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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통령 한국의 이승만 그리고 그의 신앙①
작성일 : 2021/09/06 16:30 / 조회 : 19 / 추천 : 0

들어가는 말


대한민국 건국대통령 국부이신 우남 이승만 박사 서거 56주기 추모식이 지난 2021년 7월 11일 이화장에서 거행됐다. 오늘 Forum발제의 Topic을 『세기의 대통령 한국의 이승만 그리고 그의 신앙』이라고 한 것은 미국 하와이에서 1924년 창설된 동지회는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바 김창완 동지회 회원은 이승만은 “전 세계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정치가, 외교가, 교육가 또 종교인으로 이런 인물이 한국에서 다시 나올까 의심스럽다”라고 말한다. 이어 고영희 회원은 “한국역사상 최고의 정치가로서 그가 없이는 대한민국이 태어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잘못된 부정적 평가는 예수님을 오해한 유다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이 오해와 무지 그리고 질시에서 나왔거나 그를 음해하기위한 좌익사상을 가진 이들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다”라고 말한다.


1944년 11월 12일 루스벨트대통령 당시 재미 한인의 태평양전쟁 적극 참여에 대한 보담으로 미국의 우표에 태극기와 그 밑에 KOREA를 넣은 5 cent 짜리 한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기념 우표를 제작하여 판매 하였다. 이것을 아는이는 별로 없다. 일본의 총리 가스라와 미국의 육군장관이었던 태프트의 유명한 「가스라 - 태프트 조약」의, 태프트가 대통령이 된 27대(1909년 ~ 1913년)에서부터 34대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 대통령(1953-1961)까지 유색인종 조선인으로 미국대통령들을 쥐었다 폈다 한 인물이 바로 이승만대통령 이었다.


그는 흑인입학이 거절되든 프린스턴에서 1910년 유색인종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 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 박사학위논문은 당시 국제법에 대한 학문과 국제법에 대해 무지했든 미국학계에 엄청난 파문을 가져 왔다. 그의 스승이었던 Woodrow Wilson은 이 논문에 근거해서 1913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1918년 1월18일 미국의회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외침으로 1919년 3월1일 운동의 불을 붙이는 역할을 한다.


《일본내막기》(日本內幕記, 영어: Japan Inside Out : The Challenge of Today)는 1941년 7월에 출간한 저서)로 미국 조야에 예언서가 되었고 혹이나 그를 동양인으로 무시하든 정치인들은 Syngman Rhee Ph.D가 누구냐 라며 감탄하며 그때부터 그를 범상한 인물이 아닌 오히려 그와 교분 쌓기를 원한다. 바로 1941년 12월7일 일본의 진주만 폭격이 Japan Inside Out처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 세계에서, 대통령으로서 명예박사학위는 많아도 정식 박사학위를 받은 대통령은 미국의Woodrow Wilson 그리고 대한민국의 이승만대통령뿐이다.


본론

이승만은 1875년 3월 26일 황해도에서 태어나 2살에 서울 남산 기슬 우수현으로 이사 온다. 그의 호가 우남인데 우수현 남쪽에 살았다고 붙여진 것이다. 그는 천재로 세상에 태어났다. 6살에 천자문을 16살에 사서삼경을 다 띄고 과거에 응시했으나 양녕대군 16대 손이라는 이유로 낙방. 다시 과거를 보기위해 준비 중에 19살인데 과거 제도가 폐지되어 허탈감에 빠져 낙심의 세월을 보낸다.


그때 친구 신흥우가 찾아와 신학문을 배우러 배제학당에 가 보자고 권한다. 처음에는 거부했다. 그 이유는 서양종교를 따르지 않겠다는 것. 그러나 그의 계속되는 권유로 배재학당에 입학한다. 그는 6개월만에 영어를 정복한다. 영어 배운지 2년을 마쳤을 때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지 배재학당에 영어교사로 채용된다. 배재학당에서 그는 서양의 자유, 평등사상을 접한 후 노비와 양반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자유, 평등만 이뤄진다면 반드시 잘살게 될 것을 믿는다. 그는1898년 1월1일 배재학당 학생회에서 주간신문 협성회보를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신문이라는 일간지로 신문발행을 한다. 뒤이어 제국신문을 창간한다. 기자란 말을 그가 처음으로 쓴 단어이다. 그의 논설은 명확하고 정확하여 인기가 많았으며 만 여 명이 모이는 집회에서 애국과 자유, 독립을 외칠 때, 사람들은 그의 웅변에 열광을 하곤 했다. 그는 대단한 웅변가였다.


