월 12일, 대한민국은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부임을 인정받으면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보했다. 바꿔 말하면 이러한 일련의 제헌헌법의 제정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학습하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적 의무를 충실히 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제헌헌법은 1948년 건국을 법제화한 것이고 이를 정당화한 것이다. 국회가 구성된 후 국호를 지었으며 헌법을 통해 권력에 대한 국민의 생존 권리와 국민적 의미를 확보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의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을 빚었다. 1948년 8월 15일 중앙청에서 열린 기념식의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축하식’이었다.

그 당시 건국과 정부 수립은 별개의 뜻이 아니었다. 즉 건국을 하는 정치 과정인 총선거, 국회의 구성, 헌법제정, 대통령 선출을 이은 마지막 단계가 정부 수립이었다. 건국을 부정하는 인물들은 1919년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이미 건국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일부 독립운동가들이 세운 임시정부는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 등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제헌절의 역사를 제대로 상기한다면, 1919년 건국설은 황당무계한 궤변으로서 역사적 근거를 상실하게 되는 것인데, 이에 동조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내년을 건국 100주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스스로 역사적 논쟁의 중심에 서 보겠다는 蠻勇(만용)으로 역사적 無知(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낸 수치스런 일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국가지도자가 대한민국이란 국가적 정체성을 뒤흔들어버리는 의도의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정체성(identity)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전적 의미에서 정체성이란 어느 사람·사물·국가 등에 있어 ‘있어야 할 본래의 그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있어야 할 본연의 모습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국가정체성은 ‘국가의 기본’(國基)을 정한 헌법에 직·간접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 그것은 대한민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이 갖고 있던 사상과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곧 국가정체성은 건국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볼 때 국가정체성은 헌법정신과 건국이념 등과 통하는 개념이다.

국가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것은 각자 국민들이 국가를 지키려는 투철한 가치관을 소유하지 못함으로써, 국가를 발전시킬 노력도 하지 않고 국가를 지킬 수호의지를 상실하게 되면서 그 국가는 위태로워진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그런 지경에 처해졌다. 제헌절이 폐지된 지 벌써 10년이 흘러갔으며, 우려한 식자층의 우려도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우려스런 현실이 되었다. 제헌절의 폐지로 인해, 제헌헌법이 지니는 의미와 험난했던 건국의 역경을 전혀 알지 못하는 역사의식이 두절된 세대를 양산하고 말았다. 제헌절의 폐지는 1948년 건국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고, 이는 건국의 과정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치열하게 투쟁해 이룩한 건국의 성과와 업적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기억의 지우기와 연관되며, 여기에서 북으로 향했던, 김일성을 만났던 중국의 임정 수반이던 김구의 남북협상의지를 정당화하게 되는 프레임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두 차례 만난 문재인의 모습과 교묘하게 중첩된다.

이미 제헌절의 폐지와 함께 몰지각한 국가원수의 좌편향된 역사인식에 의해 1919년 건국설이 거론되면서 1948년 제헌헌법의 정신 및 건국이념은 실종될 상황에 몰리게 되었으며, 국가정체성은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처했음에도 대학 캠퍼스의 소위 지성인들은 침묵하면서 부지런히 자신의 개별 연구논문 쓰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과연 대한민국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출처 :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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