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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 포로 석방, 두 번째 이야기
작성일 : 2020/05/17 14:27 / 조회 : 9 / 추천 : 0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 기간 중에 붙잡힌 공산 포로 중에서 반공 성향의 포로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는 “반공 포로를 무조건 석방해 자유의 품에 안아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1952년 7월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이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둘째)이 포로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반공 포로 석방 다음날 극도로 분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브릭스 미국 대사를 통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면 미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읽은 이승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각자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면 우리 모든 분야에서 친구로서 헤어집시다. 그동안의 도움에는 감사하지만 한반 도에 중공군을 남겨 놓는 휴전은 수락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겐‘ 사형 선고’입니다. 역사만이 그것을 심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자살일지라도 우리의 특권입니다.”




1954년 7월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왼쪽에서 둘째)이 백악관에 도착해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당시 미 부통령인 리처드 닉슨이다. 대통령 퇴임 뒤 닉슨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주의자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승만 대통령보다 탁월한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헤어지자는 표현까지 쓰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더 강하게 나오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이 끝까지 반대하면 휴전 회담이 완전히 무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 끝에 국무부 차관보 로버트슨을 특사로 파견합니다.

한쪽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다른 한쪽은 명예로운 퇴진을 위한 명분 찾기로 회담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며 진행 되는 동안 이승만 대통령은 계속 “한국 전쟁이 단순히 한반도의 내전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전쟁이며, 군사적 승리만이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야욕을 단념시키고, 한국이 제2의 중국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알리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로버트슨, “이승만은 설득이 안되는 인물”


▲ 미국이 파견한 특임대사 로버트슨이 경무대로 이승만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1953.7) 로버트슨은 3주일동안 날마다 이승만을 만나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합의 조건들을 협의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승만 대통령과 마라톤 회담을 이어가며 줄다리기를 해온 로버트슨은 미 국무부에 대략 이런 내용의 보고를 합니다. “이승만은 지금까지 지켜온 그의 신념으로 보아 충분히 나라를 자살의 길로 이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며 현재의 휴전 협정은 공산주의 자들이 군사적 행동으로 얻지 못한 것을 협상을 통해 얻어 보려는 교묘한 계략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어 로버트슨은 이 대통령의 협조를 얻으려면 그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과 협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재인식토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압력을 가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슬쩍 이 대통령에 대해서 호의적인 보고를 곁들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전 국민을 분발시켜 공산주의와 싸우도록 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지도자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정신과 의지는 보존해야 하며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우리가 장비를 제공한 그의 군대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해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크고 강력한 군사력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요구가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7월 3일 로버트슨은 핵심적인 내용이 담긴 미국 안을 이 대통령에게 제시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입니다.

1) 미국정부는 미국과 필리핀 간의 상호 방위 협정에 가까운 상호 방위 협정을 한국과 체결한다. 미국정부는 그를 위한 준비가 돼있다.

2) 미국정부는 한국군 증강을 위한 원조를 제공한다.

3) 미국정부는 한국의 전후 복구를 위해 종합적인 경제 원조를 제공 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로버트슨에게 일본에 한국을 넘겨주기로 했던 1904년의 밀약과 1945년에 저지른 미국의 역사적 배신을 상기 시켰습니다. 그처럼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미국을 어떻게 믿느냐는 항의였습니다. 결국 그날의 대화는 소득 없이 끝났습니다.

다음날 로버트슨은 어제 제시한 것이 미국의 최종안이라며 다시 설득에 들어갔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시종일관 통일을 주장했고 휴전회담이 실패하면 미국이 한국과 함께 전투를 재개 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주장만을 고집했습니다. 로버트슨이 그것은 헌법상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미국 정치인들이 전투 재개를 주저하는 이유와 그들이 3차 세계 대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안다. 나도 3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단독으로 통일 전쟁을 할 때, 미국은 최소한 도덕적, 물질적 지원을 해주기 바란다. 상호 방위 협정이 미 상원에서 비준을 못 받으면 휴전 회담이 한국에 도움이 된다고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이승만, 한미방위조약에 자동개입조항 삽입 끝까지 고집


▲ 덜레스(왼쪽)와 로버트슨을 다시 만나 환담하는 이승만 대통령, `미군의 무기한 주둔` 조약 성공시켰다..."자손만대 번영의 토대"마련
결국 그 날로 회담을 끝내려고 했던 로버트슨은 확실한 보장을 요구해야 할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반대로 이제 본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로버트슨은 7월 6일 밤, 미 국무부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상하원 양당 지도자를 만나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이 상정되면 지지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건의문을 보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미국 측 초안에 자동 개입 조항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았고 한국은 필리핀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달리 단숨에 치명타를 받을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개입을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본토 및 그 주변에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미일 안보 조약(美日安保條約)과 같은 조약을 원했던 것입니다. 다음 날 회의에서 마침내 로버트슨은 한국에 미군의 주둔을 원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를 수용하였습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회담은 이승만 대통령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고 그의 일생의 염원이었던‘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 속에 번영을 누리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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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판]


반공포로 석방
The day after President Rhee released the anti-Communist POW’s, President Eisenhower got extremely agitated and upset, and sent a communication to President Rhee through Ambassador Briggs.

