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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대한민국의 역사, 진실과 왜곡③
작성일 : 2019/08/03 18:34 / 조회 : 81 / 추천 : 0

자유대한민국의 역사, 진실과 왜곡셋째 마당이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일기장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는 것이다. 19526.25전쟁이 한창일 때, “전쟁을 하느라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어젯밤 꿈에 한성감옥에서 고문당하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고문당할 때 나이가 만23세이고 고문당하는 꿈을 꾼 나이가 만 77, 무려 54년 반백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도 그 고문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살아서 겪는 지옥이 따로 있을까? 그 생지옥 고문의 고통 속에서 함께 혁명을 꿈꾸던 애국자, 장호익 장군이란 분이 있었다.

 

우리 조선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다. 이 분도 멸망하는 조선을 살리려다가 사형당하고 말았다. 당시 사형은 망나니가 칼로 목을 쳐서 죽이는 참수형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칼이 잘 들지 않아서 우리가 보는 사극처럼 단칼에 잘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망나니가 장호익의 목을 칼로 쳤으나 목은 잘리지 않았고 목숨은 붙어 있었는데 그런 가운데에도 장호익 장군은 대한제국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장호익의 비명소리는 감옥 안에 있는 이승만도 들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그 비명소리를 듣고 전율을 느끼며 고뇌 했다고 한다.

 

저 애국자의 목을 함부로 치는 나라, 대한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이승만의 친구도 망나니의 칼에 맞으며 마지막 유언과 같은 외마디 비명을 이승만!”하고 이름을 외치면서 비원(悲怨)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 유언 같은 비원 속에는 나는 이렇게 먼저 가지만 자네는 살아남아서 5000천 동안 외구세력에 짓밟혀 살아온 우리 민족이 한번 기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좋은 나라를 세워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승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승만은 온몸이 묶인 채로 낮에는 벌레에 물어뜯기고 밤에는 끌려가서 밤새도록 고문을 당하는 것밖에... 이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성경을 보는 것뿐이었다고 한다. 그저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 성경말씀으로 인하여 18991월 추운겨울날 이승만이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적 사건의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승만 이전에 조선의 양반 가운데 기독교인이 된 사람, 일본에서 개종한 이수종, 중국에서 개종한 유치호 이런 분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 분들은 모두 외국에 나가서 외국 문물을 접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선반도 안에 양반 가운데 최초로 그것도 감옥에서 개신교로 개종한 사람은 이승만 뿐이었다. 이승만이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순간을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평생 처음으로 오- 하나님”, 하고 첫마디가 제발 저를 살려주소서!” “우리의 조국을 구원해 주소서 그리고 내 영혼을 구원해 주소서” .....이승만은 이 땅의 모든 종교인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가 종교를 갖는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종교이든지 그저 내 한 몸 편해지는 것, 우리 자녀들이 잘되고, 우리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것이 종교의 본질일까?” 이승만은 이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의 기도....“우리의 조국을 구원해 주옵소서....” 그 기도이후 기적이 일어난다.

 

감옥 밖에서 미국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이 맹렬하게 구명운동을 한다. 고종황제의 생명이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했을 때, 고종은 피신할 때가 없어서 아관(러시아 공사관)에 숨게 된다. 우리 역사의 수치스런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된 순간이다. 고종황제를 아관파천으로 생명을 구제한 은인들이 바로 미국의 선교사들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언제든지 고종황제를 죽일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 선교사들이 고종황제를 살리기 위해 불침번(不寢番)을 서게 된다. 하물며 임금의 수라상에 독극물이 들어 있는지 여부도 선교사들이 확인하였다고 한다. 미국의 선교사들의 간청에 의해서 이승만은 감옥에 투옥 된지 6개월 만에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을 받았다.

 

미국 선교사들의 간곡한 간청이 거듭되자 결국 57개월 만에 출소하게 되었다. 한성감옥에 투옥된 시간이 이승만의 인생을 바꾸고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시기가 된 것이다. 한성감옥 생활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면 첫째, 독서와 집필, 이승만이 감옥에서 사형에서 징역형으로 감형되면서 감옥의 간수들은 이승만이 책을 보고 글을 쓰게 도와준다.

 

이때, 감옥 밖의 서양 선교사들은 온갖 책을 감옥안의 이승만에게 전달해 주게 된다. 서양선교사들은 조선을 복음화 시키려면 이승만을 복음화 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이승만은 뛰어난 인재이면서도 애국자였기 때문이다. “그 애국자가 기독교가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되면 국민들 모두를 기독교화 시킬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희망을 갖고 있었던 선교사들이었는데 이승만이 감옥에서 기독교인이 되었으니 선교사들에겐 하늘이 내린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선교사들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기독교 등 각 방면의 세계적인 석학들이 쓴 책을 감옥에 있는 이승만에게 넣어 주게 된다.

 

우리나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으로 지내신 유형익 박사님의 논문에 서양 선교사들이 감옥에 넣어준 책으로 만들어진 한성선교도서관이 그 당시 조선 팔도의 그 어느 곳에 있는 도서관보다 심지어 왕실 도서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는 것이다. “감옥에다가 제일 좋은 도서관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한다. 이승만은 하루 10시간- 15시간을 끊임없이 책을 읽고 연구를 했다고 한다.

 

이것이 축적되어 훗날 대한민국의 건국과 번영의 초석을 놓는 원천이 된 것이다. 이승만은 독서와 동시에 감옥에서 글을 쓰게 된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쓴 글을 비밀리에 밖으로 유출시켜 신문에 기고하게 된다. 그 기고가 수많은 국민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승만은 감옥에서도 수백편의 글을 쓰게 된다. 그 글을 읽어보면 지금 현재 우리국민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감옥에 있던 청년 이승만이 감옥에서 쓴 논설 속에 그대로 담겨있다고 한다. 그분의 꿈과 비전이 현실로 성취되었다는 증거를 살펴보면, 이제부터는 천하근본이 농사가 아니라 상업이다.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나라다.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은 지나갔다.

 

이승만이 말하는 상업이라는 것은 무역(貿易, trade)을 말하는 것이었다.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수출해서 무역해서 통상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히 썼다고 한다. 무역을 하려면 먼저 큰 배를 만들어야 된다. 또 무역을 해서 물건을 이송하려면 넓은 도로 즉 고속도로를 뚫어야 한다. 배를 만들고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 우리 자유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시한 성공방법론’(成功方法論, success methodology)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 방법론에는 1. 나라구제는 교육으로... 조선시대는 남자만 교육을 받았다. 남자, 여자, 양반, 쌍놈 할 것 없이 전 국민을 교육시켜야 된다는 것. 2. 근대적 개혁을 하려면 시대에 따라 법률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 3. 러시아의 남하경고신학문 권장등 이때부터 이승만은 러시아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하게 된다. 러시아 제국은 남하해서 따듯한 남쪽항구를 차지하려고 한다. 그런 러시아를 경계해야 된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 대해 쓴 수백 편의 글은 공산주의에 대한저항으로 이어진다. 그 수백 편의 글이 모여서 나중에 독립정신이라는 명저를 낳게 된다. 그 명저와 관련된 내용은 지면상 다음 편에서 펼쳐보기로 하고, 독자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국심에 감사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출처. 경상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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