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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시대(6) 옥중에서 "독립정신"을 쓰다..자유 대한민국의 설계도
작성일 : 2019/11/27 16:07 / 조회 : 6 / 추천 : 0
감옥에서 <독립정신> 원고를 완성   

1904년 2월에 러-일 전쟁이 터졌고, 그 소식은 감옥 안에도 들려왔다. 전쟁 소식에 이승만을 비롯한 감옥 안의 정치범들은 통곡을 했다. 이제 대한제국(大韓帝國)은 두 강대국 가운데서 이기는 쪽에 먹힐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승만은 영한(英韓) 사전 원고를 쓰고 있었다.  F 항목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몰려 있던 때라 이승만은 영한사전 원고를 쓸 기분이 아니었다. 유성준도 이승만에게 국민 대중을 위한 계몽서를 쓰도록 강력히 권유했다.  

그래서 이승만은 영한사전 집필을 중단하고 <독립정신>을 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원고는 감옥 생활 마지막 해인 1904년의 2월 19일부터 6월 29일 사이에 급히 쓰여졌다. 러-일 전쟁중이었다. 감옥 안이라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체계를 갖춘 단행본을 쓰기 보다는 문제가 되고 있는 52개의 주제들을 골라 논설 형식으로 썼다.


<독립정신>의 기본 주제는 조선왕국의 ‘독립 보존’이었다. 아직은 나라가 망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그가 그 문제에 대한 회답으로서 내린 처방은 조선왕국에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가저다 줄 문명개화(文明開化)였다. 

이 책에서 놀라게 되는 사실은 이승만이 19세기말 20세기초의 조선인으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서양문명의 본질과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20대 이승만은 당시 최고 수준의 지식인이었던 유길준(兪吉濬), 윤치호(尹致昊)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높은 지적 수준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독립정신>의 주제는 대한제국도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이념에 토대를 둔 미국식의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군주제와 신분제를 무너뜨리려는 위험한 내용이었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그것의 폐지를 직접 주장하지 못하고, 미국의 제도를 길게 설명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이 책에서 이승만은 열강의 침략으로 어려움에 빠진 조선 왕국을 푹풍우를 만난 배에 비유했다. 따라서 조선이라는 배가 가라 앉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집권층인  선원들과 백성인 선객들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문명개화를 위해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문명개화의 모델은 미국

이승만은 문명개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이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의 근원이 되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서’를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라 책에는 ‘자연법’ ‘자연권’과 같은 낯 선 단어들도 언급되고 있었다.   

또한 대통령제를 중심으로한 미국의 정치제도를 소개했다. 그리고 미국 헌법의 마지막 부분인 인권 조항, 즉 ‘권리장전’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당시에 미국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그것은 조선의 군주제와 신분제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승만은 민주정치를 전제정치,입헌군주정치와 함께 설명하면서 우리 나라에게는 입헌군주제가 적합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극단의 위험을 피해가고 있다.  그것은 어디 까지나 정치적 탄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 책의 전체 분위기로 볼 때, 그는 마음 속으로 이미 공화주의자(共和主義者)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중에 그가 감옥을 나와 미국 유학을 떠날 때 민영환의 주선으로 고종 황제가 만남을 요청했을 때 거절했던 경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군주제는 없애야 될 악폐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승만은 조선의 집권층이 국제정세에 무지하고 겁이 많은, 따라서 자기 일신의 영달에만 관심을 가진 부패 무능  분자들로 보고 있다. 


문명은 종교와 관계가 있다

동시에 그들의 지배 이념인 유교가 공허하고 따라서 쓸모없는 이론임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승만은 동시대의 다른 개화파 지식인들과 마찬 가지로 “유교 망국론”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안으로 그는 한국인의 새로운 종교로 기독교(개신교)를 제시했다. 그 점에서 이승만은 오늘날 아놀드 토인비, 새뮤얼 헌팅턴으로 대변되는 문명사관 또는 문명충돌론의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즉, 역사를 이해하는 기본 단위를 민족이나 국가 대신, “생활 방식”을 의미하는 문명(文明)이나 문화(文化)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생활 방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을 종교(宗敎)로 보고 있었다. 그 점에서 기독교(개신교)는 한국인들이 문명개화하기 위한, 다시 말해 “생활 방식”을 바꾸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서양문명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그 근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기독교부터 받아 들여야 했던 것이다. <독립정신>에서 이승만은 무지몽매한 백성들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다. 

임오군란과 동학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눈에는 어리석은 민중이 격정에 휘둘리어 폭동에 휘말림으로써 외국 군대를 끌어 들이는 빌미를 제공하고, 그 결과로 국토를 초토화시켰다는 것이다.  

우매한 민중들의 맹목적인 외국인 배척 운동은 서양의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을 통해서 볼 때, 당시 개화파 지식인들과 농민 대중 사이에는 메꿀 수 없는 넓은 간격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은 무능하고 러시아는 사악

<독립정신>에는 당시 한 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강대국들을 보는 눈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중국(청)에 대해서는 가장 가혹하게 비판하고 있다. 중국은 노쇠하고 무능할 뿐만 아니라 사악하기도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  

특히 중국이 1882년의 임오군란으로부터 1894년의 청일전쟁에 이르는 12년 동안 서울에 군대를 주둔시킨 사실이 조선왕국의 개화를 가로 막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분개하고 있다. 원세개의 간섭 밑에서 조선왕국은 개화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군대의 주둔과 중국 상인의 진출 때문에  조선 땅에 다른 외국 군대를 끌어 들이게 되고 외국 상인들이 한반도 깊숙이 들어와 활동하게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조선을 속국이라고 주장하다가도 곤란한 일이 생길 때는 자주독립국이라고 말을 바꾸는 겁쟁이 나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이 문명개화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중국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대해서도 아주 부정적이었다.  러시아는 후진국이고 전제적일 뿐만 아니라 한 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을 가진 음흉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일본의 발 빠른 개화 의지, 그리고 강인한 인내심과 열정적인 애국심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경계해야 할 나라로 불신하기도 했다. 역시 이승만의 최대 우호국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세계 각국이 고유성을 버리고 하나의 문명으로 통합해 발전하고 있는 추세의 중심에 서 있는 문명국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동맹(同盟)을 반드시 필요로하는 약소국 대한제국이 손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 야심이 없는” 유일한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독립정신>은 ‘세계화’와 ‘선진화’가 외처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을 위한 예언서, 또는 ‘문명개화’의 지침서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선구적인 업적이었다.

그 원고는 반년만에 완성되어 밖으로 몰래 빼내 보관되었다.  그러다가 먼저 감옥을 나온 박용만이 1905년에 여행용 트렁크 밑바닥에 숨겨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1910년 1월 로스앤젤리스에서 《독립정신》이란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미숙한 점이 있기는 하면서도, 그를 일생 동안 지배했던 정치사상의 기본 골격을 거의 모두 담았던 것이다.

출처 : 더 자유일보(http://www.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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