If the U.S. cannot get cooperation from President Rhee, the U.S. may have to reconsider the relationship with S. Korea. Rhee read the letter and responded as follows:

“If the U.S. and the Republic of Korea have to go separate ways, then let us part as friends in all aspects. We thank you for all the help to date, but we cannot accept ceasefire with the Chinese in our land. That would be our ‘death sentence.’ Only history will judge us. Even if that means suicide for us, it is our prerogative.

Eisenhower was taken aback when Rhee countered with ‘S. Korea would go alone.’ He thought the ceasefire talk could crash if Rhee held out to the end. Eisenhower dispatched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Walter S. Robertson as the Special Envoy to Rhee. It was a matter of survival to Rhee, while the U.S. sought honorable withdrawal from the war.


▲ 미국이 파견한 특임대사 로버트슨이 경무대로 이승만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1953.7) 로버트슨은 3주일동안 날마다 이승만을 만나 이승만이 내놓은 휴전합의 조건들을 협의하느라 진땀을 뺐다.
President Rhee repeated over and over to Robertson, “the Korean War was not an internal civil war, but a war between the communism and the democracy. Only a victory in this war will stop the international communists’ advances and stop what China had become.”

Running nonstop marathon meetings with President Rhee, the Special Envoy Robertson reported back to the State Department as follows: “President Syngman Rhee seems to be a leader of conviction who can very well lead his country to a suicidal path with his belief that the ceasefire agreement would give what the communists wanted through the talk, which they could not get through military invasion.”

Robertson advised the State Department that they should try to convince Rhee that it would be best for him to cooperate with the U.S. if he really wants to get his ultimate objective. Robertson said the U.S. should apply pressure at times. He was in fact siding with Rhee in his report.

“President Rhee led his people to fight against the Communists aggression. No world leader, including the U.S., could have done it. We have to honor and encourage such a will and spirit, not to discourage it. Furthermore, Rhee’s army we helped build through this war is the most powerful and well equipped forces in Asia against the Communists.


▲ 덜레스(왼쪽)와 로버트슨을 다시 만나 환담하는 이승만 대통령, `미군의 무기한 주둔` 조약 성공시켰다..."자손만대 번영의 토대"마련
We need them more than anybody else.” While South Korea and the U.S. would not give in to each other, Robertson offered three major points of agreement to President Rhee:

1) The U.S. government will enter into a mutual defense treaty with South Korea, which will be similar to the defense treaty with the Philippines. The U.S. government is ready to offer it to South Korea.

2) The U.S. government will provide necessary aid to equip the South Korean forces stronger.

3) The U.S. government will provide comprehensive economic aid to S. Korea to recover from the war and rebuild the country.

However, President Rhee would not have it. He reminded Envoy Robertson how the U.S. betrayed Korea in 1904 to the Imperial Japan, and their betrayal in 1945. Rhee protested to Robertson that Korea could not trust such an ally. Another impasse.

Robertson tried again with the same offer the following day, but Rhee would not have it again. President Rhee reiterated again and again he wanted reunification and that the U.S. should fight against the Communists with S. Korea if the ceasefire talk did not work out. Robertson protested that it was not possible due to the limitations included in the U.S. Constitution.

To this, Rhee answered as follows: “I know why the U.S. politicians hesitate to restart this war and that they are all afraid of the possible World War III. I don’t want World War III either. However, if we go alone with this war, I hope the U.S. will at least support us morally and with materials.

If the Mutual Defense Treaty does not get confirmed by the U.S. Senate, I cannot tell my people the ceasefire talk is helpful to S. Korea.” Robertson planned to conclude the talk with Rhee on that day, but instead was persuaded by Rhee that more assurances were needed for Rhee from the U.S. side.


1953년 8월 8일 변영태 외무장관과 댈러스 미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에서 서명하고 있다.뒤에서 이를 지켜보는 이승만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He felt he should persuade the U.S. side. On the night of July 6th, Robertson sent a suggestion to the State Department that President Eisenhower should talk to the leaders of the both parties at the Senate and get pledges from them they would support the Mutual Defense Treaty if it was sent to the Senate for confirmation.

President Rhee made another point to Special Envoy Robertson that the Treaty draft offered by the U.S. did not have automatic involvement provision. Not like the Philippines, Australia or New Zealand, South Korea faced direct assault from North Korea anytime.

The Mutual Defense Treaty should include automatic instantaneous troop dispatchment by the U.S. if and when a war breaks out again. President Rhee wanted a treaty similar to the one the U.S. entered with Japan, where the U.S. troops were stationed in the main island and other areas of Japan.

Robertson accepted Rhee’s demand the following day. This talk between President Rhee and Envoy Robertson ended in complete favor to Rhee’s demands and wishes. South Korea was guaranteed for its future, prosperity in freedom and peace for the future generations.

출처 : 더 자유일보(http://www.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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