고종황제의 수구파가 만든 황국협회가 보부상(봇짐, 등짐을 들고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 조선정부의 지원을 받기도하고 어용단체로 이용당하여 동학란 진압에도 조정의 앞잡이 역할을 하기도 했음)들을 이용해 1898년 11월 15일에 독립협회를 습격했을 때 이승만은 당시 독립협회의 일원으로 만민공동회의 집회에 강연을 하다가 보부상들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순간에 누군가 황급히 소리가 있어 “도망치지 말고 보부상 쪽으로 뛰어들어 가라”고 말해 보부상을 향해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에 숨을 몰아쉬면서 좌우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지켜주셨다. 그래서 생명을 부지하게 된다.


배재학당에 숨는다. 선교사가 급하게 왕진을 가려는데 말이 안 통하니 어쩔 수 없어 통역사로 갔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탈옥하기 위해 권총으로 간수를 쏘고 감행했다가 다시 잡혀, 사형언도를 받고 한성감옥에 갇힌다. 이때가 1899년이다. 그는 사형 집행 날에 부모에게 시체를 내일 아침에 찾아 가라고 서신이 발송됐을 때 마지막 날임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사형집행을 얼마 안둔 시간, 배재학당에 다닐 때는 그에게 성경책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어느 날 선교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하신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평생 처음으로 “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해 주시옵소서, 오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랬더니 감방 안이 갑자기 환한 빛으로 가득 채워지며 가슴이 뜨거워졌고 그의 마음이 기쁨이 넘치는 평안이 깃들면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


숱한 고문 속에 고통을 당하던 그가 감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성경을 읽었다. 아무도 없어 성경책을 넘길 수 없을 때는 지나가는 간수나 감옥의 갇힌 동료들에게 넘겨 달라고 하며 읽어 갔다. 기독교로 귀의한 이승만은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신념을 더욱 가지게 된다. 선교사들은 이승만을 개종시키면 “국민이 다 믿게 될 것이다”라며 많은 책을 감옥에 넣어준다. 그는 감옥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학당을 개설하여 영어, 일어, 산수, 세계지리 등을 가르쳤고, 어른들에게는 성경과 신학문을 가르쳤다. 옥중에서 한시집으로 100여 편의 시를 역은 ‘체역집’을 지었다. 그는 감옥에 쓴 글을 노끈으로 꼬아서 신문사에 글을 보냈다.

감옥에서 공부하며 1904년 독립정신을 썼다. 내용은 천하의 근본이 농사가 아니라 상업으로 무역통상과 무역에 필요한 큰 배, 교통수단을 위한 넓은 도로이다. 나라 구제는 교육으로. 더욱이 소련이 남하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내용이다.


6개월 만에 사형수에서 무기로, 무기에서 10년으로, 5년 7개월 만에 석방되어 나온다. 그가 석방됐을 때 조정에서는 미국으로 밀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전무한 당시, 윤치호 김규식 장봉환을 빼고 이승만은 대한제국의 밀사가 된다. 이승만의 영어는 고급영어로 특히 연설은 명연설로 각국의 외교사절들이 혀를 내둘렀다(배재학당 졸업 시 영어로 졸업사를 함) 1904년 미국으로 협상을 위해 떠난다.


미국에 도착한 1905년 1월15일 이승만은 워싱톤 포스트 지에 일본의 조선 침략을 폭로하는 인터뷰를 한다. 조선의 독립은 항일투쟁 보다 열강들 가운데 외교를 통해 열강들의 임을 이용해야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라가 부강하게 되기 위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至大本) 이 아니라 상공업, 무역과 외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계속)
송병기 박사(전 뉴욕장로회신학대 학장)  


[출처]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6719#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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